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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사탄, 그래도 관계복원은 이뤄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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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사탄, 그래도 관계복원은 이뤄져야"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78> 이란 사람들이 오바마를 반긴 까닭

흔히 '호메이니 혁명'이라 일컬어지는 1979년 이슬람 혁명 30년을 맞은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는 반미정서를 나타내는 대형 입간판이나 플래카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조지 부시 전 미 대통령은 지난 2002년 연두 국정연설에서 이란을 '악의 축'이라 몰아붙였다. 그렇지만 많은 이란 사람들은 30년 전부터 미국을 '커다란 악마(satan)'로 불러왔다.

이슬람 혁명 30주년 기념식장에서 만나 사귄 전직 테헤란 고등학교 역사교사 세예단(63)은 "이 단어가 혁명으로 왕권을 잃은 모하메드 레자 팔레비의 미국행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한다.

1979년 2월 팔레비는 처음엔 이집트로 망명했다가 모로코와 멕시코를 떠돌았다. 그러다가 췌장암이 도지자, 치료를 받으러 미국으로 갔다. 이란의 반미감정에 신경을 쓰던 지미 카터 당시 미 대통령은 팔레비의 미국 입국 허가를 망설였으나, 헨리 키신저를 비롯한 친이란 인사들이 '인도주의적 치료'를 내세우자 팔레비를 받아들였다고 전해진다.

팔레비의 미국행이 알려지자 이란 사람들은 지난 1953년 팔레비가 로마로 망명했을 때 미 중앙정보부(CIA)가 개입했던 쿠데타('월드 포커스' 76 참조 ☞바로가기) 악몽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미국이 반혁명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세차게 비난했다.

그 무렵 이란 시아파 최고 종교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미국을 가리켜 '커다란 악마'라고 규정했다. 그때부터 이란 사람들은 미국을 말할 때마다 '악마'라는 단어가 자주 쓰였다.
▲ 이슬람 혁명 30년을 맞아 테헤란 거리에 전시된 그림 가운데는 이처럼 강한 반미-반이스라엘 정서를 보여주는 그림들이 눈길을 끈다. ⓒ김재명

이란의 적성국가들

미국인이 이란의 대외 관문인 테헤란 호메이니 국제공항을 통해 들어가려면 무려 64달러의 입국세를 내야 한다.(중동 이슬람 국가 출신들은 돈을 안 내도 되고, 한국인은 미국인의 절반인 32달러를 낸다)

입국세 액수에 비례하는 만큼이나 미국과 이란의 사이는 멀다. 테헤란에서 만난 사람들은 워싱턴의 미국 지도부와 일반 미국 시민들을 구별해 반미를 말한다. "워싱턴은 문제가 많지만 일반 미국시민을 미워할 까닭이 없다"는 얘기다.

이란의 '적성국가(enemy state)'로는 미국, 이스라엘, 이집트가 꼽힌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이집트도 1979년 이슬람 혁명 뒤 이란과의 외교관계를 끊은 채로 지난 30년을 지내왔다. 이란은 이들 국가와는 외교관계가 아예 없다.

이란대외친선협회의 한 실무자는 "우리가 입을 열었다 하면 하는 말이 '대외친선'이다. 그렇지만 솔직히 말해서 미국과 이스라엘만큼은 어려운 얘기"라고 털어놓았다.
▲ 테헤란 젊은이들이 조지 부시 전 미 대통령의 화형식을 벌이며 즐거운 표정들이다. ⓒ김재명

오바마 당선을 반긴 까닭은

이란 사람들의 반미정서는 다른 중동지역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두 가지 측면에서 복합적이다.

하나는 지난날 미국이 이란에 보여준 잘못된 행태들(1953년 군부쿠데타 배후 조종, 석유자원 착취, 1980년대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사담 후세인 지원 등)로 말미암아 미국에 적개심을 품으면서도, 다른 하나는 1979년 이슬람 혁명 이래로 끊어진 미국과의 외교관계를 다시금 갖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반미정서는 어디까지나 정서이고, 외교관계 복원으로 얻어질 국가이익이란 실리도 중요하다는 태도다. 한마디로 이란의 입장은 "미국은 사탄이지만 그래도 관계개선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란은 미국과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오래 전부터 바래왔다. 이는 북한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수교를 맺을 경우 그동안 투자 제한 등 이란에 가해졌던 경제제재를 비롯한 압력이 느슨해질 것이고, 이란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감에서다.

이란과의 무조건적인 대화를 강조했던 오바마 후보의 당선을 이란이 반긴 것은 그런 사정에서다.
▲ "워싱턴에선 오바마 새행정부의 대이란 정책기조를 둘러싸고 치열한 물밑싸움이 벌어지는 중이다" 이란 전략조사센터(CSR) 선임연구원 나세르 사가피 아메리 ⓒ김재명

전략조사센터 연구원 "워싱턴은 지금 물밑싸움 중"

이란 지식인들은 1979년 혁명 뒤 역대 미 행정부의 대이란 정책이 일방적인 경제제재 등 판단 착오와 올바르지 못한 정책방향으로 일관했다고 비판한다. 특히 이란을 '악의 축'이라 몰아붙였던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의 대 이란 정책은 최악이었다고 여긴다. 바로 그런 까닭에 오바마 새 행정부의 중동정책, 특히 대 이란정책이 어떻게 바뀔까에 관심을 쏟는 중이다.

이란 테헤란의 국제문제 싱크 탱크인 전략조사센터(Center for Strategic Research, CSR)이 선임연구원 나세르 사가피 아메리는 이란 외무부에서 근무한 전직 대사로서 국제관계와 전략문제 전문가다. 2년전 이란 취재길에서도 만난 적이 있는 아메리는 "지금 미 워싱턴에서는 대이란 정책방향을 놓고 치열한 물밑싸움이 벌어지는 중"이라고 말했다. 아메리는 올해 1월 CSR 내부문건으로 그가 직접 작성했다는 '오마바의 이란 정책' 보고서를 건네주면서, 이를 토대로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후보 시절부터 '아무 조건 없이 이란 지도자들과 만나겠다'는 말을 했고, 그 때문에 이란과의 대화를 막으려는 반대세력의 움직임이 있어왔다. 지금 워싱턴에는 행정부의 고위 관료, 정치인들, 로비스트들, 그리고 이른바 중동전문가들 사이에선 미국의 대 이란정책 방향을 바꿔 이란을 포용하려는 쪽과 전통적인 압박 구도를 그대로 끌어가려는 쪽이 오바마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려 다투고 있다"

유대인 로비스트와 네오콘들의 노림수

이란과의 대화를 강조하는 미 온건파들의 논리는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하는 것과 같은 논리다. 이란을 봉쇄 압박한다고 해서 실효를 거두기도 어렵고, 그런 정책기조를 이어갈 경우 이란으로 하여금 핵무기 개발에 더욱 가까이 다가서도록 할 뿐이라는 것이다.

대미 수교를 바라는 이란 사람들이 신경을 쓰는 것은 워싱턴의 한 켠에 흐르는 강경기류다. 아메리 선임연구원은 이렇게 분석한다.

"지금 워싱턴에선 유대인 로비스트들과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 여기에 이스라엘을 비롯해 이란과의 이해관계를 저울질 하는 외국 세력들까지 가세해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그들은 대선과정에서 오바마 후보의 대외정책노선을 비판했지만, 이란과의 대화를 강조했던 오바마 후보가 일단 당선되자, 이란과의 대화를 올해 6월에 치러질 이란 대통령 선거 결과를 지켜본 뒤로 미루자는 주장을 편다. 일종의 지연전술이다.

그들은 오바마 새 대통령이 이란 대선 전에 (대미 강경보수의 노선을 걸어온)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과 만날 경우 그의 재선에 도움을 줄 뿐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의 대이란 강경파들이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아메리 선임연구원은 "언제라도 긴장이 터질 수 있는 휘발성 강한 중동 정세로 미뤄볼 때, 대화 지연전술을 폄으로써 오마바 대통령과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사이에 서로를 비난하는 국면이 생겨나길 바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란-미국 사이의 외교협상 기회가 아예 멀어지길 바라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스라엘 대통령 시몬 페레스(1993년 당시 이스라엘 외무장관으로서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상인 오슬로 평화협상에 서명함으로써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함께 노벨 평화상 수상)가 오바마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이란과의 대화를 6월 대선 뒤로 미루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일부 유럽 국가들이나 친미 아랍 국가들도 미국이 이란과의 관계개선을 바라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란대외친선협회의 한 관계자는 "그들 국가들은 지난 30년 동안 미국이 이란과 긴장관계를 이어감으로써 그동안 얻어왔던 반사이익을 놓칠까 걱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 테헤란 거리의 반미정서를 보여주는 입간판. 미국의 오바마 새 대통령이 부시 전 대통령처럼 구두로 공격당할지, 아니면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처럼 주먹으로 맞을지, 아니면 올바른 대외정책을 펼 것인지를 묻고 있다. ⓒ김재명

미-이란 대화, 6월 뒤로 미뤄질까

이란 사람들에게 들어본 이란의 대선 구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큰 그림으로 보면 재선을 노리는 강경파 아마디네자드 현 대통령과 온건파인 모하마드 하타미 전 대통령(1997-2005년 사이에 대통령 연임)의 2강 대결구도로 압축된다.

시아파 종교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마음이 기우는 아마디네자드의 재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저런 상황을 살펴보면,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 봉쇄냐 아니면 대화냐 어느 쪽으로 가닥을 잡을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릴 듯하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올해 6월에 치러질 이란 대선 결과를 지켜본 뒤에야 가닥이 드러날 전망이다.

오바마가 "놀랐어? 요건 몰랐지?"하며 비공개 외교채널을 움직여 이란과의 관계 진전을 극적으로 이뤄가는 시나리오도 물론 배제할 수는 없다. 그 어느 쪽이든 이란 사람들은 미국의 중동정책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를 조심스럽게 지켜볼 것이다.

필자 이메일 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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