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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랏의 굴욕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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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랏의 굴욕Ⅱ

[한윤수의 '오랑캐꽃'] <35>

다음날 아침 사무실의 화제는 단연 노파랏이었다. 압도적인 분위기는 노파랏을 동정하기보다는 성토하는 쪽으로 흘렀다.
"지가 싸인하고 지가 포기하는 걸 어쩌겠어요?"
이때 노파랏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일순 정적이 흘렀다. 노파랏은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지 못했다.
"미안해요."
어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전말은 이러했다.

사장이 노파랏이 보는 가운데 151만 8800원을 노파랏의 통장으로 입금하고 진정취하서에 싸인을 받았다. 그 다음 사장은
"이제 너도 식대 줘야 할 거 아냐?"
하며 노파랏의 현금카드를 달라고 했고 노파랏은 카드를 내주었다. 바보처럼!
사장은 노파랏에게 비밀번호가 몇 번이냐고 묻고 현금인출기에서 합계 152만원을 인출했다. 한 번에 인출이 안 되니까 처음에 100만원, 두 번째 52만원.
사장은 2회 수수료 2천원까지 챙겼다. 그리고 만원 단위로밖에 인출이 안 되니까 1200원은 덤으로 가져간 것이다.

며칠 후 근로감독관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제 노파랏 사건을 종결해도 되겠죠?"
"안됩니다."
나는 단호히 말했다.
"여기 퇴직금 주었다는 입금증이 있는데두요!"
"준 게 아니죠. 바로 빼앗아 갔으니까. 그리고 남의 카드로 돈을 빼가는 것은 사기죄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근로자가 싸인한 취하서가 있는데두요."
"강압에 의한 싸인입니다."
"태국 친구가 보는 데서 자유의사로 싸인했다는데요."
"그 태국 친구가 누군지 아십니까? 사장 며느리의 친구입니다. 다 한통속이죠. 노파랏은 겁에 질려 싸인한 거예요."
"하지만 일단 싸인하면 끝입니다. 일사부재리니까."
감독관은 귀찮은 사건을 빨리 끝내려는 듯 서두르고 있었다. 그럴수록 나는 천천히 물고 늘어졌다.
"노파랏은 우리 센터에 위임했기 때문에 우리 센터의 진정취하서가 없으면 무효입니다."
"그래요? 그럼 노파랏이 위임했다는 위임장 좀 보내주세요."
감독관은 약간 수그러들었다.
위임장을 빠른우편으로 보냈다.

이틀 후 감독관한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위임을 했다 하더라도 근로자가 직접 싸인한 취하서가 있기 때문에 종결할 수밖에 없겠는데요."
뭔가 강력하게 반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끼고 승부수룰 띄웠다.
"그래요? 그럼 국가인권위에 제소하겠습니다."
인권위에 제소하면 감독관에게도 좋을 게 없었다. 이때부터 퇴직금을 다시 지급하는 쪽으로 사건의 가닥이 잡혔다.

제소는 단순한 엄포가 아니었다. 실제로 우리 센터는 국가인권위에 제소하기 위하여 현금 인출 장면이 찍힌 CCTV 사진을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확보하기로 했다. 먼저 H주임이 은행을 방문하여 협조를 요청하고, 그래도 안되면 내가 직접 경찰서 외사과에 부탁하기로 했다.
감독관이 압박을 가하자 회사는 흔들렸다.
결국 위기감을 느낀 회사쪽에서 노파랏의 통장으로 퇴직금 151만원을 다시 입금시켰다.

나는 다음날 노파랏을 불러 다짐을 받았다.
"이제 절대 싸인 안 할 거죠?"
"예."
노파랏이 씩씩하게 대답했지만 아직은 안심할 수 없다.
그녀에겐 손이 두 개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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