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노동조합과 언론개혁시민연대 등이 18일 공동으로 주최한 연속 토론회 '공영방송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올바른 방향'에서는 KBS노동조합을 향해 "한나라당이 수신료를 인상해주리라는 헛된 기대를 버리라"는 비판과 "하루빨리 언론 관계법 반대 투쟁에 돌입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았다.
KBS 신관 5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는 한나라당이 정치적 부담을 안고 수신료 인상을 강행할 이유가 없다는 지적과 수신료가 인상되더라도 재정에 큰 도움이 안될 뿐더러 자연히 구조조정을 수반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 등이 함께 제시됐다.
"KBS 수신료 인상보다 공영성 회복이 먼저"
토론자들은 KBS 노조에 방송의 공영성 회복 없이는 수신료를 인상한다고 해도 '언 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또 수신료 인상의 가능성이 매우 낮으며 수신료를 인상해도 KBS가 확보하게 되는 재원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적잖게 나왔다.
이남표 MBC 정책협력팀 전문연구위원은 "정부 여당이 수신료 인상을 본격 추진한다는 것은 곧 대규모 촛불 집회를 조직해 낸다는 것인데 그렇게 할 리가 없지 않느냐"면서 "정치적 의도를 너무나 분명히 보이고 있는 집단이 수신료 현실화를 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 믿는 것은 위험한 일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도 "한나라당이 수신료를 올린다면 4000원이나 잘해야 5000원 가량 될 것"이라며 "과연 수신료 2000원 올리자고 총대를 멜 정치인이 있겠는가. 또 수신료를 인상한다고 해도 광고를 20%로 제한하면 2조 3500억 원 수준으로 원점"이라고 지적했다.
최영묵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수신료를 지금의 두배로 올린다고 해서 전부가 확보되는 것이 아니다. '조세 거부' 정서에 따라 징수율이 지금 상태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결국은 상당 부분 KBS 예산이 축소되는 것이고 수신료 체제가 붕괴될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강혜란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은 최근 KBS가 청와대의 홍보 지침 파문 보도에 소극적인 것을 들어 "KBS가 충격적인 현실에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데 국민들이 왜 공영방송을 지켜야 하는지 공감할 수 있겠느냐"며 "과연 '그래도 수신료를 올려야 한다'고 할 수 있겠나. 거의 미친 소리 취급을 받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래도 수신료 인상은 필요하다" vs "자연히 거부운동 나올 것"
그러나 이들도 KBS 노조에 대한 '공영성 회복'이라는 요구와 별도로 '수신료 인상 문제' 혹은 '수신료 거부 운동'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두고 상당한 시각 차를 보였다.
양문석 사무총장은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하면서 "정권이 바뀌고 이념이 다르다고 해서 '이렇게 하면 수신료를 못 준다'고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수신료를 사측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삼는데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일단 수신료를 인상하고 방송법과 관련한 논의를 다시 시작하자고 제안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혜란 소장도 "미디어 공공성 강화와 관련한 여러 의제에서 각각의 정치적 국면마다 각을 달리 할 수는 없다. 수신료 인상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다만 한나라당이 정치적 의도에 따라 수신료 문제를 끌어가려는 구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고 이 구도를 물리치고 나서는 좀더 큰 틀에서 제도와 책임을 정비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이남표 연구위원은 "수신료 인상을 시민단체가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본다"며 "정치적 의도가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입장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민사회는 과거에도 공공성 확대 등을 전제로 수신료 인상을 요구해왔기 때문에 (정치적 국면에 따라) 입장을 뒤집는 것으로 볼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최영묵 교수도 "수신료 거부 문제는 시민사회가 하겠다는 차원이 아니라 정치권 등에서 수신료 인상 문제가 나오면 자연히 같은 강도로 거부 논의가 나올 것"이라며 "조세 거부는 기본적인 정서이며 문제는 그런 논의가 나올 때 과연 KBS는 대안이 있느냐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김호석 KBS 수신료프로젝트팀 연구원은 "'수신료 거부 운동'이라는 어휘가 너무 자주 활용되는 상황 자체가 두렵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김호석 연구원은 "수신료 거부 운동이라는 말이 확산될 경우 향후 3년에서 5년간 '수신료 인상'이라는 말 자체를 쓰지 못하는 심각한 사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며 "'거부 운동'이라는 말 자체가 자주 사용되고 있다는 것에 경영진이나 노조 모두 대단히 심각하게 생각하고 그런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KBS노조는 '토론 중'…"법안 통과될 때까지 논의만 할거냐"
이날 토론회에서 시민사회는 KBS노조가 민감하게 생각하는 수신료 문제에 상당한 논의를 벌인 반면, 정작 KBS노조는 향후 언론 관계법 제·개정 반대 투쟁 등에 언제,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현상윤 PD는 최재훈 노조 부위원장에게 "한나라당이 다음 주 중에 언론 관계법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은데 KBS가 언론노조나 타 방송사와 더불어 투쟁하려면 수순상 다음주 초까지는 파업 찬반투표라도 실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양승동 PD도 "앞으로 열흘 남짓 남은 시기 안에 여론을 결집시키는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KBS노조와 시민사회와의 구체적인 연대도 시급한데 KBS노조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라고 물으며 "이번 토론회에서 나온 이야기들에 노조 집행부가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는지도 궁금하다"고 했다.
최재훈 KBS노조 부위원장은 "KBS노조는 향후 미디어 악법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 특위를 구성해 계속 논의하고 있다"며 "사실 1차 회의를 열어 6시간 동안 토의했으나 안을 도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파업도 염두에 두고 있다"면서 "현 집행부는 여타 언론악법도 KBS와 관계가 있다고 보고 반드시 막는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이에 이남표 위원은 "다음주 초에 한나라당은 언론관계법을 상정한다고 하는데 최재훈 부위원장은 어제도, 오늘도 논의 중이라는 대답만 하고 있다"며 "KBS노조는 미디어법안이 통과되고 난 뒤 다음 주말, 3월 초까지 논의만 하고 있지 않겠나"라고 꼬집었다.
양문석 총장은 "KBS 노조는 이번주 시점을 놓치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수밖에 없다"며 "노조는 미디어 특위 내부에서가 아니라 조합원과 직접 논의하고 시민사회와 긴밀하게 접촉하는 등 전면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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