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감세가 모두를 위해 좋다는 등 보수적 정부가 내세우는 경제이론들 중에는 "정치적으로 편향된 정책'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정치적으로 오용되는 경제이론도 있다. 특정 맥락에서 유용한 이론을 편리한 대로 끌어다 쓰는 경우다. 최근 글로벌 경제위기를 진정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케인스보다 슘페터를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조지프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 이론'으로 저명학 경제학자다.
▲ 조지프 슘페터의 추종자로 자처한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 ⓒ로이터=뉴시스 |
하지만 국제경제학자이자 경제사학자로서 케인스의 전기작가로 유명한 로버트 스키델스키 영국 워익대 명예교수는 21일 영국의 <가디언>에 게재된 'The business cycle myth'라는 칼럼(원문보기)에서 "슘페터의 추종자들이 내세우는 경기변동 이론은 오늘날 경제위기에 대해서는 설명력을 잃었다"고 비판해 주목된다. 금융을 중심으로 한 시장주의자들이 슘페터의 이론을 오용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스키델스키 교수는 "슘페터가 말하는 '창조적 파괴'는 기술적 발명이 불러오는 호황과 거품붕괴의 경기변동에 적용되는 것으로, 신용과잉으로 초래된 오늘날의 경제위기에 대해서는 적합성을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이 글의 주요내용이다. <편집자>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은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최근의 금융위기로 인해 자신의 '지적 토대'가 무너졌다고 말했다. 그가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했는지 단서를 찾으려면, 직접 물어볼 기회가 없는 나로서는 그의 회고록 <격동의 시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그의 지적 토대가 무너지기 전인 2007년에 출판됐다.
이 회고록에서 그린스펀은 그가 추종하는 경제학자로 조지프 슘페터를 꼽았다.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라는 개념을 창시한 학자다. 그린스펀은 슘페터의 사상을 이렇게 요약했다. "시장경제는 낡고 뒤떨어진 사업을 해체하고 새롭고 보다 생산적인 사업에 자원을 재분배함으로써 끊임없이 스스로 활기를 되찾는다".
'창조적 파괴'가 적용되는 경기변동의 조건
또한 슘페터는 '적자생존'을 위한 다윈의 자연선택 과정에 비유한 '창조적 파괴'를 통해 자본주의는 삶의 여건을 발전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린스펀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으로 창조적 파괴 과정이 억눌렸지만, 1970년대 규제완화의 물결 속에 미국은 기업가적 정신, 위험을 감수하는 풍조가 많이 회복됐다고 강조했다. 그린스펀은 1990년대 닷컴 호황은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된 결정적인 시기였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1996년 FRB 의장으로서 '비이성적 과열'을 경고하면서도 이를 제지하기 위한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는 장본인이 그린스펀이다. 그가 왜 그런 식으로 행동했는지는 (이제는 무너진) 그의 지적 체계에 비추어 보면 이해가 간다.
호황과 거품붕괴라는 맥락이 아니라면 창조적 파괴가 지속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초창기 경기변동 이론가들은 이 점을 이해했다.
고전적인 경기변동 이론에 따르면, 호황은 일련의 발명에 의해 시작된다. 하지만 낙관적인 전망에 따라 수익성을 넘는 더 많은 투자가 이뤄지면서 결국 거품이 붕괴한다. 은행은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게 해주면서 호황을 더욱 부추기다가 갑자기 자금을 회수하고 나서면서 거품 붕괴의 타격을 더 크게 만든다. 그래도 그 결과로 더 효율적인 자본이 축적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후의 경기변동 이론은 초기 모델 위에 수학적 이론을 덧붙였다. '창조'에 동반되는 '파괴'의 타격을 최소화한다는 게 주목적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기술 발전에 따르는 호황과 경기침체의 사이클 속에서도 실업이 없는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런 묘책이 어떻게 가능한가? 이들의 이론에 따르면, 실질임금을 상승시키는 기술적 '충격'이 왔을 때는 사람들이 더 일을 많이 하면서 생산이 급증하지만, 경기침체의 충격이 올 때는 노동자들이 여가 시간을 늘리면서 생산이 감소하게 된다.
이처럼 실질임금의 변화에 대한 효율적인 대응이 이뤄지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할 필요가 전혀 없다. 제너럴 모터스(GM) 같은 비효율적인 자동차업체들을 구제하는 것은 진보의 속도를 늦출 뿐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정부의 핵심 책무 중 하나로 경기변동에 따르는 충격을 완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현대의 경기변동이론은 변동성을 줄이려는 행위가 복지를 위축시킨다고 주장한다!
"금융위기 초래한 파생상품은 기술적 발명품 아니다"
오늘날 경제위기에 대해 이런 이론이 어떻게 설명하고, 어떤 대책을 내놓을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우선 닷컴 호황 때와 달리 그 이후의 호황을 불러온 기술적 '충격'을 식별해내기 어렵다. 물론 엄청난 신용과잉이 두드러진 시기다. 하지만 새로운 발명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모기지 증권이라 불리는 금융상품에 투입된 것이다. 이 상품은 인류의 기념비적인 발명품이기는커녕 금융 파괴를 초래했을 뿐이다.
또한 현대의 경기변동 이론은 정부가 이런 종류의 '충격'에 대해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이론을 추종하는 경제학자들은 실패한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이 아니었다면 대공황 시기인 1929~1933년으로부터 경기회복은 훨씬 빨리 이뤄졌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늘날 전세계 정부들이 주요은행들을 구제하고, 비효율적인 사업을 보조하고,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거나 더 낮은 임금을 받는 일자리를 찾으려는 합리적인 노동자들의 행동을 방해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도 같은 맥락의 주장이다.
슘페터는 기업가 정신이 주도하는 자본주의에 내재한 역동성을 잘 포착했다. 하지만 그를 추종하는 현대의 후계자들은 '평형'과 '즉각적인 조정'이라는 개념에 사로잡혀 슘페터의 통찰력을 가려버렸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