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장관은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정책과 대북정책이 완전히 구체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동맹국의 목소리 경청'을 순방의 목표로 정한 것을 반영하듯 일반적이고 원칙적인 발언만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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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회담을 마치고 기자회견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
'북한의 현재 지도부' 강조에 숨은 뜻
이날 오전 서울 도렴동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한미 외교장관회담을 가진 뒤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우선 관심을 끈 대목은 힐러리 장관이 전날 했던 북한 관련 발언이었다.
그는 서울로 오는 비행기 내에서 북한이 후계문제를 둘러싸고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있으며 주변국들과도 긴장이 고조될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의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북한 핵문제에 대한 전략을 신속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힐러리 장관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그러한 발언이 특별한 의도를 가진 게 아니라 '일반론'을 말한 것뿐이라며 의미를 축소시키려는 태도를 보였다. 우리 정부 당국자들도 "의도적이거나 준비된 발언이 아니라 일반적인 답변이었다"고 설명했다.
힐러리는 '후계 관련 발언으로 북한의 반발이 우려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런 우려는 없다"며 "(내가)비밀 정보를 얘기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비상계획을 세울 때에는 모든 것을 다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힐러리는 또 "분명한 후계자 구도가 없고, 부통령도 없고, 총리도 없는 정부에 관여할 때 (후계 문제를) 생각해 봐야 한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지금 북한의 현 정부를 보고 대처하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의 목표는 지금 현재 있는 북한의 그 정부에 대처하고, 현재의 지도부를 어떻게 6자회담 틀로 복귀시킬 것이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후계 문제를 언급한 게 김정일 체제를 무시하는 의미는 아니라는 뜻으로 읽혔다.
또한 북한의 '현재 정부'를 강조한 것은 불확실성이 높은 '포스트 김정일' 시대가 오기 전에 북한과의 문제를 시급히 풀겠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힐러리 장관이 기자회견에서 스티븐 보스워스 전 주한 미국 대사를 북한 담당 특사로 임명했음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도 전날 발언이 북한을 자극하려는 게 아니었음을 내비치고 북한과의 협상 의지를 보내기 위한 포석으로 분석된다. 이달 초순 민간 대표단의 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는 보스워스 특사에 대해서는 북한도 거부감이 별로 없다.
그는 "이번 특사 지명은 오바마 대통령에게도 아주 중요하다"며 "보스워스 특사는 모든 문제에 대응할 것이며, 북한이 국제사회의 위협이라기보다는 건설적인 참여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핵보유는 용인 안 해"
최근 미국 정보기관과 국방부 일각에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려는 듯한 움직임이 있는데 대해 힐러리 장관이 어떤 말을 하는지도 이날 기자회견의 중요한 포인트였다.
이에 대해 힐러리는 "6자회담을 통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달성하는데 한국과 한마음으로 북한이 9.19 공동성명에서 약속한 것을 이행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미국의 공식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그는 이어 "북한이 우리의 대표를 지지해 다시 한 번 6자회담 프로세스를 재개하면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방식으로 비핵화를 달성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도 "여하한의 경우에도 북한의 핵보유를 용인할 수 없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밝혔다.
한편 힐러리 장관은 "그 어떤 주제보다 북한 문제에 있어 한미는 한마음"이라며 "북한은 한국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한국을 비난함으로써 미국과 다른 형태의 관계를 얻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오바마 행정부의 '터프하고 직접적인 외교' 기조에 따라 미국이 한국을 배제하고 북한과의 대화를 적극 추진할지도 모른다는 이명박 정부의 우려를 달래기 위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향후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결정되면 적극적인 대북 접근이 이뤄질 것이고 이에 따라 한국과의 갈등이 빚어질 것이라는 전망은 여전히 우세하다. 힐러리 장관은 이날 보스워스 특사 임명을 발표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오바마 행정부가 조기에 대북 특사를 보내는 걸 반대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지원 문제는 구체 언급 없어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과 관련해 힐러리 장관은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를 기반으로 했을 때 북한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과 관련한 모든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기존의 발언을 되풀이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지원 문제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세부 현안은 원론적인 수준에서 다뤄졌다.
유명환 장관은 회담에서 아프간 재건과 관련해 아프간 현지에 파견된 민간재건팀(PRT) 요원의 규모와 역할 확대 등 기여 확대의 방향에 대해 클린턴 장관에게 설명하고 미국 측은 이에 사의를 표했다.
이에 대해 힐러리 장관은 파병을 직접 언급하거나 이를 암시하는 발언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는 회견에서 '한국에 대해 파병을 요청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아프간 전황 등에 따라 보다 많은 기여를 요청할 가능성을 남긴 것이다.
또한 두 외교장관들은 한미 양국간 협력을 보다 공고히 하기 위해 가까운 기간 내에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힐러리는 "런던에서 대통령간 만남을 기대한다"고 말해 4월 런던에서 열리는 G20 금융 정상회담에서 첫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양 장관은 이어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진전을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 또한 한미동맹 발전방안에 대해 협의하고 금융위기 극복과 4월 금융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 기후변화 등에 있어서도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한편, 힐러리 장관은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에 애도를 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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