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근에 조세희 소설가가 얘기한 "이 땅에서 바로 이 시간에 '행복하다'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다음 두 부류 중 하나다. 하나는 도둑이고 하나는 바보다." 라고 한 말에서, 한국이란 국가공동체에 발을 붙이고 사는 국민이라면, 과연 그 중에 '시민'으로 자각이 있는 숫자가 어느 만큼이나 될까, 자꾸만 회의가 든다. 더하여 나는, 이 숨 막히는 한국의 사회현실에서 언(言)과 론(論)의 왜곡이 이제 구조화됐고, 여기에 진(眞)과 실(實)이 뒤바뀌어 착란이 일상화된 오늘에서, 이명박을 뽑은 많은 숫자의 사람들은 지금 얼마나 도둑놈들 집단에 편승이나 됐을까, 아니면 여전히 생각 없는 '바보'로 이용이나 당하고 있을까, 크게 의문이다.
나는 질러 말하겠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3단독 조한창 부장판사는 2월 9일, 이른바 '안기부 X파일'을 인용해 '삼성 떡값 검사'의 실명을 공개한 혐의로 노회찬 전의원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조한창, 이 판사의 이름을 기억하고 기록해야만 한다.
이명박 집단의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기억하고 기록하고 단죄해야만 할 인물들이 수시로 늘어나고 있음을 매일 본다, 구토를 느낄 정도의 후안무치한 이들의 궤변들, 어디서 어디까지 고장이 났는지 가늠하기도 어려운 실성한 자들, 이런 인물들이 이젠 너무나 많다. 많아서 다 기억 못할 수도 있으니, 우리 시민들은 이제 기록도 해야 한다. 그래서 반드시 책임질 것을 캐물어야 하고 단죄할 것은 엄중하게 다스릴 수 있어야만 한다. 이게 공동체로서 국가의 기본이다.
무노조경영, 이건희 회장 일가의 봉건적 지배 구조, 경영권 편법 세습, X파일 사건 등에서 확인됐듯이 삼성의 부정직하고 비상식적인 행태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시민들이 분노하고 있었고, 지금도 하고 있다. 지난 <시사저널> 사태에서 보듯이 재벌 삼성은 언론마저 무력케 하는 힘을 보였지만, 기실 그 힘은 치졸하기 짝이 없었다. 꼼수와 암약으로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재벌의 권세란 철저하게 자기 파멸적이기까지 하다.
2005년 8월,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과 홍석현 중앙일보사 회장의 대화 녹취록을 인용해 삼성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의혹이 있는 전 현직 검사들의 실명을 공개한 혐의로 기소된 노회찬 전 의원은 이렇게 말한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삼성 x파일 사건이 나라를 뒤흔든 지 이제 4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4년이 지난 오늘의 현실은 제가 x파일 내용을 공개하던 당시 우려했던 최악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거대권력 남용의 결정판이었던 x파일 사건과 관련하여 단 한명도 기소되지 않았고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떡값수수의혹의 전 현직 검찰간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수사조차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17대 국회의원 거의 전원이 발의했던 특검법도, x파일 공개 특별법도 자동폐기 되었습니다.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한다며 미국대사직을 사임한 사람은 이제 x파일 대화 자체를 부인하며 테이프 조작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안개가 걷히면 본래의 풍경이 뚜렷이 드러나듯이 x파일 사건이 지나가면서 남은 것은 공공의 이익과 국민들의 알권리를 위해 앞장선 두 사람이 법정에 피고의 자격으로 서 있는 모습뿐입니다."
(http://www.nanjoong.net/)
노회찬 전 의원의 말은 '공공의 이익과 국민의 알권리'란 한 국가 공동체의 체제에 있어서, 과연 누가 국가체제를 무너트리고 있고, 과연 누가 국가체제를 지키자고 말하고 있는가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노 전 의원이 공개한 '떡값 관련 홍석현-이학수 대화록' 전문
홍 : 아 그리고 추석에는 뭐 좀 인사들 하세요?
이 : 할 만한 데는 해야죠.
홍 : 검찰은 내가 좀 하고 싶어요. K1들도. 검사 안하시는 데는 합니까?
이 : 아마 중복되는 사람들도 있을 거에요.
홍 : 김 도 좀 했으면
이 : 예산을 세워주시면 보내 드릴께요.
홍 : 정 정 상무, 상무가 아니라 뭐라고 부릅니까?
이 : 전무대우 고문이지요. 정고문. 그 양반이 안을 낸 것 보니까 상당히 광범위하게 냈던 데, 중복되는 부분은 어떻게 하지요? 중복돼도 그냥 할랍니까?
홍 : 뭐, 할 필요 없지요. 중복되면 할 필요 없어요... 갑자기 생각난 게, 목요일 날 김두희 하고 상희 있잖아요,
이 : (리스트에) 들어 있어요.
홍 : 김상희 들어 있어요? 그럼 김상희는 조금만 해서 성의로써, 조금 주시면 엑스트라로 하고... 그 담에 이는 그렇고, 줬고. 김두희 전 총장은 한 둘 정도는 줘야 될 거에요. 김두희는 2천 정도. 김상희는 거기 들어있으면 5백 정도 주시면은 같이 만나거든요... 석조한테 한 2천 정도 줘서 아주 주니어들, 회장께서 전에 지시하신 거니..."
연극 대사인가? 찧고 까부는 텔레비전 연속극에 그 흔한 말장난인가? 아니다. 일개 재벌 기업이 어떻게 국가 공공기구에 중요 종사자들을 뇌물로 동여매고 있는지를, 그래서 한 국가의 공동체를 박살내고 있는지를 그대로,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실록'이다.
위에 등장인물에서 '석조'는 누군가? 등장인물 홍석현의 친동생으로 검사다. 바로 그가 동료 상사 검사들에게 뇌물을 전달하는 임무를 맡은 것으로 '대화록'을 보자면 추정된다.
나는, 대한민국이 정상적인 국가라면, 노회찬 전 의원을 법정에 새울 게 아니라, 노회찬 전의원이 발표한 인물들인 재벌 삼성으로부터 뇌물(떡값)을 받은 검사들 7명, 김상희 법무차관(괄호 안은 당시 직책 ·서울 동부지청 차장검사)과 홍석조 고검장(서울지검 부장검사), 법무장관 출신인 최경원(법무차관)·김두희(성균관대 이사)씨와, 김진환(서울지검 2차장), 안강민(서울지검장), 한부환(서울고검 차장)을 법정에 세워야 했고, 삼성의 이학수, 전 주미대사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을 법정에 세워서 단죄해야함이 마땅하다. 이는 너무 뻔한 법의 상식이다.
그런데, 뒤집어져도 한참 뒤집어졌다. 대한민국의 작금의 현실은 거꾸로 뒤집혀 착란이 구조로 중층적(重層的)이다. 삼성의 비리를 파헤친 MBC 이상호 기자를 기소하고 노회찬 전의원을 기소한 검찰이나 형량을 때린 판사나, 이들이야말로 국가체제를 위협하는 반체제집단에 속한 인물들임을 명확히 하고 기억, 기록해야 함을 나는 거듭 말한다.
대한민국의 국가공동체를 와해시키려 뇌물로 인맥을 쌓아 사설공화국을 꿈꾸는 자들의 집단이야말로 국가 반체제집단이다. 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공공의 직무를 남용하고 뇌물이나 받아먹고, 지켜야 할 법의 근간을 가당찮게 여기는 검 판사들이야말로 국가 반체제분자들이 아니고 그 무엇인가. 여기 프레시안에 지난 칼럼에서 나는 얘기했다. 오랜 시간 대한민국에서는 기득권층이 스스로를 가리켜 '보수'라는 허울로 '보수'를 참칭(僭稱)하고, 반체제가 마치 체제인양 행세를 하면서 민주주의를 찾고 지키겠다는 사람들을 도리어 반체제라 명명한 사실이야말로 엄중하게 바로 잡아져야 하는 언어의 착란임을 나는 이미 말했다.
삼성그룹에서 일했던 김용철 전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이 그동안 삼성에 있는 동안에 알게 모르게 저질렀던 잘못에 대해 공범자로서의 죄책감을 뉘우치면서 천주교 사제들을 찾아갔음은 모두 알고 있다. 김 변호사가 재벌 삼성에 들어간 이후 자신이 재물과 돈의 노예가 된 무서운 사실을 자각했고 개인적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미리 예견하면서도 그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는 확신과 신념에서 사제들을 찾은 것이다. 결국 그가 말한 삼성 재벌 내부의 이야기는 참으로 상상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재산을 아들에게 증여하면서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온갖 편법을 동원했고 편법 세습을 위하여 막대한 비자금을 만들어 불법 로비자금을 통해 국가 기관을 무참하게 능멸했다. 뭐? 경제정의? 민주주의? 다 웃기는 얘기가 됐다. 재벌이 행사한 돈의 힘은 가히 거침없었고 무차별적이었다. 재벌 삼성은 기업 내부의 양심선언이 있을 때마다 힘과 돈으로 강제했고 내부 고발자들을 정신 이상자로 몰아갔다. 모략과 음해와 협박으로 삼성은 자기 발등을 무거운 돌로 내리찧고 또 찧었다. 참으로 어리석고 어리석은 행태다.
그런데? 이번엔 노회찬 전 의원의 재판에서 착란의 뒤집힘이 버젓한 현실로 재벌 삼성은 도리어 피해자 입장이 됐다. 부끄럽게도 삼성의 뇌물을 받아먹으면서 재벌의 하수인이 된 권력기관의 일련의 행태들은 철저하게 치외법권의 울타리에 들어앉아 있음이 확인됐고, 노회찬 전의원이 얘기한 "현직 검찰 요직에 있는 홍석조 검사는 형법 제132조(알선수뢰죄) 및 형법 제133조2항(증뇌물전달죄)에 해당하고, 법무부의 즉각적인 감찰 실시와 당사자들의 즉각적인 파면, 법사위 차원의 청문회 등을 열어야 한다"는 노무현 때의 주장은 공허한 말로 끝났다. 당시 법무부 장관 천정배나 당시 대통령 노무현의 역할 방기가 결국 오늘에 이명박을 불러들였고 이젠 탄탄한 착란현실을 굳혀나가는 실정이 됐다.
법은 상식과 정의에 기초함은 당연지사다. 그런데 이 당연지사가 참담 무인지경이 됐다. 어디 이뿐인가? 날이면 날마다 이명박 집단의 파행과 궤변은 나라 전체를 혼란으로 몰아가고 있다. 세상이 변했고 세계가 변했으며 사회가 변했지만, 이들의 목적은 기득권만의 자가당착에 붙잡혀 함몰돼있다. 이들이 시대 전체를 혼돈과 갈등으로 몰아넣고, 그리고 사법체계를 흔들면서 시민과 국가를 모욕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며, 한 시대 전체를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지를 전혀 모르는 집단임은 점점 명확해졌다. 이제 시민들은 이들 집단을 이루는 구성원들의 이름과 행각을 일일이 기억하고 기록하며 무섭게 단죄할 준비를 해야만 한다. 정말 우리 시민들이 이런 역량을 키우고 드러내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장래는 어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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