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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은 미국을 바꾸지 않는다"

[기자의 눈] 아프간 파병은 한미 대북공조를 강화할까?

이제나저제나 아프가니스탄 파병의 명분을 찾고 있던 세력들이 뭔가 실마리를 발견한 듯하다. '파병으로 한미공조를 강화하고, 한미공조를 강화해 북한을 다루자.' 노무현 정부 때 이미 거짓으로 판명난 이 논법이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홀브룩이 왜 한국에?

힌트를 준 사람은 16일 서울을 찾은 리처드 홀브룩. 오바마 미 행정부의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특별대표인 그는 17일 일본에서 열리는 파키스탄 지원국 회의에 참석하는 길에 한국을 들러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고 갔다.

▲ 리처드 홀브룩 특별대표가 16일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을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자 아프가니스탄에 한국군을 파견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곧장 제기됐다. 또한 그러자 "파병은 일절 논의되지 않았다"는 정부 당국자들의 답변이 기다렸다는 듯 나왔다. 이 대통령은 단지 "아프가니스탄 등 지역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늘 봐오던 장면이다. 이 대통령이 작년 8월 조지 부시 당시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후에도 그랬고, 지난 2일 버락 오바마 새 대통령과 만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파병을 약속하지 않았느냐는 추궁이 언제나 뒤따랐고, '파병 말고 다른 지원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부의 답변이 자동적으로 나왔다.

<동아일보>가 지난달 27일 '정부가 군 병력을 파병한다는 내부 방침을 정했다'고 단독 보도하면서 파병을 위한 여론 떠보기가 시작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현재까지 정부의 공식 입장은 '파병 요청은 없었고, 따라서 검토하고 있지 않다'이다.

절묘한 방한 시점?

그러나 홀브룩의 방한에 관한 <조선일보>의 보도에 등장한 '한 외교소식통'은 파병론자들이 써먹기 좋은 아이디어를 하나 던져 줬다.

이 소식통은 "이 시점에 대북정책 특별대표인 보즈워스가 아닌 아프간 특별대표가 온 것은 매우 상징적"이라며 "북핵문제에서 미국과 확고한 공조를 기대하려면 아프간 문제에서 먼저 성의를 보여야 하는 상황이 된 셈"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이 시점'에 대해 <조선일보>는 "북한의 '핵 역주행' 위협으로 한국이 미국과의 대북 공조 강화 필요성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때"라고 설명하며 "방문시점이 절묘하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이 신문은 지금의 상황이 2003년 이라크 파병 결정 때와 유사하다는 분석이 나온다며, "당시 노무현 정부는 강경 일변도였던 부시 행정부의 대북 노선을 노 정권이 원하는 쪽으로 조율하기 위해 핵심 지지층의 이탈을 감수하고 파병에 사인을 했던 것"이라는 외교소식통의 말을 전했다.

자이툰 파병 때 이미 거짓으로 판명

노무현 정부가 이라크 파병으로 북한 문제를 풀려고 했던 건 사실이다. 부시 행정부를 향해 '자이툰 부대를 보낼 테니 대북정책을 좀 유연하게 해 달라'고 사실상의 거래를 시도했다. 당시 외교안보 분야의 고위직에 있었던 거의 모든 인사들은 그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증언도 많이 나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을 찍었던 많은 이들이 이라크 파병을 계기로 노 정부에 등을 돌렸지만, 절대지지층에서는 '파병으로 북핵을 풀자'는 논리를 파병 찬성의 핵심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 논리에 설득되어 파병 반대 입장을 다소 누그러뜨리는 조짐도 일부 있었다.

그러나 이라크 파병이 부시 행정부의 대북 노선을 정말 완화시켰나? 결코 그렇지 않다. 노무현 정부가 이라크 파병 방침을 밝혔던 2003년 10월부터 북한의 핵실험이 있었던 2006년 10월까지 3년간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강경 일변도였다.

북한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CVID) 방식으로 핵을 포기해야 하며, 핵을 먼저 포기해야 경제적 보상이 가능하다는 '리비아 모델'을 추구하겠다는 게 부시 행정부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2005년 9.19 공동성명 채택 등 진전이 없진 않았지만, 그걸 가지고 이라크 파병의 효과라고 평가하는 사람은 없다.

부시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바꾼 건 2006년 북한의 핵실험,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 후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의 패배, 남은 임기 2년 동안 북핵문제라도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절박함 같은 것들 때문이었다. 전적으로 자신들의 이익 때문에 대북정책을 바꾼 것이다. '한국이 파병을 해줬으니 노무현의 말을 듣자'고 생각해 바꾼 게 절대 아니다.

당시 통일부 장관으로 이라크 파병에 신중론을 폈던(후나바시 요이치 <김정일 최후의 도박>) 정세현 전 장관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파병을 하니까 남북이 뭘 하겠다는데 부시 정부가 제동을 거는 일은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그 정도의 효과는 있었다. 그러나 파병이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까지 바꾼 건 결코 아니었다."

예사롭지 않은 한미 군 당국

오바마 행정부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아프가니스탄에 파병을 했다고 해서 한국과의 대북 공조를 더 튼튼히 하고, 파병을 안 했다고 느슨하게 할 리가 없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자신들의 동북아-한반도 전략에 따라 추진되는 것이지 한국의 파병 여부에 좌우되지 않는다. 북한에 대해 강경한 이명박 정부가 파병을 했다고 해서 오바마 정부도 같이 강경해진다? 너무 심한 착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아프가니스탄에 병력을 보낼 것이라는 의구심이 만약 사실로 바뀐다면 '한미 대북공조를 위해 파병하자'는 주장은 파병론의 핵심 논거가 될 공산이 크다.

특히 서해상 무력 충돌 등 남북간 긴장이 고조되면 그 논리는 더욱 힘을 얻고 활개를 칠 것이다. 거기에 '한미혈맹론' '글로벌코리아론' '재건사업참여론' 등이 각론으로 따라 붙을 것이다.

정부는 현재 24명인 아프가니스탄 재건지원팀(PRT)을 90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한미 국방부간 회의체인 안보정책구상(SPI)의 3월 회의에는 미 국방부의 아프간 담당자가 참석한 바 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 전개를 볼 때 이라크 파병 당시 횡행했던 파병 찬성의 논거들이 얼마나 근거없는 것이었고 사실과 다른 것으로 판명났는지에 대해 꼼꼼히 점검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

그때는 아프가니스탄이 과연 어떤 땅인지, 왜 나토 국가들이 추가 파병을 거부하는지, '오바마의 무덤'이 될 수 있다는 얘기는 왜 나오는지에 대해서도 더불어 따져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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