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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스라엘은 정치 전쟁 벌였다"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 팔레스타인 지식인이 말하는 침공 배경

2009년 지구촌 사람들을 놀라게 만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 폭격은 무려 1300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많은 집들이 파괴됐다.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거나 생활의 터전을 잃은 현지인들은 지금의 비극적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들의 분노와 좌절감은 어느 정도이고 무엇 때문에 이런 참상이 벌어졌다고 여기고 있을까. 지금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가자 알라자르 대학의 므카이마르 아부사다 교수(정치학 박사)는 이번 전쟁을 '정치적 전쟁'이라고 규정한다. 2월 10일 총선을 앞둔 이스라엘 정치인들이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전쟁이란 초강수를 두었다는 주장이다.

지지율에서 벤냐민 네탄야후 전 총리가 이끄는 강경보수 야당인 리쿠드 당에 뒤지는 집권 여당(카디마 당) 지도자들이 선거에서 이기려면 이스라엘 보수층의 표를 흡수해야 한다는 절박한 계산에서 벌인 전쟁이라는 풀이다.

▲ 므카이마르 아부사다 교수(가자 알라자르 대학교수, 정치학박사) ⓒ가자=김재명

"선거 앞둔 정치적 계산으로 전쟁 벌였다"

아부사다 교수는 그런 주장의 근거를 다음과 같이 꼽는다.

"이스라엘 정치인들은 침공의 명분으로 하마스 징벌을 내세웠다. 하마스가 걸핏하면 이스라엘을 겨냥해 로켓을 쏘아올려 이스라엘 안보를 위협해 왔기에 응징 차원에서 전쟁을 일으켰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번 전쟁에서 압도적으로 희생자를 낸 집단은 하마스가 아니라 일반 팔레스타인 민초들이다.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공격의 목표로 삼았다고 하지만 이는 거짓말이다. 이스라엘군 공습의 주된 피해자는 하마스가 아니라 비무장 민간인이다. 하마스 전사자는 전체 사망자 가운데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전쟁으로 인한 파괴의 정도가 지나치다. 하마스 보안시설이 일부 파괴되긴 했지만, 민간인 주택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스라엘의 하마스 징벌론은 거짓 선전일 뿐이고 결국은 선거를 앞둔 정치전쟁을 벌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이번 침공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전하려 한 메시지는 어떤 것일까. 므카이마르 아부사다 교수는 "이스라엘은 마음만 먹으면 팔레스타인의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다. 그러니 저항하려들지 말라"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한 마디로 '피 묻은 메시지(bloody message)라고 잘라 말했다.

아울러 아부사다 교수는 "이스라엘은 이번 침공을 통해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다스릴 능력이 없음을 보여줌으로써, 팔레스타인 유권자들이 하마스로부터 등을 돌리도록 만들려는 계산을 세웠을 것"으로 본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군사력에서나 정치력에서 이스라엘에 그다지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은 파레스타인 민중들의 높은 지지도와 결속력으로 하마스를 파괴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전쟁을 통해 하마스를 공격하고 팔레스타인 민긴인 주택과 기반시설을 약화시킴으로써, 첫째는 하마스에 대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지지도를 흔들고, 둘째는 팔레스타인 내부의 갈등을 증폭시키려는 계산을 세웠다고 믿는다"


전쟁으로 더욱 커진 내부 분열과 불신

아부사다 교수의 분석대로, 이스라엘이 이번 가자 침공을 통해 하마스의 지지기반을 약화시키고 팔레스타인 내부의 갈등과 분열을 꾀하려 했다면, 그것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가자지구의 전쟁 피해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적개심과 하마스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면서도, 하마스가 신속하게 피해 복구를 지원하려고 나서지 못하는 데 대해 실망감을 숨기지 않았다.

"도대체 하마스는 지금 뭐하고 있나? 말로만 이번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하는데… 우린 전쟁의 패배자가 아닌가. 이런 전쟁 두 번만 했다간 우리 가족 다 죽고 말겠다. 하마스에 실망했다"는 불만들을 털어놓았다.

▲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은 하마스에 대한 지지를 나타내면서도 하마스가 빠른 복구에 나서지 못한다는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가자=김재명

아부사다 교수가 지적한 팔레스타인 내부의 분열도 깊어가는 모습이다. 팔레스타인에는 대(對)이스라엘 투쟁노선에서 강경파와 온건파 등 여러 정치세력이 있고 때때로 총격전도 마다하지 않는 무력충돌 양상마저 보여 왔다.

큰 그림으로 보면, 강경파는 하마스(지도자는 시리아에 정치망명중인 칼리드 마샬)이고, 온건파는 파타(지도자는 2004년 사망한 야세르 아라파트의 후계자인 무하마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다. 이 두 정치세력은 이번 전쟁을 겪으면서 이스라엘이란 공동의 적을 앞두고도 합치기는커녕 서로를 향해 무책임하다느니, 배신자라느니 하며 손가락질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붕괴를 바라지 않는다"

돌이켜 보면, 하마스-파타 두 세력의 권력다툼은 해묵은 사항이다. 지난 2006년 1월 치러졌던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하자, 하마스-파타 두 세력 사이의 권력 다툼은 더욱 커졌다.

중동 평화협상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이 온건파인 압바스 수반을 감싸고 하마스를 소외시키자, 압바스의 타협적인 태도에 대해 하마스의 불만은 더욱 높아갔고, 급기야 2007년 6월 하마스는 가자 지구에서 유혈 쿠데타를 일으켜 파타 세력을 몰아내고 가자지구를 접수했다. 이로써 팔레스타인 사회는 가자지구에 근거지를 둔 하마스 지지 세력과 서안지구에 근거지를 둔 파타 지지 세력으로 나뉘어 갈등을 거듭해왔다.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무력으로 접수한 뒤부터 이스라엘은 가자로 통하는 모든 통행로를 막고 경재봉쇄를 가함으로써 가자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전편 기사에서 가자 남부 이집트 접경도시 라파의 비밀터널에 대해 살펴보았듯이(☞관련 기사 바로가기) 2000개에 이르는 비밀통로는 (이스라엘이 주장하듯 하마스가 비밀리에 들여오는 무기 밀반입 통로일수도 있지만) 이스라엘의 경제봉쇄로 질식하기 직전 상황에 놓인 가자 지구 사람들의 숨통을 트는 역할을 해온 게 사실이다.

하마스 입장에서는 이스라엘의 가자 봉쇄에 대해 파타가 이렇다 할 비난을 삼가고 오히려 이스라엘에 동조하는 듯한 자세를 보이는 데 대해 불만을 나타내왔고, 파타는 파타대로 하마스가 무책임한 강경노선을 고집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침공이라는 참화를 불렀다고 하마스를 비난하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하마스 세력이 붕괴되고 팔레스타인의 정치세력이 파타로 모아지는 것을 바라는 것일까? 아부사다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고개를 젓는다. 하마스가 무너진다면 '이슬람 군대'(Army of Islam)를 비롯해 살라피 그룹에 속하는 보다 근본주의 극한 세력들이 전면에 등장, 이스라엘의 안보를 하마스와는 또 다른 형태로 위협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스라엘은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풀이한다. 그의 분석은 이렇다.

"이스라엘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은 하마스 붕괴가 아니다. 팔레스타인 내부의 권력공백은 이스라엘의 국가이익에도 도움이 안 된다.

이번 전쟁을 통해 보다 약해진 하마스를 만들어 이스라엘 안보에 대한 위협을 줄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팔레스타인 2대 정파인 파타와 하마스가 계속적으로 서로에 대한 불신을 이어감으로써, 팔레스타인 내부의 분열과 갈등을 지속시키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정책을 보다 편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번 침공이 정치전쟁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근거에서다"

"빛 없는 암흑의 나날이 우리 현실"

결국 문제는 팔레스타인 내부의 단결이다. 여러 정파가 하나로 뭉쳐 이스라엘과 그 배후 지원세력인 미국이란 공동의 적에 맞서는 구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안타깝게도 그런 구도가 짜여질 전망은 매우 불투명하다.

가자 지구 현지 취재 과정에서 만난 거리의 보통사람들도 내부 분열과 갈등 양상에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팔레스타인은 미국산 무기 또는 미국 군사기술을 빌려 만든 이스라엘군의 압도적인 화력 앞에 신음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 힘을 하나로 모으지 못한 채 서로 피를 흘리는 모습이다.

▲ 이스라엘의 경제봉쇄로 가자 지구의 에너지 상황은 최악이다. 하루 종일 취사용 가스통을 채우기 위해 줄을 서야하는 상황이다. ⓒ가자=김재명

아부사다 교수와 인터뷰를 하는데 갑자기 전기가 나가고 집안이 깜깜해졌다. "전기가 언제 나갈지 모른다"는 통역 칼리드의 말을 듣고 미리 얼굴 사진을 찍어둔 게 잘한 일이라 여겨졌다. 이스라엘의 봉쇄로 말미암아 가자지구의 에너지 사정은 최악이다. 아부사다 교수는 "빛 없는 암흑은 우리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날마다 겪는 현실"이라고 한탄했다.

빛의 여신, 희망의 여신이 있다면 그녀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외면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이 그렇게도 바라는 독립국가의 꿈을 빛의 여신, 희망의 여신이 힘을 합쳐 이뤄줄 날은 언제쯤일까. 지금으로선 그저 아득해만 보인다.

필자 이메일 : 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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