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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와 부시, 그리고 이명박

[윤재석의 '갑론을박']<2> 제국적 근본주의 vs 온정적 개혁주의

오늘(21일) 새벽 미국 워싱턴DC 국회의사당 앞에서 거행된 제44대 미국 대통령 취임식 장면을 지켜보면서 꼭 8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당시 <국민일보> 국제부장이었던 나는 중앙언론사 국제부장 10여명과 함께, 2001년 1월20일 부시 1기 취임식에 참석했다.


부시, "나안~ 세계를 망쳤을 뿐이고…"

선거에 지고도 대법원 판결에 이긴 미 역사상 전대미문의 편법으로 대통령 자리에 오른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전도는 취임식 날부터 불안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진눈깨비가 간간이 내리는 가운데 지루하게 진행된 취임식 분위기는 썰렁했고, 내셔널 몰에 운집한 관중들의 표정 역시 그저 그랬다.

취임식 행사가 끝난 후 거리 곳곳에선 시위가 벌어졌다. '미 연방대법원이 부패했다'는 주장과 '부시를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 담긴 플래카드를 펼친 시위대의 시위는 격렬하지는 않았지만, 부시 정권의 앞날이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불길한 징조였다.

아니나 다를까! 40회 생일날, 절친한 친구 돈 에번스(부시 1기 행정부 상무장관)의 권유로 술과 마약을 끊고 '거듭난 성도(born again Christian)'가 되었다고 입버릇처럼 떠벌이던 부시는 전혀 신앙인답지 않은 통치로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갈등과 공포, 반목과 피폐의 나락으로 몰아갔다.

굵직굵직한 실책만 봐도 9.11테러에 대한 응징을 빌미로 시작한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대테러전쟁을 비롯해, 원유 확보와 중동 지역에서의 헤게모니 쟁탈을 겨냥해 벌인 이라크 침공, 그 와중에 관타나모 수용소의 인권 유린 등 지난 8년 지구촌에 엄청난 해악을 끼쳤다. 결국 신자유주의적 방임주의로 지구촌 전역에 경제 위기를 위기로 몰아간 월스트리트 발 금융위기를 피시니 블로우로 날리면서,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꼴찌의 성적표를 받고 퇴임했다.

그는 무대 뒤로 사라지면서도 '문제적 리더'임을 전 세계에 완벽하게 각인시켰다. 부시는 자신의 임기 동안 미국은 더 안전해졌을 뿐이고, 자신이 내린 몇몇 힘든 결정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스스로 기꺼이 그처럼 어려운 결정을 내렸을 뿐이고, 그것을 세상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라는 요지의 고별사를 남겼다.

오바마 "나안~통합으로 치유할 뿐이고"

그런 점에서 버락 오바마 신임 미국 대통령의 취임과 미국, 나아가 전 세계가 보여주고 있는 기대와 희망은 지난 8년의 어두운 장막을 걷어내는 한 줄기 서광이다.

제번(除煩)하고 그는 오늘 새벽(한국 시간) 영하의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200여만 명으로 추산되는 군중을 상대로 행한 취임사에서 "예스 위 캔(Yes, We can)"과 "우리는 하나"로 압축되는 도전과 통합을 역설했다.

부시가 남긴 만신창이의 미국을 물려받은 그는 17분간 이어진 연설에서 '미국의 약속 재건'을 주제로 미국의 통합을 역설했다. 경제위기,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미국과 세계가 당면한 과제를 풀기 위해선 "모두 힘을 합쳐 자신감을 갖고 개혁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부시와 오바마의 차이는 어디서 온 걸까? 물론 공화당과 민주당이라는 정당의 정체성 차이에서 두 사람의 차이를 분석할 수 있다. 그러나 솔직히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이, 더 보수적이고 덜 보수적이고의 차이지 보수와 진보, 더 심하게 말해서 우파와 좌파로 두부 자르듯 자를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하다는 것은 이제 얘깃거리도 되지 않는다. 나는 이 둘의 신앙 정체성에서 그 차이를 찾아보고 싶다.

부시 失政은 제국적 근본주의 탓

잘 알려져 있다시피 두 사람 모두 개신교인이다. 한 때 오바마의 미들 네임이 '후세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가 무슬림이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오바마 또한 부시 못지않게 독실한 개신교도다.

여기서 관심을 끄는 것이 부시와 오바마의 신앙 정체성이다.

부시는, 오바마에게 패배한 존 매케인과 함께 미국 남부 '바이블벨트' 출신 보수복음주의자다. 거기까지는 좋은데 한 걸음 더 나아가 근본주의자다. 내 나름 조어(造語)를 하면 제국적 근본주의자(imperial fundamentalist)다. 그는 마치 미국이 구약의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세계 통치를 위임받았기에 거침없이 지구는 농단해도 무방하다는 오만에 빠져 있다. 여기에 유대인 그룹과 다국적기업 및 군산복합체(military industrial complex) 등 자신을 지원하는 세력의 이익을 위해 동물적으로 매진해 왔다. 그렇기에 그의 언행은 언제나 거침이 없었으며, 독단적이었으며, 포용을 상실했다. 심지어 복음주의 신앙의 최고가치 중 하나인 정직조차 헌신짝 버리듯 한 적이 비일비재하다. 이라크를 공격하는 빌미로 후세인-알 카에다 연루 주장과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 보유 주장은 대표적인 거짓말 사례다.

또 하나 심각한 문제. 이 같은 부시의 행태를 정의인 양 포장해 선전하는 세력들이 세계 도처에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나중에 상세히 살피기로 한다.

오바마의 매력은 온정과 개혁

반면 오바마는 같은 복음주의자라도 온정적 개혁주의자(compassionate reformer)라는 점이다(이 또한 내가 만든 조어다). 한 때 민주당의 정강정책에 부합하는 동성애나 낙태 문제에서 유연한 태도를 보인 것 때문에 코너에 몰리기도 했지만 그 역시 확고한 복음주의자다.

그러면서도 부시와 확연히 다른 점은 그의 노선이 온정적이고 개혁적이라는 점이다. 그는 그에게선 신앙은 핵심적인 삶의 가치다. 그는 어릴 적부터 정직 근면 배려 절제 인내 같은 신앙적 가치를 배워 왔다. 그 역시 이따금 '거듭난 성도'임을 시인하지만,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것을 보여준다. 바로 도전과 통합, 그리고 배려인 것이다.

물론 오바마의 포부가 오늘날, 미국민과 세계인이 보여주는 기대대로 이행될지는 미지수다. 부시가 의지했던, 그리고 부시를 지원하는 동시에 발목을 잡았던 세력들의 부단한 공략에 견딜 만한 맷집을 과연 오바마가 보지(保持)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바마가 일약 미국의 대선 후보로 떠오른 이후 보여주는 이 같은 가치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 크다.

공교롭게도 오바마 취임식과 같은 날짜에 대한민국 서울 하고도 용산에선 박정희, 전두환 시절에나 있을 법한 참사가 발생했다. 이에 대한 논박도 제번(除煩)하자.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그런 사태가 개신교 복음주의자를 대통령을 둔 임기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유앙겔리온'인 지도자 있었으면!

기독교에서 복음은 무언가! 아주 얄팍한 성경지식을 동원한다 해도 중학생 교인도 대답할 수 있다. 유앙겔리온, 즉 기쁜 소식이다. 대저 다른 이라면 몰라도 복음주의자를 자임하는 지도자라면 그 스스로 백성에게 복음이 되어야 한다.

미국의 상반된 두 지도자 중 한 사람은 이미 '복음주의'가 가면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새로 임기를 시작하는 또 한 사람의 지도자는 아직은 속단하기 어려운 시점이다. 그렇다면 동양의 작은 나라를 통치하는 또 한 사람의 복음주의자는 과연?

<전국철거민연합회의 배후조종으로 발생한 사건이라는 둥, 예고된 과격시위에 따른 정당한 진압이었다는 둥의 방어논리에 앞서, "백성의 뺨에 흐른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정부(국가)의 책무"라고 설파한 콜롬비아 출신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고언을 한번이라도 유념하면서 이런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막지 못한 것을 통회자복하는 관료와 정치가가 이 땅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밤중 진행된 남의 나라 대통령 취임식 실황을 눈 부비며 지켜보면서 해본 부질없는 생각이다.

이메일:blest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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