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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엄덕문의 마지막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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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엄덕문의 마지막 바람

[김유경의 문화기행 '서울, 북촌에서']<33> 세종회관과 세종기념전각

경복궁 경회루, 덕수궁의 석조전 서관(덕수궁미술관), 광화문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비각은 건축가 엄덕문이 좋아하는 한국의 건축물이다.

"광화문에서 보는 비각은 지붕과 기둥, 돌난간과 조각 등 건물 전체의 비례가 정확하고 정면의 만세문과 어울려 전체의 조화가 대단한 정말 어여쁜 비각입니다. 고종때 건축가 심의석이 지은 것입니다. 영원히 이 자리에 두어야 할 건축이죠. 주변공간이 옹색한데 이거야말로 옮길 수도 없고 터가 넓어지기 전에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지 싶어요."

"경회루는 추녀와 기둥이 인상적입니다. 석조전 서관은 1938년 완공된 것이니 아마 서양인이 설계했을 텐데 벽면과 창문의 비례가 참 조화롭지요. 담백하고 심플하면서도 전체가 장식적이고 예쁜 양식건물입니다. 엄숙한 느낌의 석조전 동관과 비교돼죠. "

세종문화회관은 좁아서 아쉽기 한이 없다. "최소한 지금 점유공간의 2배는 됐어야 했습니다."

'세종대왕 기념전각'의 설계-누구든 한국문화의 이름으로 완성시켜 주기를

그러는 엄덕문씨는 2008년 봄 불현듯 '세종대왕 기념전각을 세종회관과 같이 세웠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종문화회관 앞의 광화문 광장 조성안이 확정된 뒤였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 즐겁고 아이디어가 넘쳐 6개월 동안 매일 너댓시간씩 그려 30분지 1-60분지1 크기의 설계도면 1벌 4장을 완성했다.

폭 24m, 높이 18m의 완자창살 4면벽으로 된 전각을 세웠다. 안에 세종대왕 좌상이 들어있다. 세종회관 건물 벽과 같은 구조인 전각의 삼면 벽 완자문에는 훈민정음 한글을 디자인했다. 꼭대기에는 태극문양, 중간부분에는 용무늬 흉배가 들어가고 계단으로 오르는 중간에 비명(碑銘)도 새겨 넣었다. 전각 사방에는 세종의 이념을 주제로 한 조각이 분수 있는 연못가에 서있다. 너무 사실적이지는 않고 반추상의 인간군상 조각들이다.

▲ 세종기념전각 설계도면 앞의 엄덕문 선생. ⓒ하지권

"스스로 흥이 나서 여섯달 동안 하루에 몇시간씩 매달려 그리고 저녁 먹고도 공연히 그 앞에 앉아서 쳐다보고 있는 거에요. 이걸 세종회관 앞에 정남향해서 세우고 광화문 네거리에서 정면으로 바라보며 올라오게 하는 구도죠. 어디서든 세우겠다고 하면 힘이 나서 또 생각해 고치고 달라지고 할텐데. "

'뻐기는 것 같고 내가 설계했다고 자랑하는 것 같아 특정인 두 사람 말고는 그동안 타인에게 보여주질 않았다' 면서 조심스럽게 설계도면 4장을 꺼내 보여준 노 건축가는 최후의 선언 같은 말을 했다.

"이제 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고 더 활동하기 어려워요. 이 도면을 내가 갖고 있으면서 썩히는 것보다 이제 공개하는 게 좋겠어요. 누가 세워도 좋으니 이 건축을 대한민국의 문화로 세상의 빛을 보게 했으면 합니다. 건축가이자 작가로서 나의 진정한 바램은 그것뿐입니다.

이 기념전각 디자인은 세종회관의 공간과도 조화되며 완자창살 벽면장식과도 잘 조화되는 하나의 세트입니다. 이로써 내 뜻이 완전히 드러났어요. 사랑하는 자식을 더 이상 키우지 못해 누군가 잘 키워줄 사람이 데려다 키워주길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디자인했다는 것 계승하지 않고 다른 이름을 앞세워도 좋으니 한국문화를 위해, 세종을 사랑하고 훈민정음을 아끼는 마음으로 완성해 주십시오. 작가로서의 진정한 심정을 말할 따름입니다."

엄덕문 선생이 전율을 느끼며 이 말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동안 발표를 못하다가 내 속에 있던 이야기를 다 하니 이제 무거운 짐을 넘겨준 것 같습니다. 썩어서 없어질 씨앗을 찾아내 좋은 밭에다 심고 기르는 사람들이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타던 것의 의미를 이제야 공표하는 것 같아요. 그때(1989년) 이 상을 타면서 내가 한 일이 뭐있나 하며 미안하게 생각하고 자책했는데."

세종기념전각의 세부 설계는 엄&이 건축사무소가 맡는다고 했다.

이야기는 다시 세종문화회관으로 돌아갔다. 개축에 대해서는 "잘된 것이 아닙니다. 절대 인정할 수 없습니다." 고 잘라 말한다. 많은 연구논문이 세종문화회관을 건축의 한 이정표로 다루고 있는 데 대해 그가 답했다.

"난 그런 생각을 해봐요. 박물관이든 문화관이든 극장이든 세종회관 같은 건물 한번 더 한다면 진짜 좋은 게 나올 것 같다고. 부족된 것도 많지만 세종회관은 제 대표작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할 말은 근대건축 스타일이나 폼(form)에서 우리 전통이 현대화되는 줄기를 제시해 주는 게 세종문화회관이 그 시초이며 모체라는 사실입니다.

수원에 문화회관이 있는데 누가 지었는지 세종회관의 사촌동생 같아요. 언뜻 표절한 듯한 느낌이라 한마디 책망하는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걸 보면서 '잘했다. 잘됐다. 그런 식으로 뻗어나가거라. 잘했다' 하는 심정인거에요. 그게 동기가 돼서 세종회관의 4촌, 6촌같은 건물들이 많이 생기고 있는 걸 내가 알아요. '우리 전통을 살리는 우리 건축이다, 고마운 일이다' 생각합니다. 어느 구청건물인가도 세종문화회관에서 암시를 받은 듯한 것이 있어요. 그렇게 해서 새로운 현대건축 문화의 모체 노릇을 세종문화회관이 하는구나 생각하면 즐겁지요. "

▲ 고종즉위 40주년 기념 비각. 영원히 광화문에 서있어야 할 아름다운 건물. 심의석이 건축했다. ⓒ하지권

엄덕문 건축상이 제정되어 있다. 1989년 4,000만원의 기금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한국건축가협회가 주관한다. "후배를 격려하는 의미에서 전통을 살리는 건축에 주자고 했죠."

건축가로서 그에겐 생애 몇 번의 영광이 따랐다. 세종문화회관 건축으로 산업훈장을 받고 노태우 대통령 때는 21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문화훈장을 받았다.

"문화예술상 후보가 됐다는데 상 주는 이들한테 타협같은 것 않고 무심하게 있다가 받았어요. 문화훈장도 그렇게 받았습니다. 고상한 일이고 고마운 일이죠. 건축가로 이런 훈장을 탄 건 제가 처음입니다." 예술원 회원은 경선 끝에 안됐다. "그래도 나같이 무심한 이도 있다는 건 좋은 일입니다."

엄덕문 선생은 성악가가 되려고 했을 만큼 성악을 좋아하고 미술에 소질이 있었다. 그가 각 지방 얘기를 하다가 동대문 밖 서울 말씨로 사람 찾는 소리 '여보게 있나'를 그대로 실연하는데 갑자기 노래가 나오는 것 같았다. 어조도 달라져서 아주 오래전 서울말씨를 다시 듣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가 성악을 좋아했다는 말을 인정하게 됐다.

"건축가는 화가와도 같아요. 천부적 소질이 없으면 끝까지 가기 어렵습니다."

광화문 앞길은 지금 길 한중간을 갈라놓던 은행나무를 모두 들어내고 인도를 넓혀 광장을 만드는 공사 중이다. 모두의 사랑을 받는 이순신 조각도 이곳에 있다. 세종대왕 조각도 이곳에 세워지리라 한다. 광장이 완성되면 어떤 모습이 될지, 이 주변의 격심한 변화와 어떻게 어울려갈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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