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은 운명이 아니라 선택입니다
기사의 첫 문장에서 조선일보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모두에 이번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면서 그 이유로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파괴를 목적으로 하고, 이스라엘도 테러집단을 방치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먼저, 하마스가 지난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 참여한 것만 봐도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파괴를 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총선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일부 지역에서 실시되었습니다.
이 총선에 참여한다는 것은 1948년 이스라엘이 점령한 팔레스타인의 78% 지역을 뺀 나머지 22% 지역에서 정치를 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하마스가 원하는 것은 당장에 이스라엘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팔레스타인의 22%를 차지하는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 국가를 세우는 것입니다.
▲ 2006년 1월 라말라에서 하마스의 총선 승리에 기뻐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미니 |
게다가 하마스는 테러집단이 아닙니다. 2006년 1월 팔레스타인 총선이 있었을 때 저는 팔레스타인에 있었고, 하마스를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라말라에서 아이스크림 가게를 운영하던 쌍둥이 아빠도, 전직이 선생님이었던 헤브론의 한 아저씨도 하마스를 지지했습니다.
그들이 하마스를 지지했던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점령에 맞서 계속 저항해 왔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의료·교육 등의 사회복지 사업을 많이 해 왔기 때문입니다. 조선일보도 파타와 하마스가 서로 총을 들고 싸웠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한데, 심지어 파타 지지자들도 하마스를 테러리스트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한국에 한나라당, 민주당, 민주노동당 등이 있듯이 팔레스타인에는 파타, 인민전선, 인민당 등의 정당이 있고 하마스 또한 그 가운데 하나의 정당으로 자신의 이념에 따라 정치를 하려고 할 뿐입니다.
특히 조선일보의 기사에서 위험한 부분은 이번 전쟁은 피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번 학살은 무슨 운명처럼 다가온 것이 아니라 휴전이 진행되던 때부터 이스라엘이 준비한 것을 2008년 12월 27일부터 실행에 들어간 것뿐입니다.
이스라엘이 왜 도발 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기사 중간 제목으로 '하마스는 왜 도발했나'가 나오는데,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것은 먼저 도발을 한 것은 하마스가 이스라엘이라는 사실입니다. 조선일보뿐만이 아니라 다른 언론에서도 의도적으로 혹은 잘 몰라서 하마스가 먼저 도발했다고 하며 책임을 씌우고 있지만 그건 사실과 다릅니다.
2006년 총선에서 하마스가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집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경제봉쇄를 단행했고, 이스라엘이 거둬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로 넘겨주던 세금의 이전도 중단했습니다. 그리고 2006년 6월부터는 '여름비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가자지구에 대한 군사공격을 감행해 그해 말까지 수 백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살해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도 하마스가 무너지지도, 팔레스타인인들이 자신들이 선택한 하마스를 포기하지도 않는 것을 보고 미국과 이스라엘은 파타에게 돈과 무기를 제공해 쿠데타를 일으켜 하마스 정권을 무너뜨리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조선일보가 말하는 '내전'의 원인입니다. 파타의 쿠데타는 실패했고 하마스는 가자지구에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었습니다. 하마스가 선거를 통해 집권을 했으니 가자지구에서 정치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조선일보는 또 '이스라엘은 왜 응전 했나'라는 작은 제목의 글에서 이스라엘이 하마스 로켓 공격에 대한 자위적 차원에서 전쟁에 돌입했다고 했습니다.
하마스가 그동안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을 날린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을 역사적 과정을 통해 설명하고 싶으시다면 이스라엘의 건국이나 1967년 가자지구 점령으로 돌아갈 것도 없이 최소한 2006년 1월부터 이스라엘이 무슨 일을 벌였는지부터 설명해야 합니다.
만약 조선일보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입장이라면 민주적인 선거도 무시하고, 식량과 의약품을 바닥내는 경제봉쇄를 지속하면서 군사공격과 살인을 계속하는 이스라엘을 향해 침묵을 지키겠습니까?
하마스와 팔레스타인인들이 로켓을 날렸던 것은 그들이 호전적인 집단이라서가 아니라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린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입니다. 조선일보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입장이라면 낡은 로켓을 들고 핵무기와 전투기를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을 향해 무턱대고 싸움을 걸겠습니까?
▲ 이스라엘의 미사일 공격으로 잔해만 남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집 ⓒ미니 |
일부러 그러셨나요?
기사 중간에는 큰 글자로 <이스라엘, "100만명이 로켓위협에 노출, 自衛차원의 전쟁" 하마스, 피폐한 경제로 민심 흔들리자 강경 전략 선택>이라는 발췌문이 있습니다. 이것도 조선일보가 일부로 의도한 것인가요?
이스라엘의 입장은 큰 따옴표를 쳐가면서 자위 차원이었다고 그들의 입장을 그대로 전하면서, 하마스는 민심이 흔들리자 강경 전략을 선택했다는 부정적이고 주관적인 판단 말입니다.
그동안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에 요구했던 것은 식량이나 의약품 등을 구할 수 있도록 봉쇄를 중단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오히려 봉쇄를 강화해 수 십 만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식량을 해외 원조 기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병원에는 전기가 끊겨 환자들을 치료할 수 없었고, 외부의 큰 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던 환자들은 더 이상 치료를 받을 수 없어 죽어갔습니다.
그러자 봉쇄가 풀리기를 바라며 휴전을 했던 하마스와 팔레스타인인들은 봉쇄가 풀리지 앉는 휴전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냐며 휴전 중단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기다렸다는 듯이 150만이 살고 있는 좁은 가자지구에 수 백 톤의 폭탄을 퍼부으며 수 천 명의 사상자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조선일보가 생각하는 '자위'인가요?
조선일보의 그 기사 한 문장, 한 문장을 놓고도 너무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짧게 줄여서 제 의견을 말씀 드렸습니다. 제가 조선일보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듯이 조선일보도 아마 제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선일보 측과 제가 만나서 이번 문제를 놓고 공개 토론을 해 보면 어떨까요?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이니만큼 그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토론에 나설 용기는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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