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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고3, 수업 끝나자마자 카페行?"

[협동이 공부다 ④] 프랑스의 '교류의 공부'

'공부'에 대한 관심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울 나라가 한국이다. 하지만 공부의 의미와 범주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한국인의 '성적'은 천차만별이다. 인류문명 속에서 공부는 어떤 의미를 지니며, 각 문화권이 갖는 최고의 공부는 어떤 형태인가를 다루는 다큐멘타리 <공부하는 인간-호모 아카데미쿠스(가제)>이 오는 3월께 방송될 예정이다. 무려 2년의 제작기간이 소요된 '대작'이다. 이 다큐멘타리는 비슷한 시기에 책으로도 출간될 예정이다. 저자인 정현모, 남진현 한국방송(KBS) 프로듀서, 출판사와 협의 하에 책 내용의 일부를 5회에 걸쳐 <프레시안>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편집자 주

대입시험에서 유일하게 철학 시험을 보는 나라, 프랑스

피에르는 자전거를 타고 파리의 한 노천카페로 향했다. 그는 유럽에서 교육열이 높은 나라로 손꼽히는 프랑스의 공부현장을 들여다보기 위해 제작진이 집중 취재한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인데, 그가 방과 후 노천카페로 향한 것은 좀 의외였다. 대학입학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판 대입수능시험인 바칼로레아는 1808년 나폴레옹 시대부터 시작된 대입자격시험으로, 매년 6월에 전국적으로 시행된다. 이 시험은 지원하려는 대학의 전공 분야에 맞춰 계열별로 시행되는데, 인문학을 전공하려면 바칼로레아 L(문학), 사회과학은 바칼로레아 ES(경제사회), 순수자연과학은 바칼로레아 S(과학), 산업기술 분야는 바칼로레아 T(테크닉)을 통과해야 한다. 어떤 계열이든 상관없이 불어, 역사·지리, 수학, 철학, 외국어는 공통 필수 과목이고, 해당 전공 분야에 따라 추가로 과목을 선택해 시험을 치른다. 문제 형태는 대부분 논술형이며, 외국어 시험은 구두로 치른다.

바칼로레아는 프랑스의 대학 진학을 위한 관문이며, 대학 선발 기능 외에 합격자에 대해 국가가 고등교육을 보장해주는 시험이다. 그러니까 일단 바칼로레아만 합격하면 언제든 별도의 선발시험 없이 어느 지역, 어느 대학에나 지원할 수 있다.

다만 '대학 위의 대학'으로 불리는 프랑스의 최고 고등교육기관인 '그랑제콜'은 예외다. 바칼로레아만 합격하면 진학할 수 있는 일반 대학과 달리 그랑제콜에 들어가려면 어려운 입학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시험이 워낙 어렵다 보니 바칼로레아에 합격한 뒤 1~3년간 그랑제콜 준비반인 '프레파'에서 시험 준비를 해야 한다. 프레파 입학도 만만치 않아 바칼로레아에 합격해야 하는 것은 물론 고등학교 때 성적이 전교 상위 5% 이내에 들어야 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준비 과정을 거쳐 치열한 입학시험을 치르고 그중 소수의 학생만이 그랑제콜 학생이 되니, 결국 그랑제콜은 프랑스 최고의 두뇌들만이 모이는 학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입학이 어려운 만큼 졸업 후 장래가 보장되기 때문에 많은 프랑스인들이 위장전입, 과외 등을 시켜서라도 자녀를 그랑제콜에 보내고 싶어 한다. 일반 대학보다 취업에 유리한데다 상경 계열, 행정 분야의 경우 좋은 지위와 직장을 보장해주고 프랑스 최고의 인맥을 형성할 수 있는데 어느 부모가 그랑제콜 입성을 바라지 않겠는가? 이런 이유로 프랑스 일각에서는 사회계급을 재생산하고, 정보기술이나 산업경제 부문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지 못해 사회발전에 부흥하지 못하는 그랑제콜을 폐지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바칼로레아는 일반 대학에 진학하든, 그랑제콜에 진학하든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중요한 관문이기 때문에 프랑스 학생들에게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고3 수험생인 피에르가 수업이 끝나자마자 노천카페로 향하니 우리 제작진이 어찌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학교나 학원, 혹은 집에서 과외 등을 받으며 휴일도 없이 24시간 공부에 매달리는 우리나라 고3 수험생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알고 보니 피에르가 노천카페를 찾은 이유는 토론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테이블에 앉은 피에르는 그 무리에 섞여 자유롭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공부하기에도 바쁜 피에르가 토론 모임을 찾은 이유는?

▲ 카페에서 철학 토론 모임을 즐기는 프랑스 사람들 ⓒ위즈덤하우스

프랑스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입시험 때 철학 시험을 보는 나라로, 바칼로레아를 보는 사람은 누구든 철학 시험을 봐야 한다. 그러다 보니 프랑스의 고3 수험생들은 철학 시험 준비에 심혈을 기울이는데, 문제는 바칼로레아의 철학 시험은 하나의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에 나오는 문제들은 '명백한 것을 부정할 수 있는가?',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의 경계선을 규정할 수 있는가?',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락되는가?'와 같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어떤 텍스트를 일방적으로 외울 수 없다. 따라서 철학 시험에 대비하려면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주제를 갖고 끊임없이 토론을 하며 사고의 폭을 넓혀야 한다. 피에르가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된 토론 모임에 주기적으로 참석하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니 피에르에게 이 노천카페는 바칼로레아의 '철학 시험'을 준비하는 또 하나의 공부방이었던 셈이다.

프랑스의 고등학교 철학 수업 역시 철학에 관련된 텍스트를 일방적으로 외우거나 에세이를 작성하지 않고, 관념적인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우리가 찾아간 고등학교의 철학 수업도 토론식으로 이루어졌는데, 그날 주제는 '사실에 반하는 진실은 있는가?'였다. 대입시험에 나올 법한 내용만 파고드는 공부에 익숙한 우리 제작진에게 이들의 토론 주제는 매우 낯설고 난해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서슴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반박하는 의견을 내놓았다. 철학 수업은 시종일관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고, 선생님은 학생들의 의견을 들으며 중재자 역할을 했다. 즉, 프랑스 교사는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올바른 지식을 습득하도록 이끄는 역할을 했다.

우리가 이 학교 철학 선생님에게 수업을 할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학생들에게 항상 처음 생각에 머물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철학은 자신의 생각에만 갇히지 않고 그 생각을 넘어서는 것을 요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이죠. 즉, 철학은 생각을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중요한 학문이기 때문에 결과보다 논증이 더 중요합니다. 쉽게 말해 '내 생각은 이러이러하다'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거죠."

그는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도 왜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이에 대해 얼마나 설득력 있게 논지를 전개해나가는지를 중시하는 시험이라고 했다.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은 주어진 주제에 대해 자신만의 견해로 얼마나 논리적으로 기술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시험입니다. 그래서 바칼로레아의 문제들은 단순히 교과 내용의 개념을 묻지 않아요. 먼저 '옳다'라는 표현을 심사숙고해야 하고, 또 한 번 과연 '옳을 수 있는지 없는지' 여부를 고민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무엇인가에 반해서 옳을 수 있는지를 또 한 번 생각해야 하는, 한마디로 어떤 주제에 대해 정의 내리기 어려운 것이 전형적인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문제죠. 따라서 다른 사람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의견을 내고 논리적으로 이를 설명한다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죠."

이런 이유로 그는 학생들에게 일관된 '모범 답안'을 제시하는 것보다 자신만의 의견을 합리적으로 설득해 나가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고 했다.

"프랑스의 고3 철학 수업은 학생들을 세뇌시키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모두 같은 대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대답이라도 논리적 설명을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좋은 것입니다. 일관된 '예'나 '아니오'가 아니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철학을 배우는 기간이 너무 짧다고 생각했다. 프랑스는 정식으로 고등학교 3학년, 딱 1년만 철학을 배운다.

"개인적으로 철학을 배울 수 있는 기간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1년이면 너무 많은 내용을 급하게 배워야 하니까요. 철학은 시간을 두고 여유 있게 배워야 하는 학문이잖아요. 수업시간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우리가 배운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데 고3은 해야 할 일이 가장 많은 시기이기 때문에 수업시간에 다루었던 것에 대해 생각할 여유도 없어요."

그렇다면 왜 프랑스 학생들은 철학을 배우는 기간이 너무 짧다는 불만을 가질 정도로 1년 동안 치열하게 바칼로레아의 철학 시험을 준비할까?

철학이 계열에 상관없이 누구나 치러야 하는 공통 필수과목이기도 하지만 프랑스어와 함께 배점이 가장 높은 과목이기 때문이다. 경제사회 계열, 이과 계열의 경우는 전체 배점의 10%, 문과의 경우는 무려 전체 점수의 20%를 넘다 보니, 프랑스 학생들은 그 어떤 과목보다 철학 공부를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에 빠지다

바칼로레아에서 철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국민적 관심도 크다. 어느 정도냐 하면 그해 바칼로레아의 철학 시험에 나온 문제는 전 국민이 한 번씩 생각해봐야 할 문제로 인식할 정도다. 그래서 시험이 끝난 후 각 언론매체나 사회단체에서 유명인사와 일반 시민들을 모아놓고 각종 토론회를 연다.

바칼로레아의 철학 시험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는 이유는 프랑스인들은 이를 프랑스 지성을 가늠하는 잣대로 보기 때문이다. 즉, 철학은 자신들의 조국을 세계 문화의 종주국이라고 여길 만큼 지적 자부심이 강한 프랑스인들이 지성을 가늠하는 지표로 삼을 만큼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학문이었다.

프랑스 사회의 유별난 철학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예들이 많은데, 일단 장 자크 루소, 르네 데카르트, 장 폴 사르트르, 모리스 메를로 퐁티,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철학자들이 많고, 철학을 다루는 잡지와 신문들도 다양하다. 무엇보다 제작진이 만난 파리고등사범학교 철학과 교수와의 인터뷰 때 들은 이야기는 프랑스 사회에서 철학이 얼마나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 학문인지 짐작하게 한다.

2011년에 있었던 일이다. 파리고등사범학교 철학과 교수는 프랑스의 대표 일간지인 <리베라시옹>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때가 IMF(국제통화기금) 총재였던 프랑스 출신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이 호텔 여종원을 성추문한 혐의로 세상이 떠들썩했을 때였는데, 이 사건에 대해 철학적 관점으로 글을 써달라는 전화가 왔어요. 어떻게 한 인간의 인생이 이렇게 하루 아침에 흔들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죠. 세계 어느 국가의 일간지도 이처럼 철학과는 무관해 보이는 사건을 철학자나 지성인들에게 연락해서 철학적 관점으로 써달라고 부탁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프랑스의 대표 일간지들은 이런 부탁들을 자주 하죠."

그는 우리 제작진의 흥미를 끌 만한 이야기를 하나 더 해주었다.

"언젠가 크리스마스 전날 또 다른 프랑스 대표 일간지 <르피가로>에서 전화가 왔어요. 북한 김일성의 죽음에 대한 글을 철학적 관점에서 써줄 수 있느냐면서요. 어떻게 한 국가의 민족이 독재자의 죽음을 두고 그렇게 통곡을 할 수 있는지, 시사적인 사건에 철학적 관점을 적용해달라는 것이었죠."

실제로 <르몽드>, <리베라시옹>, <르피가로>와 같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일간지들은 정기적으로 프랑스의 저명한 지성인과 철학자들이 다양한 주제를 갖고 철학적 관점에서 쓴 글들을 기사로 싣고 있었다. 이처럼 프랑스 사회가 철학에 관심이 많으니, 바칼로레아에서 철학이 필수과목인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프랑스의 저력, 교류의 공부

프랑스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지적인 국민이라는 자부심 속에서 살아가며 그 근원에는 철학이 있다. 철학은 프랑스 지성의 토대이자 문화와 예술의 뿌리이다. 또한 프랑스 공부의 본질이기도 하다. 프랑스 사회가 모든 수험생들에게 의무적으로 바칼로레아에서 철학 시험을 보게 하는 이유는 프랑스인들이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철학 교육이 그들이 생각하는 공부의 '정의'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철학 교육은 프랑스 교육의 본질이기 때문에 이들은 인생의 중요한 관문 중 하나인 바칼로레아에서 철학 시험을 반드시 치르게 하고 배점도 높게 책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적 자부심이 강한 프랑스인들이 생각하는 '공부'란 무엇일까? 그것은 곧 생각의 교류를 통해 사고를 발전시켜나가는 것이다. 철학이 생각을 발전시켜나가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왜 프랑스 교육의 본질이 철학 교육이고, 프랑스인들이 철학 교육을 중시하는지 잘 알 수 있다.

프랑스 사회는 '교류의 공부'를 중시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들과 생각을 성공적으로 교류하는 방법을 배우고, 이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사고력을 키운다.

우리 제작진은 프랑스의 한 초등학교 토론수업을 찾아갔다. 이날 아이들은 '우정'이라는 주제를 갖고 토론을 벌였다. 이 수업의 목적은 어떤 주제에 대해 철학적인 관점에서 사고하는 방법보다는 아이들이 자기의 의견을 갖고 다른 사람과 성공적으로 소통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데 있었다. 따라서 '철학 수업'이라기보다는 '커뮤니케이션 수업'에 가까웠다.

프랑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언어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과 성공적으로 교류하는 방법을 익히고, 이런 방법을 통해 모든 것을 배워나간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프랑스 교육과 이스라엘 유대인의 교육은 서로 닮은 듯하지만 다르다. 프랑스 교육도 이스라엘 유대인의 교육도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갖고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학습하는 것을 지향하지만, 프랑스 교육이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적극적인 '협력'의 공부라면 이스라엘의 교육은 진실을 향한 '도전'의 공부다.

두 나라의 교실 풍경만 봐도 이를 확연하게 알 수 있는데, 프랑스 학생들은 대체로 상대를 깊이 존중하고 그 의견을 경청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른 사람과 다른 의견을 갖고 있어도 충돌하지 않는다. 우리가 찾아간 프랑스 초등학교의 아이들도 그랬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들은 상대의 의견에 반하는 생각을 갖고 있어도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거나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는 도중에 끼어들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의견을 피력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도 자기 순서가 되었을 때 말을 했다.

반면 이스라엘의 아이들은 어떤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반박했다. 스승이나 어른에게도 무례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도전적으로 반박하고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유대인 아이들이었다. 자신의 의견이 옳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이들은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고 다른 사람과 토론과 논쟁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생각이 옳지 않음을 깨달았다. 따라서 똑같이 생각을 교류하는 공부 스타일을 지향하지만 비교적 차분하고 질서정연한 분위기에서 토론이 이루어지는 프랑스의 교실과 달리 이스라엘의 교실은 시끄럽고 격렬한 분위기 속에서 토론과 논쟁이 이루어졌다.

한마디로 두 나라의 공부는 모두 자신의 생각, 타인의 생각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프랑스는 다른 사람과 성공적인 생각의 교류를 추구하는 '사회성'에 중점을 둔 공부라면, 이스라엘은 상대와 성공적으로 소통하는 것보다 자신만의 주체적인 의견을 갖는 것을 중시하는 '주체성'에 더 주안점을 두는 공부라고 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 생각과 생각의 만남, 즉 성공적인 교류를 지향하는 공부방식이 오늘날의 프랑스를 만들었다. 서로의 의견을 소통하지 않고 보다 나은 사고의 발전을 위해 협력하지 않았다면 프랑스인들은 지금과 같은 세계적 수준의 문화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교류의 공부는 서양 사회를 대변하는 공부방식이다. 프랑스 외에도 교류의 공부를 지향하는 서양 문명권의 나라들은 많다. 그러나 프랑스만큼 수준 높은 교류의 공부를 보이는 곳은 흔치 않다. 그렇다면 왜 유독 프랑스에서 교류의 공부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일까? 무엇이 프랑스의 교류의 공부를 만개하게 한 것일까?

'교류의 공부'의 화수분, 살롱 문화

프랑스의 수준 높은 교류의 공부는 '살롱 문화'와 관련이 깊다. 흔히 살롱하면 술집, 다방 등을 떠올릴 수 있는데, 프랑스 문화에서 살롱은 단순한 사교장이나 오락장이 아니다. 프랑스인들에게 살롱은 사교의 장이자 대화의 장, 지적 토론의 장, 계층과 계층 간의 이해의 장이었다.

살롱은 남녀노소, 신분과 지위에 상관없이 누구나 출입할 수 있었다. 정치가·귀족·성직자·학자·작가·시인·예술가·관리·법률가·상인·학생·군인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의 출입이 가능했는데, 주로 살롱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교양과 재치를 겸비하고 대부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살롱에 들어오면 누구나 신분이나 지위, 성별에 상관없이 평등한 관계 속에서 자유롭게 대화와 토론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살롱의 운영자가 여성이었기 때문에 대화와 토론의 주제가 여주인의 취향을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도 있었다. 살롱은 무료한 생활에 염증을 느낀 프랑스 여성들이 무료하고 폐쇄된 생활에 벗어나 사회적 활동영역을 넓히기 위해 탄생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창기의 살롱은 매우 여성적인 성격을 띠었다. 주로 중세 무용담이 섞인 연예담, 달콤한 소설, 문학작품에 대한 대화와 토론이 이루어졌다. 그러다가 18세기 후반부터 점차 프랑스인들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공부의 정의를 잘 보여준다고 여기는 철학을 비롯해 정치, 사회 등에 대한 대화와 토론이 벌어지면서 지성인들의 지적 교류의 장으로 변모했다. 살롱은 18세기 계몽사상을 비롯한 새로운 사상이 태어나는 산실이자 이를 전파하는 중개소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토대 형성의 분수대 역할을 했다. 그러므로 살롱은 프랑스 문화사와 지성사,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비중이 크다.

살롱은 성별이나 지위, 출신성분보다는 '재치, 언어 구사력, 바른 예절'을 미덕으로 삼는 비공식적인 공간이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모임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생각과 사상을 교환할 수 있었다. 또한 프랑스인들은 이곳에서 자신의 의견과 사상을 좀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시선, 표정, 몸짓, 억양, 음색 등을 다양하고 실감 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건전하고 자유롭게 대화와 토론이 이루어지고, 보다 효과적으로 상대와 지적 교류를 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공간 덕분에 프랑스는 화려한 토론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고, 이는 프랑스가 다른 서양 문화권의 나라들보다 수준 높은 교류의 공부를 보이는 근원이 되었다.

저자소개

정현모 프로듀서
< 주요 제작 작품 >
- KBS 스페셜 '앨런 가족 이야기'
- KBS 스페셜 '나의 아버지'
※ 다니엘 헤니의 "마이 파더"로 영화화
- 문화의 질주 10부작 시리즈 기획 연출
- KBS 스페셜 '동강 가수리 3년의 기록'
- KBS 스페셜 '서번트 신드롬'
- 세계 탐구 대기획 유대인 2부작
※'유대인의 공부'로 책 출간
- KBS 스페셜 / 추적 60분 / 환경스페셜 등 각종 다큐멘터리 분야 연출
< 주요수상 경력 >
- 방송통신위원회 선정
이달의 우수 프로그램상 다수 수상 등

남진현 프로듀서
< 주요 제작 작품 >
- 2011년 KBS 신년기획 2부작 "블루 이코노미"
- 미국 농부 조엘의 혁명
- 소비자 고발 "매트리스의 공포 등"
- KBS 스페셜 / 다큐3일 / 소비자고발 등 각종 다큐멘터리 분야 연출
< 주요수상 경력 >
- 방송통신위원회 이달의 우수 프로그램상
- 2007년 올해의 좋은 프로그램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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