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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집회? 너희들 김정일한테 돈 받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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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집회? 너희들 김정일한테 돈 받았지?'

[화제의 책] <라피끄 - 팔레스타인과 나>

지구 반대편 팔레스타인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무차별 살육전을 보는 한국인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 그냥 옛날처럼 '이스라엘은 좋은 나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 좋은 나라의 군인들을 향해 돌팔매질을 하는 무법자들'이란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게 차라리 속편했을지 모른다.

팔레스타인의 고통이 제국의 지배 전략과 중동의 패권을 추구하는 이스라엘의 동맹이 낳은 결과물임을 알게 되면서 우리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탈무드의 지혜와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듣고 자연스럽게 이스라엘을 동정했던 인식을 수정해야 한다는 거북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탈레스타인의 역사가 식민지 지배와 분단, 그리고 전쟁을 겪은 우리의 역사와 오버랩되면서 과거 이스라엘의 국가주의에 일체감을 느껴 왔던 우리는 정체성의 혼란에 가까운 어지럼증을 느꼈다. 팔레스타인의 해방 부르짖으며 시작된 1차 인티파다(봉기)가 우리의 민주화 열망이 정점에 이르렀던 1987년 시작됐다는 사실은 묘한 여운을 남겼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자살폭탄 테러 소식이 들려 왔고, 여성 문제 등 이슬람에 관한 안 좋은 얘기들이 신문지면을 장식했다.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이슬람권 강경파들의 과격 발언이 나왔고, 9.11 테러가 있었다.

겨우 실마리를 찾았던 인식의 실타래는 다시 엉켜버렸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의 끝은 무관심이었다. 팔레스타인이란 단어만 보여도 눈을 돌려 버리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룬 기사는 북한 핵문제를 다룬 기사와 함께 비인기 기사순위의 맨 윗자리를 다툰다.

그런데 2008년 12월 또 팔레스타인이다. 팔레스타인을 공격해야만 하는 정치군사적 동기로 충만해 있는 이스라엘이 자국 병사 1명의 사망에 보복하겠다며 하루 만에 300여명에 가까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외면하기는 힘들게 됐다.

▲ <라피크 - 팔레스타인과 나>(팔레스타인평화연대 지음, 메이데이 펴냄> '라피크'는 아랍어로 '동지'를 뜻한다. ⓒ프레시안
그렇다면 '초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그 혼란으로 돌아가 하나하나 다시 짚고 따져봐야 한다. 한국에서 묵묵히 팔레스타인 문제를 고민하고 연대활동을 하고 있는 팔레스타인평화연대가 쓴 <라피끄 - 팔레스타인과 나>는 그러한 작업에 친절한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이렇게 말한다.

"팔레스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이해한다는 것이고, 이스라엘을 이해한다는 것은 미국을 이해한다는 것이며, 미국을 이해한다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거꾸로 말하면 서울 시청 광장에서 성조기를 흔들며 미국을 하나님으로 떠받드는 이들이 미국의 세계 지배를 가능케 하는 힘이며, 이런 힘을 바탕으로 미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스라엘을 지원하고, 미국으로부터 정치·군사·외교·재정 지원을 받은 이스라엘은 그 힘으로 팔레스타인들을 지배하고 착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그러면서 "세상은 서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여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한테 팔레스타인 문제를 설명할 때 일제시대를 가지고 얘기하면 쉬웠다는 경험담을 소개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의 문제를 우리의 문제들과 모조리 대입하려고 하는 것도 무리는 무리다.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가 추천사에서 쓴 것처럼 "부당하게 고통 받고 있는 인간이 있다면 그와 연대하는 것은 생명과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의 당연한 책무이자 권리"라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게 오히려 문제를 편견 없이 바라보게 할 수 있다.

특히 자살 폭탄테러, 홀로코스트, 여성에게 베일을 쓰게 하는 아랍 문화, 미국의 문제 등 예민한 문제를 다루는 3부 '팔레스타인 다시 보기'를 읽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이 쟁점들에 대한 저자들의 고민은 독자의 편견 없는 시선과 화학작용을 일으킬 때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팔레스타인과 우리의 현실을 무리하게 끌어다 놓는 쪽은 오히려 다른 데에 있다.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소박한 시위를 하는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사람들에게 다가가 '너희들 김정일한테 돈 받았지?'라고 묻는 이들.

그들의 머릿속에는 '팔레스타인과의 연대는 반이스라엘이고, 반이스라엘은 반미, 반미는 친북'이라는 회로가 내장되어 있는 모양이다. 혼란스럽고 복잡하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끝없이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이렇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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