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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자 했던 '전쟁범죄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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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잊고자 했던 '전쟁범죄의 추억'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 <70> 이스라엘 영화 '바시르와 왈츠를'

전쟁만큼 인간을 흥분시키고 두렵게 만드는 것이 또 있을까? 우리 인간은 전쟁(죽음)을 두려워하기에 역설적으로 전쟁에 강한 호기심을 품는다. 그래서 죽음이 휴지의 무게처럼 가볍게 다뤄지는 처절한 전쟁영화들을 본다.

지금껏 전세계를 통틀어 3,500개쯤이 만들어진 전쟁영화들은 실제로 전쟁 때에 있었을법한 갖가지 인간 존재방식들을 보여준다. 전쟁이 터지기만을 바라는 무기상인(이른바 '죽음의 상인'), 전선의 참호 속에서 죽음의 공포에 질려 머리를 감싸고 흐느끼는 앳된 병사, "무조건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무책임한 사령관, 전쟁을 증오하는 평화주의자 등등 여러 인간군상이 등장한다.
▲ 팔레스타인 난민학살을 다룬 영화 '바시르와 왈츠를'의 한 장면

난민 학살을 스크린에 담다

이스라엘 출신의 영화감독 아리 폴만이 만든 영화 '바시르와 왈츠를'(2008년)이 보여주는 인간군상은 40대 중년의 사내들, 그리고 바로 그들이 어슴푸레한, 또는 생생한 기억의 타임머신을 타고 20여년을 거슬러 간 20살 안팎의 병사들이다.

이 영화는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를 접목시킨 특이한 실험적 기법으로 관객들의 눈과 가슴을 사로잡는다. 무엇을 주제로? 전쟁 중에 벌어졌던 민간인 집단학살에 관한 것이다.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서남쪽에는 거대한 빈민촌,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모여 사는 사브라(Sabra) 난민촌과 샤틸라(Shatila) 난민촌이 영화 속 비극의 무대다.

인류사의 부끄러운 기록 가운데 하나인 사브라-샤틸라 학살사건(1982년 9월16일)은 이스라엘군의 레바논 침공과 관련이 깊다. 당시 이스라엘 국방장관 아리엘 샤론(전 이스라엘 총리)은 야세르 아라파트를 지도자로 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무장게릴라 세력을 없애겠다고 베이루트를 점령했다. 이스라엘은 기독교 민병대(팔랑헤당) 지도자 바시르 제마엘을 친이스라엘 꼭두각시 정권의 대통령으로 내세우려 했다.

그런데 제마엘이 대통령 취임을 바로 앞두고 폭탄테러로 암살되자, 기독교 민병대원들은 피의 복수를 바랬다. 저녁 무렵 150-200명쯤의 레바논 기독교민병대원(팔랑헤당 무장대원)들이 "팔레스타인 테러분자들을 잡겠다"는 구실을 내세워 난민촌에 들이닥쳤다. 최소한 8백명(팔레스타인 쪽 추정은 3천명)이 죽었고, 희생자 가운데는 어린이들과 부녀자들이 절반을 넘었다.

처벌 받지 않은 가해자들

학살사건이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언론매체를 타고 국제적으로 문제가 되자, 이스라엘 정부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했고, 샤론은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때 조사단은 "샤론이 앞으로 공직을 맡아선 안 된다"고 못 박았었다. 샤론의 정치생명은 끈질겨 20년 뒤 이스라엘 총리가 됐고, 팔레스타인 목조르기에 앞장섰다. 그러다가 2006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지금은 병원의 식물인간이다.

샤론에겐 '전쟁범죄자'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는다. 2001년 희생자 유가족들의 변호인단은 샤론을 벨기에 법정에 고소했었다. 벨기에 국내법이 전쟁범죄에 대한 '보편적 사법권'(universal jurisdiction)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벨기에는 샤론에 대해 사법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싱거운 판결이 내려졌다. 지금껏 그날의 학살 가해자들은 아무도 처벌 받지 않았다.

2006년 이스라엘-레바논 헤즈볼라 사이의 전쟁 회오리가 불고난 뒤 레바논 현지 취재 때 사브라-샤틸라 난민촌에 가보았다. 1948년 이스라엘이 중동 땅에 독립국가를 세우면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세운 곳들이다. 두 개의 난민촌은 60년 세월이 지나면서 커져 이제는 하나로 붙었다. 말이 난민촌이지 하도 오래되어 천막은 없고, 벽돌이나 콘크리트로 지어진 허름한 건물들이 대부분이다. 도시빈민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쓰레기 더미가 곳곳에 쌓여 악취를 뿜어낸다. 바로 그곳에서 난민 3세대 아이들이 공차기를 하고 논다.

그래도 여느 도시빈민촌과는 다르다. 골목길 담벼락에 야세르 아라파트(팔레스타인 지도자, 2004년 사망)의 대형 초상화, 하마스 지도자들의 사진, 이스라엘군에 맞서 싸우다 죽은 '순교자'들의 포스터,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염원이 담긴 벽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투쟁에 지원을 보냈던 이라크 사담 후세인의 포스터 등이 붙어있다. 이 지역의 강한 반이스라엘, 반미정서를 드러낸다. 일부 건물들 벽에는 총알들이 부딪쳐 박혔거나 튕겨나간 자국들이 눈길을 끈다. 그 자국들은 26년 전(1982년) 이곳 난민촌을 휘감았던 아우성과 비명을 말없이 증언한다.

사브라-샤틸라 학살의 희생자들이 집단적으로 묻혀있는 곳은 난민촌 한가운데를 따라 길게 뻗은 시장통 길가에 자리 잡고 있다. 자그만 추모공원이다. 묘소라기보다는 공사장에서 흔히 보는 콘크리트 벽돌들을 30cm쯤 높이로 쌓아놓은 매우 소박한 모습이다. 희생자들의 사진을 대형 입간판과 1982년 학살을 고발하는 걸개그림마저 없다면, 그곳이 학살 희생자들을 기리는 장소라 여기기 어려울 정도다. 그곳에서 만난 70대 초반의 한 팔레스타인 여인은 "죽은 남편과 세 아들의 얼굴이 꿈에 나타날 때마다 이곳에 오곤 한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이스라엘군이 학살 공범"

분명한 것은 그 학살사건의 배후에 이스라엘군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기독교 민병대원들은 피의 복수를 바랬다. 이스라엘 국방장관 아리엘 샤론은 '푸른 신호등'을 켜주었다. 레바논 기독교 민병대원들이 팔레스타인 난민촌으로 들어가 학살극을 벌이는 동안, 이스라엘 군대는 국방장관 아리엘 샤론의 명령에 따라 (영화 끝부분에서 보듯이) 난민촌 외곽을 탱크로 둘러싸고는 밤새도록 조명탄을 쏘아 올려 기독교민병대로 하여금 마음껏 학살을 저지르도록 도왔다.

영화 '바시르와 왈츠를'의 주인공 '나'는 팔레스타인 난민촌 외곽을 포위한 부대의 일원이었음을 기억하지 못해 답답해한다. 그래서 친구인 정신과의사를 만났고 그의 충고에 따라 지난날 전우들을 찾아다니며 기억의 파편을 짜 맞춰 나간다. 베이루트 시가를 순찰하다가 적군의 기습사격을 받자, 바시르의 대형 초상화가 내걸린 길거리에서 춤추듯 기관총 반동에 몸을 뒤틀며 마구잡이로 사격을 해댔던 전우도 만난다(영화의 제목도 그 장면에서 따왔다).

차츰 주인공 '나'는 잊었던 악몽의 그날 밤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상관의 명령에 따라 난민촌 밤하늘을 향해 조명탄을 쏘아 올렸던 사실, 그리고 살아남은 팔레스타인 여인들의 서글픈 행렬과 마주쳤던 사실이 떠오른다. 여기서 드러난다. 그 기억들은 그저 잊혀졌던 것이 아니라 악몽같았기에 잊고자 애썼던, 기억의 창고에서 영원히 닫아버리고 싶었던 기억들이었음을!

가해자로 나서든 피해자이든, 전쟁이란 기본적으로 병사들에겐 스트레스다. 베트남전쟁 미군참전자들 가운데 '심리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발병율은 30%로 추정된다. 영화 속 주인공 '나'의 전우는 26마리의 사나운 개들에 쫓기는 악몽을 꾸곤 한다. 학살의 기억을 잃은 주인공 '나'도 또다른 의미의 PTSD 환자다.

영화 속 인상적인 장면 하나. 레바논을 침공한 이스라엘 군인들은 탱크를 탄채 주변 집들을 향해 마구잡이로 기관총을 쏘아댄다. 그 장면은 제법 오래 관객들에게 보여진다. 그리고 왠지 어디서 본듯이 익숙하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리곤 곧 무릎을 탁 치게 된다. 5년 전 뉴스 화면에서 보던 바로 그 장면...이라크를 침공한 미군 병사들이 바그다드 공항에서 시내로 이어지는 도로를 처음 진입하면서 마구잡이로 총알을 쏴대던 바로 그 모습이다.
▲ 1982년 사브론-샤틸라 난민수용소 학살사건의 희생자들이 묻힌 추모공원(레바논 베이루트 ⓒ김재명

좌우파 모두가 불만족인 영화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서 이 영화에 대해 평이 엇갈릴 수밖에 없다. 보수우파적인 유대인들은 "영화감독 아리 폴만이 조국 이스라엘을 지키려다 전사한 유대인들의 명예에 흠집을 냈다"고 여길 것이다. 그래서 폴만을 '배신자'라고 몰아세운다.

이스라엘에는 "우리와 이웃한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지닌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있다. 중동땅을 '하느님이 약속해주신 땅'이라 우기기보다는 이른바 '땅과 평화의 교환'(팔레스타인이 독립국가를 세우도록 해주고, 그럼으로써 이스라엘은 평화를 얻는다는 입장)이 합리적이라 여기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1996년)의 길을 연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이 중동평화의 서막이라고 박수를 쳤던 사람들이다.

이스라엘 골수우파들은 이들을 가리켜 '좌파'라 부르지만, '좌파'들은 스스로를 '합리적 평화주의자'라고 여긴다. 문제는 이들 '합리적 평화주의자'들이 다수가 아니고 소수라는 점이다. 이들 '좌파'들이 영화 '바시르와 왈츠를'을 본다면, 팔레스타인이나 레바논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리엘 샤론의 전쟁범죄를 직접적으로 고발하지 않았다"고 비판을 가할 것이 틀림없다.

전두환과 왈츠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당연히 이스라엘군이 학살을 부추기고 도운 공범이라 여긴다. 사브론-샤틸라 난민수용소에서 총상을 입고 살아남은 몇몇 남자들은 웃통을 벗거나 바지를 걷어 올려 몸에 난 그날의 상처를 보여주며 "이스라엘이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고, 살인교사라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우길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시각에서 보면, 영화 '바시르와 왈츠를'은 뭔가 밝힐듯하다가 그만 둔, 한마디로 허탈한 느낌을 주는 영화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영화 '바시르와 왈츠를'을 만든 아리 폴만 감독은 이스라엘이 저지른 전쟁범죄를 뒤늦게나마 고백하려는 태도를 보이긴 했으나, 2%가 부족한 영화를 만들고 말았다. 폴만 감독은 좌우로 갈려 갈등을 거듭해온 이스라엘의 미묘하기 그지없는 정치지형에 신경을 쓴 나머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제대로 다 전하지 못한 모습이다.

영화 '바시르와 왈츠를'은 1980년 5.18 광주학살을 떠올린다. 사브론-샤틸라 외곽에 투입돼 혹은 탱크에서 혹은 조명탄을 쏘아올리며 결과적으로 학살극의 조연 역할을 맡았던 이스라엘 병사들처럼, 그 잔인했던 오월의 봄날,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광주에 투입됐던 병사들을 주인공으로 한 자기고발적 영화를 기대해본다. 영화제목부터 미리 정해보자. '전두환과 왈츠를'이라고...

(이 글은 <씨네21> 최근호에 실은 필자의 글을 바탕으로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필자 이메일 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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