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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만의 머리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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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만의 머리칼

[한윤수의 '오랑캐꽃']<28>

인도네시아에서는 한국에 오는 노동자들을 엄선해서 혹독한 훈련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교관이 훈련생의 얼굴에 침을 탁 뱉고는
"너희들 이 정도도 못 참으면 한국에서 못 견뎌!"
하고 으른다는 것인데, 나도 현장을 못 보았으니 사실 여부는 알 수 없다. 과연 한국 사람이 그 정도로 모진지? 글쎄다. 아니기를 바란다.

어쨌든 혹독한 훈련을 받아서 그런지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참을성이 강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참을성이 강해서 손해를 보는 일도 있다.

인도네시아 노동자 리만.
아주 똑똑하고 성실해서 회사에서 인정을 받았고 그 덕택에 외국인으로서는 드물게 한국에 두 번이나 왔다.

▲ ⓒ프레시안

첫 번째는 2002년에 와서 2005년까지 일했는데 이때는 퇴직금을 받지 않았다. 사장님이 이렇게 얘기했기 때문이다.
"다음에 한꺼번에 줄께."
리만은 이 말만 믿고 퇴직금 걱정은 하지도 않았다.

일 년 뒤 2006년에 다시 입국한 그는 같은 회사에서 일하다가 2008년 말 그 회사를 퇴직하게 되었다. 그러자 퇴직금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서 퇴직금을 지금 못 주겠다는데요."

센터로 찾아온 리만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나는 서류를 꼼꼼이 살펴보다가 옛날에 받기로 했던 첫 퇴직금은 이미 *3년의 채권 시효가 상실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깝다. 옛날 퇴직금! 한 달 전에만 찾아왔어도 받을 수 있었는데."
"엥? 이제 못받아요?"
"법적으로는 그래요. 못받아요."
"그럼 어떻게 하죠?"
"할 수 없어요. 사장님에게 부드럽게 얘기해 보세요. 옛날 퇴직금도 주실 거죠? 라고."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나?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진다더니. 똑똑한 리만이 이런 실수를 하다니!

리만은 인도네시아 사람 중에서 리더인데다가 오지랖이 넓어서 다른 친구들의 문제를 가지고 센터를 자주 방문하곤 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문제에는 둔감했던 것이다.

내 예상대로 그 회사는 옛날의 퇴직금은 줄 생각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회사의 어려운 사정을 내세워 현재의 퇴직금도 지급하지 않고 있다.
중이 제 머리는 못 깎는다더니. 리만도 제 머리는 못 깎았다.

* 3년의 채권 시효 : 임금 및 퇴직금은 청구사유 발생 후 3년 동안 청구하지 아니하면 시효가 소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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