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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하마스의 시대를 열어줬다"

1400명 목숨 앗아간 학살로 무엇을 얻었나

이스라엘은 22일간의 '가자 학살'을 통해 무엇을 얻었나? 지난 17일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휴전 선언 후 외신들은 이 같은 물음에 대해 이스라엘이 '군사적으로는 승리했지만 정치적·도덕적으로 패했다'고 평가했다.

정치적·도덕적으로 패했다는 것은 주로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 여론의 악화를 말하는 것이었다. 세계 각지에서는 학살 반대 시위가 벌어졌고, 미국마저도 이스라엘이 계속 이렇게 나간다면 더 이상 일방적으로 편을 들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스라엘이 얻은 게 없었다.

한편, 이번 공격은 부패 혐의를 받고 있는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가 가급적 좋은 여론 속에서 총리직을 끝내고, 연정을 맺고 있는 집권 카디마당과 노동당이 2월 10일 총선에서 더 많은 의석을 얻겠다는 정치적인 목표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 이스라엘에서 나오는 여론조사를 보면 카디마당과 노동당은 모두 이번 총선에서 오히려 현재 보다 적은 의석을 차지할 걸로 예상되고 있어 국내정치적 목적마저도 물거품이 됐다.

끝으로, 팔레스타인 무장정치조직인 하마스를 궤멸시키겠다는 공격의 명분은 어떻게 됐나?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해 이렇다 할 반격을 하지 못해 군사적으로는 어려운 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팔레스타인 내부에서 뿐만 아니라 아랍권 전체에서도 정치적 위상을 높였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였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의 중동 전문 기자인 패트릭 콕번이 지난 28일 쓴 르포 기사를 보면 그 같은 평가가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콕번 기자는 팔레스타인 웨스트뱅크(요르단강 서안)의 나불루스에서 쓴 이 기사에서, 팔레스타인의 구(舊) 집권세력으로 하마스와 적대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파타(Fatah)의 지도자들마저 이번 사태로 인해 하마스가 팔레스타인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했다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콕번의 보도에 따르면, 파타는 이스라엘의 공격 직후 그 책임을 하마스에게 묻는 등 팔레스타인의 민심과 완전히 거꾸로 움직였을 뿐만 아니라, 과거 이스라엘과의 오랜 협상에서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함으로써 팔레스타인의 대표체로서의 위상을 하마스에게 내주게 됐다.

이처럼 1400여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살해한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 악화, 하마스의 정치적 입지 강화 등을 종합해 볼 때 이스라엘은 이번 공격으로 단순한 패배가 아닌 '완패'를 당했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그걸 만회하기 위해서일까. 이스라엘은 27일부터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을 다시 문제 삼으며 불안한 휴전을 흔들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이스라엘의 무모한 행동은 '지정학적 자살'에 불과하다는 게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지적이었다. 다음은 콕번이 쓴 기사의 주요 내용이다.

▲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오른쪽)와 노동당 당수인 에후드 바라크 국방장관 ⓒ로이터=뉴시스

가자 사태, 하마스에 팔레스타인의 지배권을 주다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 결과, 이슬람 운동을 하는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민족의 중심 조직으로서의 위상을 야세르 아라파트가 만든 파타로부터 가져오고 있다고 파타 소속의 한 무장요원이 말했다.

웨스트뱅크의 나불루스에 있는 파타의 베테랑 지도자 후삼 카드르는 "하마스의 시대가 왔다. 하마스는 지금 전보다 훨씬 강력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 감옥에 5년 반 동안 투옥됐다가 최근 석방됐다.

"12월 27일 이스라엘이 가자를 공격했을 때 하마스의 시대는 시작됐다."

파타에 대한 지지도 급락, 22일간의 전쟁 기간 동안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에 대한 불신 때문에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앞으로 파타가 팔레스타인의 진정한 대표체라고 주장하기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국제사회는 가자 재건에 있어 하마스를 배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기획부 장관이었던 가산 카티브는 "하마스는 자신들을 저항의 정당으로 보이게 하는데 매우 성공적이었다"며 "그러나 파타와 압바스는 주민들이 저항을 원할 때 그 저항에 반대하는 세력으로 비춰졌다"고 말했다.

압바스는 특히 이번 사태 발발 직후 이틀 동안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해 하마스를 비난함으로써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눈밖에 완전히 나버렸다고 그는 덧붙였다.

후삼 카드르는 이 같은 하마스의 승리를 환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파타가 1968년 3월 카라마 전투(파타 전사들이 이스라엘의 공격을 물리침)를 거치면서 오랜 기간 팔레스타인을 통치할 수 있었듯, 하마스도 이번 가자 전쟁을 거쳐 당시의 파타 같은 위치에 오를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카라마 전투가 파타의 시대를 연 후 40년만에 하마스의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군에 맞서 거의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정치적인 성공을 거뒀다는 것을 알고 있다. 카티브 전 장관은 하마스와 파타가 통합정부를 만드는 게 급선무라면서도, 이번 전쟁 기간 동안 가자에 있는 파타 지지자들이 납치되고 살해당하는 등으로 인해 양측의 증오가 악화됐기 때문에 "통합정부가 탄생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가자 사태 말고도 압바스와 파타가 약해질 수밖에 없는 다른 이유도 있다. 파타는 이스라엘과의 오랜 협상에서 아무 것도 얻어내지 못했고, 오히려 웨스트뱅크에는 붉은 지붕으로 뒤덮인 이스라엘인들의 정착촌만 급속히 커졌다. 25만 명이 살면서 한때 웨스트뱅크의 심장부였던 나불루스의 거리는 텅 비어 있고 상가들은 문을 닫았다.

나불루스의 아들리 야이시 시장은 "나불루스는 지난 8년간 허가를 받은 3%의 사람들만 드나들 수 있는 등 완전히 막혀 있었다. 공장들은 거의 문을 닫았고, 60%의 주민들은 빈곤선 아래서 살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나불루스 봉쇄는 지난 3개월 동안 느슨해졌지만, 어제 둘러보니 도시 외곽 곳곳에 있는 이스라엘군의 검문소에는 차량 행렬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하마스가 부상하고 파타가 몰락한 이유는 압바스 수반이 협상을 했지만 팔레스타인의 보통 사람들에게 해준 게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후삼 카드르는 "우리 파타는 단 하나의 검문소도 없애지 못했다"라고 인정하며, "나불루스에서 웨스트뱅크의 수도 라말라까지는 50km 떨어져 있는데 거길 가려면 요르단에서 터키 앙카라까지 비행기로 가는 시간만큼 걸린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가자 전쟁이 팔레스타인 봉기의 씨를 뿌렸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한 봉기가 언제 일어날지 예상하진 않았지만 "봉기가 시작되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나 이스라엘 사람들한테 매우 힘든 상황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팔레스타인의 한 소녀가 가족 모두 몰살당하고 고양이만 살아남은 곳에서 물건을 줍는 장면이 나오는 텔레비전 화면을 가리키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저 걸 보고 뭘 생각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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