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중국은 올 한 해의 정치 일정 시작을 알리는 두 개의 회의(兩會 / 량후이)기간 중이다. 이 두 회의는 전국정치협상회의(정협)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를 지칭하며, 먼저 개최된 정치협상회의의 폐막에 이어 3월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 11기 2차 회의가 개막되었다.
전인대로 약칭하는(중국에서는 전국인대)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일반적으로 행정부에 대한 감독이나 입법기능 때문에 우리나라의 국회에 해당되는 부분이 있으며, 따라서 전인대의 의장격인 전인대 상무위원장은 국회의장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정치는 당 우위 체제로 중국공산당이 정치권력의 핵심이지만 형식적으로는 전인대가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상의 국가최고 권력기관이며, 전국인민대표대회 제도는 중국의 가장 기본적인 정치체제다. 헌법 기구로서의 전인대는 입법(상무위원회), 사법(최고인민법원/최고인민감찰원), 행정(국무원) 및 군사(국가중앙군사위원회)분야를 망라한다. 중국의 명목상 국가원수인 국가주석도 전인대에 속해있다.
전인대는 5년에 한 번씩 회기가 바뀐다. 지금 열리고 있는 회의는 11기 2차 회의, 즉 11번째 회기 중 두 번째 연례회의라는 뜻이다. 전인대는 중국 헌법이 부여한 수많은 기능이 있지만 해마다 3월 초에 연례회의를 열어 한 해 중국 정부의 업무 방향을 대내외에 알리는 '정부업무보고'를 국무원 총리가 하게 된다. 국무원 총리가 정부업무보고를 하는 것은 중국 국무원이 전인대의 결정을 집행하는 국가 권력의 최고 행사기관이기 때문이다,
모든 국가가 마찬가지지만 한 해의 정치 일정을 시작하는 중국 상황도 특수하다.
우선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여파로 중국 경제도 침체가 가속화되고 있고, 이로 인해 실업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많은 국가들이 중국의 경기 부양이 세계 경제에 일정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중국 경제가 경착륙하게 되면 세계 경제에 또 다시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올해는 매 십년을 크게 기념하는 중국인들의 성격 상 유의해야 할 몇 가지 대형 이슈들이 있다. 10월에 맞이할 건국 60주년은 그렇다 치더라도, 3월 10일 티벳 라사사건 발생 50주년이며, 6월 4일은 천안문 사건 20주년이고, 파룬궁 사건도 10주년을 맞이한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경기 침체에 실업 문제 등 내부 불만 요인들이 생기고 있으니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3월 5일 개막식에서 원자바오 총리에 의해 발표된 올해의 중국 정부업무보고는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크게 네 분야로 정책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글로벌 경제 위기의 중국 파급을 여하히 막을 것인가이다. 이를 위해 이번 업무보고는 크게 내수 확대를 통한 경기 부양, 구조 조정을 통한 산업 경쟁력 강화, 8% 경제 성장 유지 그리고 민생 안정을 법적으로 구축하는 제도화 노력을 기조로 하고 있다.
내수 확대를 통한 경기 부양은 중국 경제 정책 추진의 핵심이다. 중국 경제를 이끄는 핵심 분야는 수출과 소비 그리고 투자 분야이다. 그런데 글로벌 경기 침체로 수출 부문의 침체가 가속화되고 있고, 이는 중국의 의지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내수 경기 활성화를 통한 경기 부양만이 현재로서는 중국 경제의 발전을 담보할 유일한 대안인 것이다. 이미 작년 11월 4조위엔(한화 약 880조원)에 달하는 적극적인 확대 재정 정책을 천명한 중국 정부는 9천 500억 위엔에 달하는 적자 예산을 편성해 올해 약 1조 1천 800억 위엔에 달하는 재정 투자 집행을 계획하고 있음을 밝혔다.
내수가 살아나고 경제가 안정되려면 경쟁력 있는 산업의 육성이 절실하다. 자동차, 선박 등 10대 산업을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바로 잡겠다는 집중 육성 계획도 천명되었다. 중국 경제사회 발전의 버팀목인 경제 성장 8% 달성 및 900만개 이상의 일자리 창출, 실업률 4.6%로 억제 그리고 소비자 물가 상승률도 4%로 유지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중국에서 경제 성장 8%는 엄밀하게 말하면 사회 안정 마지노선이기도 하다.
또 중국 국민들의 가장 개선되기를 희망하는 부정부패 척결 문제, 최근 몇 년간 중국 국민을 물론이고 세계적인 걱정을 불러일으키며 중국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부정 불량 식품 문제, 개혁개방의 사각지대에서 헤어나고 있지 못한 삼농(농촌, 농민, 농업) 문제, 의료 환경, 교육, 주택 문제 등의 해결에 대해서도 재정의 직접적인 투자 확대를 통해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농촌이나 저소득 층 지원에 대한 구체 방안을 일일이 열거하면서 잠재적 사회 불안 제거에 심혈을 기울인 면도 보인다.
그런데 눈길을 끄는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경제 상황이 안 좋은 상황에서도 국방비가 14.9%나 증액했다는 점이다. 중국은 늘 국가 규모나 역할에 비해 최소한의 국방비를 집행하는 국가이며 2007년부터는 유엔의 군비 투명제도에 정식으로 가입했기 때문에 '숨겨진 국방비'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많은 국가들은 중국의 국방예산이 실제 발표보다 2-3배는 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사실 국방비 증액 부분을 설명한 전인대 외사위원회 주임 위원인 리자오싱 전 외교부장의 설명에도 어폐가 발견된다. 필자의 계산에 따르면 전체 예산에서 국방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공표한 6.3%보다 훨씬 많이 잡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군비증강을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지만 각국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면 정확한 설명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번 전인대에서 세계가 가장 주목했던 부분은 중국이 고강도의 추가 경기 부양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였다. 이미 중국 내부에서도 8% 경제 성장 유지를 위해서는 기존의 4조 위엔에 4-6조 위엔이 추가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경기 상황에 따라 적극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여러 번 천명했기 때문에 추가 부양책도 나올 것이다. 이번에 추가 부양책을 제시하지 않은 것은 지난 4조 위엔의 집행도 아주 일부만 이루어지고 있고 재원 조달에 대한 명확한 계획도 아직은 정리되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세계적 경제 위기는 동시에 왔지만 위기의 극복은 이제 완전히 각국의 몫이 되었다. 중국의 안정적인 경제 위기 탈출 방안과 내수 확대 정책은 우리에게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면이 많다. 중국의 정책 방향을 잘 읽으면서 주의를 기울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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