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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도 말 바꾸는데 '비핵, 개방, 3000'은 왜 못 바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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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747도 말 바꾸는데 '비핵, 개방, 3000'은 왜 못 바꾸나"

[정세현의 정세토크]<15> 北 '위협'에 전전긍긍하지도, 무시하지도 말아야

지난 1월 17일 북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이 성명을 발표한 뒤에 정세토크를 할 기회가 있어서 그에 대한 얘길 했었는데, 그로부터 2주 만이죠, 30일 날 조평통(조국평화통일위원회) 명의로 굉장히 강한 어조의 대남 성명이 다시 나왔기 때문에 일단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독자들 입장에서 보면 좀 지루할 수도 있으니까 간단히 정리하고, 동북아 정세 전반에 관한 얘기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지난 두 번의 정세토크에서 연속으로 북한에 대해서 쓴 소리를 했는데, 오늘은 남북 양 쪽에 다 얘기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조평통은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조직이니까 이번 성명은 무시해도 된다는 얘길 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그건 좀 잘못된 설명입니다. 우선 남북 간에 성명전을 하는데 조직의 성격이 무엇이냐가 중요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내용이 중요하죠.

뿐만 아니라 조평통은 1961년 6월부터 통일 관련 대남 성명, 담화, 비망록 발표 등을 내놓기 시작했는데, 북한에서 통일문제와 관련해서 가장 상위의 공식 기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1990년 9월부터 시작해서 91년 말 남북 기본합의서를 채택하고 그 후에도 92년 말까지 8차례 열렸던 남북총리급회담. 거기에 우리는 총리 이하 모두 정부 대표들을 내보냈지만, 북쪽에서는 총리도 나오긴 했지만 조평통 직함을 가지고 나온 대표도 있었어요.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21차례 열렸던 장관급회담에도 조평통 직함으로 대표들이 여러 번 참석을 했었습니다.

어쨌든 조평통 성명은 1월 17일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성명의 연장선상에 있고, 군부가 한 얘기를 당·정 차원에서 뒷받침해준 걸로 이해해야 합니다. 또 남쪽에 한 얘기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을 겨냥한 것으로도 보고 있어요. 심지어 중국에서도 그런 해석이 나왔습니다. 미국 국무부는 바로 반응을 했는데, '수사적 공세가 결코 북한에 도움이 안 된다'고 코멘트했습니다.

인민군 총참모부 성명이 나왔을 때, 나는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북한이 이렇게 세게 나오면 오히려 역효과만 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번에도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북한은 행동을 자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미국과 협상이 시작됐을 때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이 북핵 문제의 우선순위를 사실상 상당히 높여 놓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북한이 그동안 여러 번 써서 뻔히 속이 들여다보이는 장외 압박전술에 미국이 진저리를 치면 북한에 득 될게 없지요.

▲ 조평통 성명이 발표된 지난달 30일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북녙 땅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연합뉴스

핵실험 예고 선언까지 무시했던 오류 되풀이 말아야

북한의 담화나 성명들을 보면, 그 횟수가 거듭될수록 강한 표현을 쓰는 경향이 있어요. 그건 북한만 그런 게 아닙니다. 과거 소련 공산당 시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중국도 1950년대 중후반 대약진운동 시기, 60년대 문화대혁명 시기에 표현이 날로 강해졌었습니다. 그러다 보면 말발이 떨어질 수 있지요. '또 그놈의 소리야? 아이고 이제 그만 하지...'하는 식으로요.

그런데 중요한 건 표현이 점점 강해지는데도 그 오디언스(발표를 들어야 하는 상대)가 별로 중요하게 대하지 않다가는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북한은 미국의 부시 정부를 상대로 발언 수위를 점점 높여 나가다가 그래도 관심을 끌지 못하니까 확실한 초강수를 두지 않았습니까. 그게 핵실험 아닙니까. 그러니까 정세를 분석하고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은 북한의 표현 수위가 높아질 때, 맨 날 하는 소리니까 무시해도 된 다고 비중을 안 둘 경우에 가져올 후과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에 조평통 성명에 대한 우리 정부의 반응을 보면, '맨 날 하는 소리니까 일희일비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하겠다'는 건데...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건 좋아요. 국민들이 불안해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 되지만, 문제는 실제로도 무시하고 무대응하면 부시 시절의 핵실험처럼 북한의 경경 조치를 자초할 수 있다는데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대비를 철저히 해 놔야 합니다.

미국은 2006년 10월 3일, 북한이 핵실험을 하기 6일 전에 핵실험을 하겠다고 '예고 선언'까지 했는데도 무시했어요...북한이 저렇게 강수를 둘 때, 이쪽에서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지만, 거기에 대해서 대비하고, 너무 세게 나가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조치는 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이 계속 투덜거리고 자기들로서는 입장 표시를 했는데, 남쪽에서 그걸 무시하면 대응이나 행동의 수위를 높이고 결국 나중에는 스스로 퇴로를 차단해서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정부 사람들은 그 점을 신경 쓸 필요가 있어요.

북이 무서워서 그러라는 게 아닙니다. 북한한테 끌려가라는 것도 아니에요. 한반도 상황 관리의 책임이 어느 쪽에 있습니까? 현실적으로 책임이 있는 쪽이 여러 가지 가능성과 여지에 대해서도 배려와 대비를 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北 불만의 근원 '비핵, 개방, 3000'…'김하중 통일부'의 기조라도 유지해야

다음 얘기로 넘어가겠습니다. 현인택 교수가 차기 통일부 장관으로 내정돼서 국회 청문회를 기다리고 있는데, 현 교수가 이명박 정부의 '비핵, 개방, 3000'을 입안했다는 사실을 그렇게 부각시킬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꾸 그걸 말하면 현 교수 자신도 통일부 장관으로서 운신의 폭이 좁아지게 될 겁니다.

정부가 출범 당시에는 '비핵, 개방, 3000' 얘기를 많이 했지만, 북한이 4월부터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반발하고, 국제정세도 바뀌는 것 같고, '비핵, 개방, 3000'에 대한 국내 여론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라고 보았는지 정부에서도 작년 여름을 전후해서 '상생, 공영의 대북정책'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었습니다. 그 후로 대북정책의 기조가 바뀌는 것 같은 흐름이 쭉 이어져 왔어요.

그건 김하중 현 통일부 장관이 노력한 결과라고 나는 봅니다. 또 통일부로서도 자신들의 역사성과 정체성에 대한 자기 고민이 반영된 것이라고도 봅니다. 실현 가능성이 없는 정책보다 지난 10년뿐만 아니라 그 이전 대북정책의 역사와도 연결될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통일부가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상생, 공영'은 이명박 정부 기간 동안 남북관계를 더 이상 악화시키지 않는 일종의 안전판 역할을 그럭저럭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현인택 교수에 대해 '통일과 안보 문제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 정도로만 얘기하지 굳이 '비핵, 개방, 3000'의 입안자라는 걸 강조해버리면, 북한으로서도 다시 긴장하고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모르겠어요. 청와대가 현 교수를 '비핵, 개방, 3000'의 기수로서, 확실하게 역할을 하라고 통일부 장관에 지명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만약 그렇다면, 앞으로 임기가 끝날 때까지 남북관계는 풀리기가 좀 어렵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또...이 정부 들어서 한미동맹을 복원하고 강화했다면서 미국이 우리를 무시하고 북미관계를 푼다거나 북핵 문제를 풀지 않을 거라는 식으로 얘기하는데, '비핵, 개방, 3000'으로 계속 나간다면 오바마 정부가 이끄는 미국과 대북 문제를 조율할 수 있는 여지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의 문패가 처음에는 '비핵, 개방, 3000'이었다가 작년 여름부터는 '상생, 공영'으로 바뀌고, '비핵, 개방, 3000'은 그 집의 방 이름 정도로 비중이 조정됐었습니다. 그런데 오바마 정부가 들어선 이 시점에 우리 정부가 다시 '비핵, 개방, 3000'을 전면에 내세우면, 오바마 정부로서도 한국을 매우 부담스러워하지 않겠는가 싶습니다.

이미 오바마 대통령이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까지 확실히 보장해 주면서 핵 폐기를 달성하겠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는 만큼, 우리 정부도 거기에 보조를 맞추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을 해야 하지 않나...그러려면 북한이 더 이상 강수를 쓰지 않도록 뭔가 반응을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게 결국 '상생, 공영'이라는 얘기를 새 장관이 분명히 해 줘야죠.

그 전에 보면 학자 입장에서 밖에서 볼 때 좋은 정책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정부 안에 들어와 일하다 보니 그리 쉽게 잘 안 된다는 걸 알고 수정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비핵, 개방, 3000'도 같은 경우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지금 현실적으로도 이명박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지 않습니까?

솔직히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사람들이 공약을 그대로 지키는 경우가 어디 있어요? 747도 못 지키게 됐잖아요. 그런데 '들어와 보니 국제정세가 비핵, 개방, 3000을 써 먹을 수 없게 됐더라'라는 얘길 왜 못합니까. 7% 경제성장에서 0.7% 성장으로 바꾸는 마당에, '비핵, 개방, 3000' 내걸고 500만 표 차로 당선됐으니 그걸 고수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인데, 그런 논리라면 747도 밀고 나가야죠. 허허 참.

▲ 이명박 대통령과 현인택 통일부 장관 내정자 ⓒ연합뉴스

덮어놓고 한미동맹 타령, 해 봐야 소용없어

그리고...한미동맹을 강화했다느니 자꾸 그래쌓는데, 한미동맹의 실체라는 게...글쎄요, 국방부나 합참에서는 동맹의 실체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우리가 미국산 무기를 많이 사 줄 때에나 미국 사람들이 한미동맹에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가만히 있는 것 같아요.

솔직히 미국 입장에서는 한미동맹을 미일동맹보다 우위에 둘 수가 없습니다. 버든 셰어링(Burden-sharing. 미군 주둔 분담금 등)의 액수나 비율만 봐도 일본만큼 우리를 대접해달라고 할 수도 없고, 무기 구매를 가지고도 그렇고...미국 입장에서는 자기네 물건 많이 사주고 주둔비 많이 내는 쪽을 중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북한의 말보다는 우리의 말을 미국이 기본적으로 더 듣겠죠. 그렇지만 북한을 몰아붙이고 무시해서 얻을 수 있는 전략적 이득보다 전략적 손실이 크다고 생각하면 미국은 결국 북한을 달래거나 끌어안는 식으로, 또는 그들과 유연하게 협상하는 방향으로 갈 수박에 없어요. 그런 맥락에서 한미동맹 강화론이나 협조론을 얘기해야지, 무턱대고 우리가 미국에 가서 부탁하고 매달리면 절대로 우리는 고립되지 않는다고 하는 건 희망사항이에요.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주 금요일 방송 토론에 나와서 통미봉남이란 용어를 폐기해야 한다는 말을 또 했는데...폐기하고 말고 할 게 없어요. 미국이 북한과 관련된 전략적 이해득실을 계산해서, 손실을 막기 위해 얼마든지 북한과도 타협할 수 있습니다...그렇다 보면 그게 바로 통미봉남이 되는 거예요.

한미동맹 강화했다고 아무리 말해도, 가령 미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잘 관리하기 위해서 북한을 적절하게 끌어안던지 아니면 북한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면 그렇게 가는 겁니다.

우리 역사교육에서 구한말의 친청파라든가 친일파, 친러파를 비웃고 있지 않습니까? 근현대사 강의를 하면서 그 때가 엄청나게 비자주적이었던 시기였다는 것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하잖아요. 그것처럼 이명박 정부 시기의 대북정책에 대한 훗날의 역사적 평가도 의식해 가면서, 한미관계도 풀어가야 하지만 남북관계도 소홀히 해선 안 됩니다.

누차 얘기하지만...우리가 북한에 일정한 영향력이나 관계를 유지하면서 '어쨌든 한국이 북한한테 얘기하면 통하더라'는 말이 나오던 시절에 미국이 우리를 대하는 것하고, 남북관계가 완전히 제로이던 상황에서 미국이 우리를 대했던 건 차이가 컸습니다. 김영삼 정부 시절 미국이 우리를 대접해 주지 않았던 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동북아 정세에서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변수가 어떤 조합을 이루냐에 따라 일본, 한국, 북한 이런 나라들이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게 국제정치의 현실입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
이명박 정부가 '비핵, 개방, 3000'을 전면에 다시 내세우고, 한미동맹을 통해 북미관계의 속도를 조절하려는 것 같은데, 혹은 미국의 권고에 의해 북한이 남북대화에 나오도록 하는 식의 접근을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건 모양새도 안 좋고 6자회담이나 북핵 해결 과정에서 우리의 위상과 역할만 떨어뜨리게 될 겁니다.

그러니까 집권 2년차부터는 좀 더 현실적으로 움직였으면 좋겠어요. 현인택 교수가 통일부 장관으로 취임하면, 국제정치학자니까, 동북아 국제정치가 움직이는 큰 틀 속에서 우리가 어느 쪽으로 움직여야 나라의 체모가 서고 민족사적으로도 보람 있는 일을 하나라도 성취할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합니다. 미국에 협조를 요청하는 것도 그러한 바탕위에서 해야 합니다. 학문의 깊이가 있는 분이니까 잘 알아서 하지 않겠나 하는 기대를 갖습니다.

김하중 장관이 어려운 상황에서 '상생, 공영' 간판까지 걸었던 건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현인택 내정자도 그 문패를 그대로 두고, 좀 더 큰 틀에서, 앞으로 4년 동안 남북관계가 뒤늦게나마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놔주길 바랍니다.

* '정세토크'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現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이 한반도 문제에 관해 자신의 경험과 견해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격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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