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검찰, 그들에겐 '인간'이 없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검찰, 그들에겐 '인간'이 없었다"

[윤재석의 '갑론을박']<4> '용산 참사' 수사 결과를 보고

예상했던 결론이 나왔다. '용산참사'에 대해 검찰(서울중앙지검 수사본부)이 오늘 발표한 수사결과 말이다. 기대를 하지 않았으니 실망할 것도 없다고 치부해버리면 그뿐이다. 그래도 남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검찰은 20일동안 김석기 서울경찰청장 등 경찰 지휘부 7명을 비롯해 작전에 투입된 경찰 75명을 100여 차례 서면 또는 소환조사한 뒤 내린 결론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첨예하게 제기돼 왔던 쟁점 사항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과잉은 없었다?

우선 경찰의 과잉진압 여부에 대한 논란. 검찰은 결과를 놓고 볼 때 경찰의 사전준비나 작전 진행상 아쉬운 점은 있지만 형사상 책임은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농성자들이 화염병을 투척하고 쇠파이프 등을 휘두르는 상황이었지만, 경찰 특공대는 방염복과 방패, 진압봉, 휴대용 소화기 등 최소한의 장비만 갖춘 채 투입돼 과잉진압이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권력이 치안유지를 위해 최소한의 진압방식을 동원해 대치국면을 풀려는 노력을 탓하고자 하는 게 결코 아니다. 공권력 행사로 치자면, 미국 경찰은 그야말로 무자비하기 짝이 없다. 단, 그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인권을 보호하는 동시에 치안을 유지하려 한다는 것이다(물론 로드니 킹 사건 같은 게 없지 않지만).

동영상을 통해 여과없이 전해진 현장의 여러 상황을 보면서 과연 그런 결론을 낼 수 있었는지 아직도 궁금하다.

공권력이 사폭력 借力

또 한 가지 간과해선 안될 게 바로 용역업체의 개입 여부다.

검찰은 수사 초기 분명히 밝혔다. 경찰 특공대의 진압 작전 과정과 지휘체계를 조사했지만 뚜렷한 위법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고, 용역업체가 동원된 정황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3일 김석기 서울청장에 대한 서면조사를 마친 후 "정리작업이 끝나는 대로 이르면 5일, 늦어도 6일 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힌다.

그러나 검찰 수사 결과 발표는 연기된다. 바로 그날 밤 MBC <PD수첩>이 '용역업체 경찰 물대포 분사 의혹'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PD저널리즘이라는 이름의 '몰아가기식 보도'라는 비난을 의식했음인지 PD수첩은 냉정하려고 애썼고 객관적이려고 애썼다.

결국 검찰은 5일, 용역업체의 경찰 작전 동원 의혹과 용산4구역 농성 철거민들의 불법행위추가 행위 여부에 대해 수사를 확대한다. 그런데 오늘 검찰은 경찰 대신 물포를 쏜 용역회사 직원들만 공동폭행 혐의로 기소하고 이를 허용한 경찰의 행위에 대해선 책임을 묻지 않았다.

본의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공권력이 사적 폭력의 힘을 빈(借力) 슬픈 사실에 대해, "(물대포) 분사 20분 만에 분사 사실을 알게 됐지만 현장 상황을 챙기느라 바빠 미처 그만두라는 지시를 하지 못했다"는 경찰(용산서 경비과장)고 해명을 액면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경비과장이 잘못한 것은 분명하지만 직무유기는 고의가 있어야 하고 용역회사 직원의 물포 분사를 폭력행위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기 어려워 범죄가 되지는 않는다"고 해석한 검찰의 아량이 놀라울 뿐이다.

김석기 면죄부?

다음으로 김석기 소환조사 면제 논란. 검찰은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에 대해 사실관계 확인서와 서면조사를 통해 필요한 사항은 모두 파악했다며 소환조사는 필요 없다고 판단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김 내정자가 이번 사건의 중심인물이라는 점이다. 지휘에서 수습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무한 책임을 지고 있는 인물이다. 검찰이 수사 초기부터 그에 대한 면담이나 소환을 기피하는 듯한 입장을 취하다가 이대로 끝내는 수순을 밟은 것에 대해 선뜻 이해가 가길 않는다.

김 내정자와 관련된 쟁점 중 그가 참사 당시 집무실에서 무전기를 켜 놓았느냐, 아니면 꺼 놓았느냐는 꺼놓았느냐 하는 것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당연한 쟁점이다. 켜 놓았을 때와 꺼 놓았을 때의 책임 소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전기 On or Off에 대한 실체적 진실은 상당히 중요한 요소다.

"무전기 Off!" 주장, 면책 안돼

문제는 검찰이 김 내정자의 "무전기 Off!" 주장을 별다른 이의 없이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이유인 즉, 서울지방경찰청장실에 비치된 무전기 2대의 로그(접속) 자료를 검토했지만 24시간만 보존되기 때문에 진술이 사실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김 내정자에게 책임은 돌아간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서울청장실 무전기는 당연히 켜놓아야 한다. 그것이 직무와 관련하여 당연히 취해야할 행동이기 때문이다. 만약 켜놓았다면 당시의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을 터이고, 어떤 형태로든 지휘 감독을 했을 것이다. 따라서 참사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한다.

반대로 그의 주장대로 무전기를 꺼놨다면 그건 사태를 지휘 감독해야할 책임자로서 직무유기에 해당되는 행위다. 그 미묘한 순간에 무전기를 꺼놨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는 답변인가?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를 치안총수로 중용하려는 현 정부의 판단은 상당히 잘못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군대로 치면, 교전이 벌어졌는데, 교신 장치를 끄고 유유자적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전시에 이 같은 행위에 어떤 징치를 가하는지는 더 상세히 말하지 않겠다.

총체적 인간 실종이 문제

유족들의 동의 없는 검찰 부검에 대한 시비. 이에 대한 유족들의 불만에 대해, 검찰은 시신의 훼손 정도가 심해 부검 전에는 유족을 확인할 수 없었고 사망 원인 규명을 위해 신속한 부검이 필요했으며 범죄수사와 관련됐을 때는 유족의 사전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설명이다.

법리적으로 그렇다 치자. 하지만 이번 사건 초기부터 오늘 검찰 발표에 이르기까지 사건처리의 저변에 면면히 흐르는 것이 바로 '인간실종'이라는 게 문제다.

농성을 한 철거민들에게 무한한 동정과 두둔을 보내고 싶진 않다. 그들의 저항에 폭력적 요소가 있었다면 일일이 잡아내 징치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문제의 접근 기저에 '인간'이 깔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여당, 심지어 야당조차 이 부분에 대해 별로 고민하지 않는 세태. 인간 실종 개탄스럽다.

(필자 이메일 : blest01@hanmail.net)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