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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수의 '오랑캐꽃'] <40>

삼년 동안 한 직장에서 일한 태국인이 찾아왔다. 이름은 분라드.
3년치 달력에다 매일 일한 내역을 빼곡이 적어 왔으니 태국인 치고는 아주 드물게 치밀한 성격이다. 그는 시간외 수당 계산이 잘못 되어 돈을 덜 받았다고 주장했다.

"야간 수당 안 줬어요."
"그러네요. 회사에서 수당 계산을 잘못했는데요."
우리 직원이 계산해보고 회사의 잘못을 인정해주자, 그는 회사를 극도로 불신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것 보라니까요."

그러나 분라드는 회사와 재계약하여 재입국하기로 예정된 몸이었다. 그렇다면 수당 문제는 재입국하고 나서 따져도 늦지 않았다. 우리 직원이 설명했다.
"돈 더 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태국 갔다 와서 받는 게 좋아요."
"태국 갔다가 못 올 수도 있잖아요?"

태국인이 얘기를 부정적인 쪽으로 끌고 가자, 입사한 지 한 달도 안 된 우리 직원도 점점 방어적이 되었다.
"그렇죠. 못 올 수도 있죠."
"그럼 돈 못 받잖아요?"
"그렇겠죠. 꼭 돈 받는다는 보장은 없겠죠."

▲ ⓒ프레시안

그들은 마치 큰 수술을 앞두고 결과에 책임지지 않으려는 의사와, 수술에 마지막 도박을 건 시한부 생명의 환자처럼, 최악의 경우에 대비한 아주 부정적인 대화를 하고 있었다.
"꼭 받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죠?"
"진정서를 내면 되겠죠."
"그럼 진정서를 내주세요."
"태국 갔다 안 올 거죠?"
"예. 안 와요. 돈 받고 그냥 갈래요"
"재입국하면 3년을 더 일할 수 있긴 한데, 아깝긴 아깝다."
"괜찮아요. 돈 받고 그냥 갈래요."
분라드는 똥고집을 부리며 아슬아슬 벼랑길을 달리고 있었다.

"그러면 진정서 써야 하는데, 쓸래요?"
"예,"
직원은 위임장을 받고 진정서를 써주었다. 내가 여기에다는 쉽게 쉽게 썼지만 옥신각신하는 이 일련의 과정이 한 시간쯤 걸렸다.

나는 간섭하지 않고 묵묵히 지켜보았으나 두 사람의 수작이 내 눈에는 너무나 어설프게 보였다. 태국인은 즉흥적으로 행동하고 나서 틀림없이 후회할 테고, 후회하고 나면 틀림없이 우리 직원을 원망할 텐데 왜 저러나?

보다 못해 내가 큰소리로 물었다.
"분라드, 지금까지 회사에서 월급 안 준 적 있어요?"
"없어요."
그렇다면 믿을만한 회사다.
"그럼 태국 갔다 와. 알았어?"

그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바라보다가 의미를 알아채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예. 목사님."
"갔다 와서 돈 받아. 알았어?"
그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예. 목사님."

분라드의 마음이 순식간에 바뀐 것을 보고 태국 통역은 허리를 잡고 웃었다. 하지만 직원은 허탈해서 중얼거렸다.
"그럼 난 한 시간 동안 뭐한 거지?"
내가 속으로 대꾸했다.
"공부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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