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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도 너무 몰아치지 말아야"

[정세현의 정세토크]<13> 새해 들어 더 주목되는 인물 '장성택'

5일자 한 신문을 보니까 작년 12월 31일 통일부, 외교부, 국방부 대통령 업무보고의 후일담이 소개됐던데, 대통령이 통일부에 대해 질책성 발언을 했다는 얘기가 나왔더라고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전환기를 만들기 위해 대화를 재개하겠다는 통일부의 보고에 대해 '대화 자체가 목적이 되어선 곤란하다'고 했고, 다른 하나는 통일부가 제대로 된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하면서 '북한으로부터 호응을 끌어내는 게 능사가 아니다. 지원이나 경제협력 같은 건 경제부처한테 맡기면 훨씬 잘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겁니다.

대화 자체가 목적이 되어선 곤란하다는 말에 특별히 보탤 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대목과 관련해서는 얘기를 좀 해야 될 것 같아요. 경제 부처가 경협이나 대북 지원을 더 잘 할 거라는 얘기는 북한이 통일이나 남북교류를 어떤 관점에서 보고 있느냐에 대한 이해가 적기 때문에 나왔다고 봅니다.

北 통전부에 잘 보이려고 경쟁하는 상황 원하나

북한에서는 남북관계를 내각이 아니라 당에서 관장하죠. 통일전선부에서. 그건 북한이 남북관계를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고, 통일전선전략전술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다는 얘기예요. 정치적으로 오케스트레이션을 해야 한다는 거지. 물론 내각 산하에 있는 민경협(민족경제협력위원회)이 교류협력을 담당하긴 하지만, 당 쪽에서 하는 조정이 우위에 있죠.

2007년 2차 남북 정상회담 마지막 날, 10.4 선언이 발표되고 난 직후 백화원 초대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주최하는 환송 오찬이 있었어요. 그때 김 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 당 행정부장이 나한테 그러더라고요. '민화협 일을 하신다고 들었는데 앞으로 경협 쪽에도 관심을 좀 가져 주십시오.'

의외의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무리 북한의 실력자라지만 분명 경제 쪽은 아닌데, 경협 얘기를 하는 걸 보면서 장성택이 당 차원에서 남북경협을 오케스트레이션하는 자리에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즉, 내각의 경협 창구라는 데가 경제 논리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통전부에서 정치적으로 조율을 하고, 또 그 위에 있는 국방위원회는 선군정치 맥락에서 체제에 대한 영향 같은 걸 검토해서 조정하리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런 운영 방식은 상당히 오래갈 거라고 봐요.

그건 우리 경제 부처가 경협을 하려고 할 때 저쪽 창구인 민경협이란 데가 층층시하에서 통제를 받는다는 얘기가 되고, 그렇게 되면 통전부를 창구로 하는 것 보다 일이 훨씬 복잡해집니다.

최근 남북관계 경색되면서 북쪽에서는 국방위원회의 목소리가 커졌지만, 남북관계가 그런대로 안정적으로 유지 발전되어 던 때에는 통전부가 김 위원장한테 직보해서 매듭이 있으면 풀고, 결단할 일이 있으면 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지금은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강경파가 득세해 버리고, 통전부에서 온건하게 남북관계를 끌고 왔던 사람들이 사실상 혁명화 대상이 돼서 하방을 보내졌거나 집에서 근신하는 상황이 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마당에 우리가 경제 부처를 내세워 경협을 한다는 건 너무 이른 얘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경제 부처가 직접 나서서 할 수 있는 상황은, 이론적으로 말하면 남북연합이 상당한 정도로 진전돼서 연방이나 '높은 단계의 연합' 수준으로 진입하려고 할 때나 가능할 겁니다.

저쪽은 10년이 아니라 20년, 30년 전에도 통전부가 나와서 경제고 문화고 다 조정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합의를 해놓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자기네 실무자들끼리 다시 조정을 해야 하는, 그래서 시간이 늦어지고 다시 판을 짜야 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게 어떻게 보면 북한 체제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경협의 대상이 그렇다는 것에 대해 이해를 해야 해요.

그런 발상은 사실 작년 이맘때에도 나온 얘깁니다. 통일부를 없애겠다고 할 때하고 같은 거예요. 부처에다가 다 쪼개주면 된다. 그런데 그 때도 내가 얘기하고 다녔지만, 실제로 그렇게 돼서 우리 부처끼리 실적 경쟁이 붙으면 북쪽에서 모든 걸 총괄하는 통전부한테 점수를 따기 위해 우리 부처들이 경쟁하는 웃지 못 할 장면이 연출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걸 알아야죠.

서독의 경우도 참고할 필요가 있어요. 서독은 1990년 통일이 되자마자 동독 문제를 관리했던 내독관계성을 해체했어요. 각 부처로 사람들을 보냈죠. 어떤 사람들은 베를린 수도건설단으로 가버리고, 누구는 내무부나 경제부처, 정치교육센터로 가고...그리고 나서 10년 후에 후회했습니다. 내독관계성에서 축적된 동독에 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활용할 수 없게 돼버렸기 때문입니다.

종합적인 기획조정 부처 없이 부처들이 각개약진하다 보니 동서독의 실질적인 통합, 사회문화적 통합이 늦어지고 갈등이 증폭되면서 '아, 이거 내독관계성을 너무 빨리 해체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실용적이라고 해서 그렇게 막바로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부작용이 더 커지죠.

▲ 2002년 서울 방문 당시의 장성택 ⓒ연합뉴스
장성택의 '합리성' 주목돼

북한 신년 공동사설 얘기로 넘어가죠. 그걸 보니까 경제 문제에 있어 당을 앞세우는 게 아니냐는 느낌이 들었어요. 한때 김정일 위원장은 '당은 경제에서 손을 떼라'면서 내각을 경제사령부라고 부르고 그랬어요. 그러다가 금년 신년 공동사설에서 '천리마' 속도를 금년부터 2012년까지 재연하자고 강조하면서 '강선의 봉화' 얘기까지 했어요. 강선에는 50~60년대 천리마운동 시절 북한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한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가 있는데, '강선의 봉화' 얘길 들으면서 북한이 앞으로 몇 년 동안 50~60년대의 대중동원 방식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접근을 하려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지난 2000년 이후 조심스럽게 뿌리를 내리던 시장경제적 요소가 조금 퇴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사상적으로 생산성을 높이자는 거니까. 그런데 그건 선군만 가지고는 안 돼요. 결국 당이 나서야 되고, 그러다 보면 당에서 일하고 있는 장성택 행정부장 같은 사람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장성택 부장은 서울에서 한 번 평양에서 한 번 봤는데, 굉장히 조심을 하는 사람이더군요. 2004년부터 한 2년 정도 근신을 했는지 일선에서 안 보이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전에 2002년 가을 경제고찰단의 실질적인 책임자로 서울에 왔었죠.

그때 보니까 북쪽 대표단 사람들이 장 부장을 상당히 챙기더라고요. 가령 기념촬영을 할 때도 중앙에 세우려고 하던데...본인은 한사코 맨 뒤쪽 끝에 가서 서더라고. 그걸 보고 굉장히 조심을 한다는 생각을 했고, 그만큼 어떻게 보면 견제를 받고 있다는 방증이었죠.

특히 북쪽에서 내려온(탈북한) 거물급 인사들이 자꾸 후계자는 장성택이라고 하면서 한때 그 사람이 사라졌었어요. 북쪽 사람들을 잘못 칭찬하면 그 사람을 어렵게 만드는 겁니다. 조심해야 해요. 남쪽 사람들도 북쪽 사람 만나고 와서 '내가 실세를 만났다'느니 하면...그래서 나도 사람에 대해 얘기하는 게 조심스러워요. 잘못하면 다쳐. 그 사람.

2007년 정상회담 끝나고 나서 송별오찬 때 내 옆에 앉아서 점심을 먹었는데, 그때도 보니까 우리 쪽 사람들 여럿이 와서 장성택하고 통성명을 하려고 애를 쓰는 걸 봤죠. 그래도 이 사람은 아주 담담하게 대하지 적극적인 반응을 안 보이더라고요. 그런 걸 봐서는 김정일 위원장이 역시 제일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봐요.

장성택이 역할을 한다면 당 중심으로 경제 선동을 해나가는데 있어서도 조금은 합리적으로 운영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매우 겸손하지만 상당히 합리적일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으니까요.

北도 협박해서 끌려가는 모양새 만들면 안 돼

장성택 같은 사람이 있는 반면 뻔한 소리, 하나마나한 소리를 공개 석상에서 큰 소리로 얘기하면서 마치 자기들의 지휘 하에 우리가 움직이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여기서나 저기서나 그런 사람은 다 있죠.

이변 신년 공동사설에서 나온 것처럼 남쪽의 반정부 투쟁을 선동하는 것 같은 건 좋지 않습니다. 남남갈등을 증폭시킬 뿐이에요. 그걸 보고 나는 북쪽 사람들이 남북관계를 정말로 망치려고 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했어요. 남쪽에서 북쪽을 제대로 아는 것도 필요하지만 북쪽도 남쪽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입장을 표현해야 하는 게 아닌가...아무리 대내적인 용도라고 할지라도.

반정부 투쟁 선동 같은 건 남북관계 회복에 도움이 안 됩니다. 상대방이 입장을 완화하거나 전환할 수 있는 시간을 서로한테 주는 지혜나 아량이 필요해요. 사실 나는 북쪽이 너무 성급하게 몰아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이명박 대통령의 언급 내용이나 정부 대응을 보면 헷갈리는 대목이 있어요. 왔다 갔다 했죠.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 국면, 삐라 문제 같은 걸 보면 이명박 정부도 경색된 남북관계를 더 악화시키는 변수로 작용한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북한도 시간을 좀 줘야 하는데 '12.1 조치'를 취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자기네 일정대로 밀고 나가버렸단 말예요. 국내 정치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통일부 차원에서라도 뭔가 숨통을 터 보려고 하는데 북쪽에서 그렇게 나가버림으로써 통일부를 어렵게 만든 겁니다.

명분을 만들어서 입장을 바꾸게 해야죠.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은 분명하니까 우리 정부가 거기에 맞춰 조율하고 싶어도 북한이 저렇게 세게 나오면 마치 북이 협박하니까 끌려가는 모양새가 되는데, 그렇게는 못 가는 거 아녜요?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사절단이 '트랙 투'를 만들겠다면서 오바마 진영의 핵심 참모들한테 가는 모양인데, 북미관계의 속도를 조절하려고 하는 건지, 미국 얘기를 충분히 들으려고 가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명박 정부도 내년 하반기부터는 입장을 바꿔 갈 수밖에 없으리라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도 상반기 중에 너무 강경하게 안 나오는 게 좋아요.

'정권 초기 남북관계는 늘 경색됐다'는 주장의 허구성

하나만 더 보탠다면...이명박 정부는 '정권 초기 1~2년은 북한이 남한 길들이기 차원에서 남북관계를 정지시킨다'는 얘기를 자주 하는데, 그건 사실과 전혀 다르다는 겁니다.

노무현 정부 초기를 봅시다. 정부가 대북 송금 특검을 수용하면서 북한이 반발했지만, 그것 때문에 남북관계가 1년 동안 성과가 없었다? 북이 노무현 정부를 길들이려고 했었다? 그건 전혀 사실관계가 다릅니다.

특검에도 불구하고 2003년 4월 말에 10차 남북 장관급회담이 열렸어요. 원래 계획보다는 약간 미뤄졌는데, 4월 초에 하기로 한 걸 사스(SARS) 때문에 하순으로 미룬 거죠. 그렇게 4월에 평양에서 장관급회담을 하고, 7월에 서울에서 또 하고. 7월 11차 장관급회담 때는 북한이 핵 관련 국제회의에 나가겠다는 암시를 합니다. 장관급회담 공동보도문 1항에 '적절한 국제적인 방식으로 남북이 협력하는데 동의한다'는 표현이 나와요.

▲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4월 평양에서 열린 제10차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남측 수석대표인 정세현 통일부 장관(왼쪽)과 북측 수석대표인 김령성 내각 참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 남북관계가 당분간 경색된다는 논리는 사실과 다르다. ⓒ연합뉴스
어쨌든 내가 2년 반 정도 통일부 장관을 하면서 장관급회담을 8번 했는데, 김대중 정부에서 3번, 노무현 정부에서 5번 했습니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 처음 한 해 동안 38회의 각종 남북대화가 있었어요. 다음해 6월 30일 내가 물러날 때까지 상반기에만 남북대화가 24회 있었죠, 김대중 정부 말기 2002년 한 해 동안 33회 남북회담을 했는데, 노무현 정부 초기에는 1년 반 동안 62회를 했습니다. 새 정부 초기에 북이 남을 길들이려고 남북관계를 중단한다는 건 이런 사실을 모르고 하는 얘기예요.

김대중 정부 초기에는 2년 정도 남북회담이 안 됐는데, 그건 북한의 길들이기가 아니라 햇볕정책에 대한 북한의 공포 때문에 안 됐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합니다. 햇볕정책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그렇게 얘기를 했으니까. '뒤집어 놓은 흡수통일전략'이라느니 '우릴 녹여먹자는 게 아니냐'느니...굉장히 방어적이었던 거죠. 남쪽을 길들인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쪽에서 그야말로 새로운 패러다임의 대북정책을 가지고 오히려 북쪽을 길들인다고나 할까, 그런 의미에서 당국은 뒤로 물러났지만 민간 차원의 교류협력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활성화시켰죠. 그 과정에서 98년 11월에 금강산 사업이 시작됐어요. 그 후에 북한도 소위 진정성을 이해하니까 정상회담을 받게 돼요. 그러니 정권 초에 으레 북한이 남쪽을 길들인다고 하는 건 설명력이 없는 얘기예요.

김영삼 정부 초기에 남북관계가 경색됐던 건 핵 문제를 가지고 미북간 대화가 되는 것에 대해 한국이 불편해 하니까 북한도 '좋다. 대화 안 하겠다면 우리도 안 한다'고 나왔으니까 그렇게 된 거예요. 그러다 나중에 이래선 안 되겠다, 통미봉남 너무 오래간다고 해서 돌파구 열겠다고 나온 게 95년 6월 대북 쌀지원입니다.

정권 초기 으레 길들이는 시기가 1년 이상 간다는 건 노무현 정부나 김대중 정부 초기 상황과 맞지 않고, 김영삼 정부 초기에 남북관계 경색을 설명하는 데도 전혀 성립이 안 되는 이론이에요.

오히려 정권 초기에 탐색을 더 많이 하려고 하지. 예를 들어 10.26 나고 나서 국보위 시절에 오히려 북쪽에서 대화를 하자고 나왔어요. 그 당시에 남북대화가 상당히 활성화됐었어요.

그러나 저러나 지금 북쪽도 저렇게 세게 나오고 뭐 반정부 투쟁이나 선동하고, 대통령은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서두를 게 없고 경제 부처가 직접 나서야 된다는 식으로 얘기를 한다면 금년도 남북관계는 뭐...별로...돌파구가 열릴 가능성이 그렇게 높진 않은 것 같아요.

* '정세토크'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現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이 한반도 문제에 관해 자신의 경험과 견해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격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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