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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방우영 회장도 '재벌 언론'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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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방우영 회장도 '재벌 언론' 반대했다

[기자의 눈]"재벌이 어떻게 언론을 만드냐"던 그 신문사는 지금…

"재벌이 어떻게 신문을 만듭니까. 나랏돈 갖고 돈 번 사람이 정부를 비판할 수 있겠습니까. 신문 사업이란 것이 돈벌이와는 거리가 멀어 우리도 겨우 먹고 살기 바쁩니다. 재벌이 왜 신문에까지 손을 대려고 합니까. 그럴 돈 있으면 신문에 광고나 많이 내 신문사들을 도우십시오."

이는 한국의 모 신문사 사주가 1965년 9월 <중앙일보>가 창간될 당시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에게 쏘아붙였다는 발언이다. 그는 "한해 전 '동양방송(TBC)'를 개국한 삼성그룹이 신문 사업에까지 손을 뻗치려한다는 소문은 진작부터 돌고 있었다"며 언론사 순방 인사차 찾아온 이병철 씨에게 "작정하고 입바른 소리를 했다"며 이같이 자신의 발언을 밝혔다.

그는 "이병철 씨한테 이렇게 대놓고 싫은 소리한 사람은 아마 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나중에 보니 그는 종합미디어 사업을 염두에 두고 신문에 뛰어든 것이었다. 중앙일보는 그해 말 동양라디오와 동양텔레비전을 통합 운영하며 신문 라디오 TV의 3개 매체를 겸영하는 첫 언론사가 됐다"고 했다.

이 신문사 사주는 누구일까. 그는 재벌이 신문이나 방송 등 언론을 소유했을 때 나타날 문제점을 정확히 짚고 있고, 실제로 이들의 '언론계 진출'이 '돈벌이'와는 관련없는 '권력 욕심'에 불과하다는 점도 꼬집고 있다. 그의 발언에서 '신문'을 '방송'으로 바꾸면 정부 여당이 재벌에게 지상파 방송 지분 소유를 허용하도록 언론 관련법 개정안을 추진하는 현 상황에도 딱 들어맞는 발언이다.

놀랍게도 이 발언의 주인공은 조선일보 방우영 명예회장이다. 그는 지난 2008년 1월 자신이 팔순을 맞아 낸 회고록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에서 이러한 내용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최근 <조선일보>가 <중앙일보>와 함께 재벌의 방송사 지분 소유 제한을 완화하는 언론법 개정안의 '바람잡이' 역할을 앞장서서 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방 회장이 '언론의 공공성'을 들어 '재벌 신문' 창간에 반대하는 발언을 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기도 하다.

"재벌 소유의 언론은 권력에 약해지기마련"

▲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의 회고록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김영사)의 표지.
더욱 재미있는 것은 그가 막대한 대기업을 등에 업은 언론이 나타났을 때 언론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서술한 대목이다. 방 회장은 "예상대로 중앙일보는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파상적인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며 "우선 각 신문사에서 기자들을 대량 스카우트 해갔다. 보급소도 공격을 받았다. 돈을 많이 준다니까 다른 신문사 보급소장들이 중앙일보로 몰려갔다. 이때부터 한국일보 판매망이 타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삼성의 막강한 자금력이 언론 시장을 교란시켰다"면서 "60년대 후반에 동양방송에서만 한 달에 100억 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상대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이른바 '삼성중앙방송'과 '민영 미디어렙'이 도입됐을 때의 상황을 연상시키는 지적도 한다. 그는 "중앙일보는 엄청난 자금력을 과시했다. 제일기획이라는 광고회사가 만들어져 삼성 광고를 중앙일보에 몰아줬다"고 했다.

그는 '재벌방송, 재벌신문'이 언론이 될 수 없는 이유도 이야기한다. 그는 "재벌 소유의 신문은 잘 나가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권력에 약해지게 마련"이라며 "그것은 태생적인 한계일 수도 있다"고 했다. 이쯤되면 궁금하지 않을 수없다. 이렇게 재벌이 언론을 소유했을 때의 문제를 잘 아는 사주가 있던 신문사가 왜 한나라당이 재벌에게 방송을 주려는 시도에는 적극 찬동하고 나서는 것일까?

또 '자금력'을 바탕으로한 '재벌신문'의 등장이 '경품'과 '공짜 신문'으로 점철된 왜곡된 언론시장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는 것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방 회장은 "<중앙일보>의 창간은 판매 전선에 일대 전쟁을 일으켰다"며 "신문도 기업이다. 돈 없으면 신문사 문 닫아야 한다"며 부수 확장을 독려했고 한강변에 새로 들어선 아파트에 공짜 신문을 돌리면서 부수를 늘렸다고 밝혔다. 물론 그는 이 내용을 '경영 전략'의 일환으로 소개했다.

그의 서술은 이미 '레드 오션'인 언론 시장에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재벌이 개입했을 때 왜곡된 경쟁이 벌어지게 됨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지적은 많은 이들이 '재벌방송'이 등장했을 때 지금의 케이블 방송에서 보듯 선정적인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공공성이 저하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방우영 회장의 발언, 오늘의 <조선일보>는?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은 2009년 신년사에서 "이제 실험은 끝났다. 실행에 옮겨야 할 때"라며 연내 방송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그의 장남도 '미래전략팀장'으로 전격 승진해 이제 조선일보사의 방송 진출은 방씨 집안의 숙원이 되는 분위기다. 신문사의 자금력을 감안할 때 조선일보사의 방송진출은 몇몇 대기업들과의 컨소시엄 형태로 이뤄지리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조선일보는 결국 '재벌방송'의 교두보가 될 것인가?

이미 재벌과 언론의 상관관계에 관한 '원칙'을 수없이 뒤짚어온 <조선일보>지만 앞으로 이 신문이 방 회장의 발언을 어떻게 뒤엎는지 지켜볼 일이다. "재벌이 어떻게 방송을 만듭니까. 나랏돈 갖고 돈 번 사람이 정부를 비판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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