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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가자의 눈물 언제 그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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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가자의 눈물 언제 그칠까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71> 국내 언론 최초 가자지구 현장 취재기 제1신


<프레시안> 기획위원인 김재명 국제분쟁전문기자(성공회대 겸임교수)가 중동화약고 취재길에 올랐다. 김 위원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 사이의 무력충돌 뒤 한국 언론인으로는 처음으로 이집트 라파 지역을 통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들어갔다. 아래 글은 그의 생생한 중동 현지 취재기 제1신이다.<편집자>

2008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20일 동안 이어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으로 가자지구 사람들은 엄청난 고통 속에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사망자가 적어도 1400명, 부상자는 7000명에 이르며, 많은 집들과 공장들이 파괴되고 농부들은 농사를 망쳤다. 이에 비해 이스라엘은 사망자가 20명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전쟁연구자들은 "무력 충돌에서 비롯된 사망자가 1년에 1000명 이상인 경우"를 전쟁이라 규정한다. 그러나 현지에서 만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이번 무력충돌을 전쟁이라고 보질 않는다.

가자지구에서 제일 큰 종합병원인 시파 병원의 정형외과 의사 모하마드 란티시는 "전쟁이란 교전이 이뤄지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것이 전쟁이지, 이번 경우는 일방적인 공격이고 따라서 학살"이라 주장했다.

유엔 인권이사회의 결의안을 비롯, 이스라엘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는 높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미국과 강고한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한, 이스라엘의 전쟁지도부를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ICC) 법정에 끌어낼 현실적인 길이 없다는 것이다.

▲ 공습으로 불타고 무너진 집에서 성한 물건을 찾아보는 주민들(가자지구 동부지역) ⓒ김재명

인내심 요구되는 가자로 가는 길

가자지구로 들어가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이스라엘의 에레즈 검문소을 거치는 길, 또 다른 하나는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시나이 반도를 거쳐 가자 남쪽 라파로 들어가는 길이다.

이번에는 라파로 가는 길을 골랐다. 에레즈 검문소에 갈 때마다 20살 안팎의 이스라엘 병사들로부터 겪은 의도적인 괴롭힘(무작정 몇 시간씩 검문소에서 우두커니 기다리게 만들어 사람 지치게 하는 수법 등)을 다시 당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방적인다시피한 이스라엘의 공습과 비무장 민간인들에 대한 학살 등 2009년 지구촌에서 벌어진 첫 전쟁범죄를 취재하겠다고 기운차게 인천공항을 떠났다. 밤늦게 이집트 카이로 공항에 내려 다음날 아침 가자지구 남쪽 라파 지역으로 향했다. 모래바람 날리는 시나이반도의 사막지대를 달려 라파 국경통과소에 닿았다. 카이로를 떠난 지 거의 6시간 만이었다. 국경검문소임을 알리는 커다란 아치를 보았을 때 "아, 이제 드디어 가자지구로 가겠구나" 하는 생각에 걸음이 빨라졌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가자지구로 통하는 문을 나서려면,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이집트의 한 관리는 "여권과 언론사의 취재협조 요청서만으로는 가자지구에 들어갈 수 없고 두 가지 서류가 더 있어야 라파 국경을 넘을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은 카이로 주재 한국대사관의 추천서, 그리고 이집트 문공부의 승인서였다. "에구~" 그렇다면 다시 카이로로 돌아가서, 하릴없이 지루한 서류 작업에 매달려야 한단 얘기가 된다. 카이로로 이어지는 사막 한가운데 밤길을 시속 150Km로 내달리는 택시 안에서 무사운행을 바라는 마음에서 택시기사에게 진한 홍차를 건네면서, 이번 취재길이 순탄치 않겠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이집트의 이스라엘 눈치 보기?

나중에 알고 보니 이집트 관리가 말한 그 두 서류만으로도 일이 끝나는 게 아니었다. 라파 국경통과소에 들어서니, 지난 2003년 아프카니스탄 현지 취재 때 얼굴을 익혔던 파키스탄 기자 한 사람이 시무룩한 얼굴로 앉아있다. 그는 이집트 관리가 말한 두 가지 서류를 다 갖춰왔는데도 "하루 종일 대기실에서 통과 허가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이집트 군부대의 보안 검색에서 통과되길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그가 하는 말이 "이토록 가자지구로 가기가 어렵도록 지뢰밭을 여기저기 만들어 놓은 것은 친미국가인 이집트 정부가 이스라엘 정부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나는 고개를 끄떡였다.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취재를 가는 외국 기자들을 어떻게든 괴롭히기로 이미 악명이 높다. 팔레스타인에서 저질러지는 이스라엘의 군사적 억압 통치가 얼마나 현지 주민들을 고통속에 몰아넣는가를 보여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공항에서 이스라엘 보안요원으로부터 "누구를 만나려느냐?" "어디에 묵을 거냐?" 등등 질문으로 30분을 넘기기 일쑤인 검문검색에 항의하다가 이스라엘에 발도 들여놓지 못하고 되돌아간 기자들도 적지 않다.

그런 이스라엘의 행태로 미뤄, 이스라엘 정부가 이집트 정부에게도 라파를 통해 팔레스타인으로 가려는 외국 기자들의 입국을 어떤 형태로든 제한해 달라고 요구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저런 사정으로 예정보다 사나흘 늦게 라파 국경을 넘어 가자지구로 들어갔다.

▲ 하마스의 저항의지를 그린 입간판 ⓒ김재명

거대한 파괴의 현장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는 거대한 파괴의 현장 그 자체였다. 곳곳에서 매스꺼운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이스라엘의 공습에서 비롯된 학살과 파괴의 흔적은 발길을 옮기는 곳마다 쉽게 눈에 띄었다.

가자지구의 남쪽지역인 라파(인구 13만)는 물론 중남부의 칸 유니스(인구 20만), 그리고 가자의 중심인 가자시티(인구 40만) 곳곳이 전쟁의 상처를 그대로 안고 신음하는 모습이었다.

무너져 내린 건물이며 주택, 불탄 채 버려진 자동차들, 탱크와 불도저로 갈아 쓰러져 누운 올리브 나무들… 집을 잃은 사람들은 친척 집에 나뉘어 신세를 지거나, 그럴 형편이 안 되면 무너진 집 바로 옆에 천막을 치며 추운 밤을 지새우고 있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다.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과 눈물이 멈출 날은 언제가 될지 모른다는 우울한 생각을 하며 가자지구의 첫 밤을 맞았다.

▲ 전사한 하마스 요원의 유품 ⓒ김재명

필자 이메일 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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