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가 최고 수위의 안보리 결의 원한다고?
문제의 발언은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전달한 것이다. 이 대변인은 2일 런던에서 열린 정상회담 관련 브리핑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비해)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안을 준비중에 있다고 말했다"고 발표했다.
한미 양국은 지난 2월 북한의 로켓 발사 움직임이 본격화됐을 때부터 장거리 로켓을 쏘면 안보리 결의 1718호 위반이며, 따라서 안보리에 회부하겠다는 입장을 공유해 왔다. 이는 이날 정상회담에서도 재확인됐다.
그러나 안보리 회부가 곧 제재 결의안 논의를 뜻하는 것은 아니었고, 미국이 안보리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원하고 준비하는지는 모호한 상태였기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이 제재 결의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전언은 '뉴스'였다.
북한이 로켓을 발사했을 경우 안보리에서는 새로운 제재 결의, 새로운 비난 결의, 기존 1718호 성실 이행 결의, 의장성명, 언론발표문 등 다양한 수준의 문서가 나올 수 있다. 북한은 자신들의 '인공위성' 발사를 안보리에 회부하기만 해도 6자회담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놨기 때문에 미국의 안보리 행보는 민감한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안보리 합의 중 가장 수위가 높은 '제재 결의안'을 특정하고, 그걸 준비중이라고 말했다는 발표가 나오자 일부 언론들은 '미국도 강경 대응방침을 천명했다'고 해석했다.
백악관 자료엔 눈 씻고 찾아도 없어
그러나 정상회담 후 나온 백악관 보도자료에서는 '제재 결의안'이라는 중요한 표현이 들어 있지 않다.
백악관 대변인실이 배포한 이 자료에는 로켓 발사와 관련해 "양 정상은 북한이 유엔 결의를 준수하길 촉구했고,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을 경우 국제사회의 일치된 대응이 필요하다는데 동의했다"고만 되어 있다.
오바마 행정부 고위관계자의 배경설명에도 "북한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혹은 "모든 이슈에서 놀라울 정도로 의견이 일치했다" 등의 말은 있었지만, '제재 결의안 준비중'이라는 발언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안보리 논의와 관련해서 이 관계자는 "북한의 예정된 미사일 발사는 안보리 결의안 1718호를 위반하는 것이고 미국과 한국은 유엔에서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단호하게 대응할지를 놓고 긴밀한 협의를 하게 될 것"이라고만 말했다. 미국이 그동안 해 왔던 일반적인 얘기를 반복한 것이다. (☞백악관 공개 자료 ; ☞고위 관계자 배경설명)
AP 통신, AFP 통신, <워싱턴포스트>, <보스턴글로브>, <월스트리트저널> 등 회담 소식을 전한 외신들의 기사에서도 제재 결의안 얘기는 없었다.
대표적으로 AP 통신은 북한이 로켓을 발사했을 경우 국제사회가 '단호하고 일치된 대응'(a stern, united response)을 해야 한다는데 두 정상이 동의했다고만 전했다. 또 오바마 대통령이 회담 전 기자들로부터 북한의 로켓 발사와 관련한 질문 공세를 받았지만 답하지 않았다고(ignored) 덧붙였다.
한국과 미국, 누가 결례 범했나
이러한 차이는 오바마가 실제 그 발언을 했지만 단지 청와대는 공개하고 백악관은 공개하지 않은 것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 어느 한 측의 단순 실수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정상회담을 하면 양국의 핵심 참모들이 모여 대통령들의 발언 중 공개할 부분을 합의한 뒤 동일한 내용을 각자 발표하는 외교관례에 비춰볼 때 예사롭지 않은 일이라는 평가다.
더군다나 '제재 결의안 준비중'이라는 중대하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을 한국만 발표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만의 하나 청와대가 '미국도 북한에 강경하다'는 걸 보이려고 △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을 과장·왜곡했거나, △ 없는 말을 지어 냈거나, △ 공개하지 않기로 한 말을 공개한 것이라면 심각한 외교결례가 될 수 있다.
반대로 백악관이 어떤 이유 때문에 공동 발표 합의를 깼다면 그 역시도 결례다. 백악관은 작년 8월 정상회담 때에도 이명박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파병에 대해 "그런 논의는 없었다"고 말한 것을 "분명히 논의했다"고 번역 소개해 논란을 낳았었다.
▲ 한미 정상회담 장면 ⓒ청와대 |
한미 FTA도 전혀 딴 얘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관한 정상들의 발언에서도 청와대와 백악관은 다른 곳에 방점을 찍었다.
이동관 대변인은 "두 정상은 한미 FTA가 두 나라에 상호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FTA 진전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양국 정상이 오는 6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릴 예정인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청와대가 제공한 발언록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심지어 "한미 FTA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께서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을 잘 알고 있다"며 "(나는) FTA 문제를 진전시키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한미 FTA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의 평소 생각과는 사뭇 다른 것으로 그가 FTA 의회 비준을 조속히 추진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는 '희망적 관측'을 낳았다.
당장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런던에서 한-EU 통상장관회담을 끝낸 뒤 "한미 양국 모두 한미자유무역협정이 양국 관계의 건전한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상황을 어렵게 끌고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언론들은 청와대가 전한 오바마의 발언을 긴급 속보로 전하며 큰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 행정부 고위관계자의 설명을 보면 청와대와 온도차가 뚜렷하다. 그는 "회담에서 (의회 비준) 일정에 관한 논의는 없었다"며 "(한미 FTA 비준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점을 (두 정상이) 인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오바마 대통령은 '(한미 FTA를) 진전시키는데 한미 상호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으나, 이 문제에 진전이 이뤄지길 희망하며 우리 스태프들이 이를 어떻게 진전시킬지 논의해야만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백악관은 '상호 어려움이 있다',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조기 비준을 기대하는 건 무리라는 분석에 무게를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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