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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금융실패 부른 5가지 결정적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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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금융실패 부른 5가지 결정적 계기

스티글리츠 "레이건에서 부시까지…자율규제 '망상'이 근본 원인"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에게 경제자문을 해주는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가 대중적인 잡지 <베네티페어>에 글로벌 경제위기를 초래한 미국의 금융정책 실패의 역사를 되짚은 글을 기고해 주목된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Capitalist Fools'라는 이 글(원문보기)에서 현재의 경제위기를 초래한 중요한 결정들을 다섯가지로 정리하면서, 미국인 전체가 시장을 맹신하는 환상에 빠져있었기에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등을 거치면서 실책이 거듭됐다고 지적했다.
▲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 ⓒ로이터=뉴시스

다음은 스티글리츠 교수가 꼽은 5가지 결정적 순간들이다.

1. FRB 의장 해임

1987년 레이건 행정부는 폴 볼커를 FRB 의장에서 물러나게 하고 앨런 그린스펀을 후임자로 지명하기로 결정했다. 볼커는 11%를 넘었던 인플레이션을 4% 아래로 떨어뜨리면서 중앙은행이 해야할 일을 충실히 했다. 트리플 A 등급을 주면서 FRB 의장을 연임하도록 해야 마땅할 업적이었다. 문제는 볼커가 금융시장이 규제될 필요성까지 인식했다는 점이다. 레이건은 금융 규제 따위는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인물을 원했다. 그린스펀이 바로 그 적임자였다. 그린스펀은 두 가지 역할을 수행했다. 규제 장벽을 무너뜨리고 최대한의 유동성을 공급한 것이다. 그 결과는 재앙임이 증명됐다.

그린스펀은 금융거품을 두 번이나 주도했다. 닷컴버블이 꺼진 뒤 2000~2001년 사이에 그린스펀은 주택거품 조성에 나섰다. 인위적으로 조성된 자산가격 거품에 기초해 대출이 이뤄진다면, 그 결과는 지금 목도하고 있듯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부실 대출만으로 현재의 사태가 일어난 것은 아니다. 이른바 파생상품을 통해 은행들이 거대한 도박판을 벌였다. 원래 파생상품은 위험을 관리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도박 용도로 쓸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건이 예측해 맞춘 사람은 돈을 벌고, 그렇지 못한 쪽은 돈을 잃는 것이다. 문제는 이 도박판이 너무나 거대한 규모로 벌어져 어느 은행이 어떤 상태에 놓였는지, 심지어 자기 자신의 상태조차 제대로 알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워렌 버핏은 클린턴 행정부 때에 이미 파생상품을 '대량살상무기'라고 통찰력있는 지적을 했다. 하지만 그린스펀과 증권거래위원회 등 금융당국은 어떤 조치도 금융의 혁신을 방해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2. 장벽 제거

1999년 11월 미 의회는 '글래스-스티걸' 법안을 폐기했다. 금융산업계가 3억 달러를 뿌려가며 애를 쓴 로비와 필 그램 당시 상원의원이 주도한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글래스-스티걸 법은 대출 업무를 하는 상업은행과 채권과 주식 발행을 주관하는 투자은행을 분리해왔다. 대공황이 방만한 금융과 이해상충을 부르는 제도로 인해 초래됐다는 반성에 따라 시행된 법안이었다.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이 결합된 형태의 금융기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예를 들어보자. 투자은행이 보장하며 어떤 회사의 주식 발행을 주관했는데, 이 회사가 위기에 몰렸다. 이 투자은행이 상업은행 역할도 하고 있다면, 대출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글래스-스티걸 법을 폐지하자는 측은 "과거의 잘못된 행태가 빚어지지 않도록 철저하게 장벽을 쌓을테니 믿어달라"고 강변했다.

경제학자로서 내가 믿는 원칙이 있다면, 경제적인 인센티브는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사람의 행동을 바꾸는 힘을 가졌다는 것이다. 글래스-스티걸 법의 폐지가 초래한 가장 중요한 결과는 간접적인 것이다. 금융 문화 전체를 바꾼 것이다.

장벽이 사라지자 높은 레버리지와 큰 리스크테이킹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는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은행의 문화가 상업은행까지 휩쓴 것이다.

2004년 4월 당시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대형투자은행들이 자본 대비 부채 비율을 12:1에서 30:1 이상으로 늘릴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 조치는 투자은행들이 MBS(주택저당증권) 등을 더 많이 매입해서 주택거품을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SEC는 금융업체들이 자율적으로 규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금융업체가 자율규제를 할 수 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이제는 그린스펀조차 그 점을 시인하고 있다. 게다가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는 하지도 않았다. 1998년 당시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브룩슬리 본은 규제강화를 요구했으나, 로버트 루빈 당시 재무장관, 로런스 서머스 재무 부장관, 그린스펀 등은 철저하게 규제를 반대해 규제 도입을 무력화시켰다.

3. 불로소득 장려

조지 W. 부시가 지난 2001년 7월부터 시작한 부자들을 위한 감세는 현재 경제위기의 배경을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감세가 경기부양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FRB가 유동성 공급을 통해 경기를 부양할 임무를 떠맡게 된 것이다. 정상적으로는 대출받을 능력이 안되는 사람들도 대출을 받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이라크 전쟁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고유가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자본이득에 대한 세율을 낮춘 조치도 위기를 키웠다. 이 조치는 가치를 전도시켰다. 투기(도박이라고 해야 한다)로 돈을 번 자들은 임금 노동자들보다 더 낮은 세율의 혜택을 보게 된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조치가 레버리지 확대를 부추겼다는 점이다.

4. 숫자 조작

미국의 회계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만든 엔론 사태 등이 터지자 2002년 7월 미 의회는 회계규제를 강화한'사베인즈-옥슬리' 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스톡옵션은 건드리지 않았다. 스톡옵션은 주가와 연동되기 때문에 경영진이 회계조작의 유혹을 받게 하는 요인이다.

신용평가기관들의 수입 구조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무디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같은 국제적인 신용평가기관들은 등급을 매기는 기업들에게서 수수료를 받는다. 평가를 후하게 해줄 이유가 충분한 것이다. 투자은행이 고객이라면, 그들이 발행하는 쓰레기같은 모기지 증권들을 상업은행과 연기금이 보유해도 안전하다는 평가를 해준 것이다.

5. 사태 방치

2008년 10월 3일 미 의회에서 부시 행정부가 제시한 7000억 달러짜리 구제금융이 통과됐다. 헨리 폴슨 재무장관은 이 법안이 시장의 신뢰 회복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시장의 신뢰가 상실된 근본적인 원인에 접근하지 못했다.

금융업체들의 부실 대출이 너무 많고, 회계장부에도 커다란 구멍이 있다는 것이 신뢰 상실을 부른 것이다. 이 구제금융은 출혈을 하는 환자에게 그저 대대적인 수혈만 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폴슨은 쓰레기나 다름없는 부실 자산들을 납세자의 부담으로 매입하겠다는 이따위 계획을 추진하느라 귀중한 시간들을 허비했다. 폴슨이 이 계획을 결국 포기하고 은행들에게 필요한 자금을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꾸었지만, 은행이 대출을 재개하는 데 쓰도록 보장받지도 못했다. 심지어 폴슨은 은행들이 납세자의 돈이 받으면서도 주주들에게 돈을 퍼주는 것을 허용했다.

지금도 대처하지 못한 또다른 문제는 경기 악화다. 정부의 신속한 대응이 없다면 경제가 악화되고, 금융부실은 더 커질 것이다. 정부는 말로만 신뢰회복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금융시스템의 신뢰 회복을 정말 원했다면, 비뚤어진 인센티브 제도와 부실한 규제체제 등 근본적인 문제에 대처하는 것으로 시작했어야 했다.

시장이 자기조정기능을 발휘할 수 있으며,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믿음이 이런 여러 가지 잘못들의 출발점이다. 지난 10월말 그린스펀이 의회 청문회에서 "잘못을 발견했다"고 말했을 때, 헨리 왝스먼 의원이 "다른 말로 하자면, 당신의 세계관, 당신의 이데올로기가 올바르지 않았으며,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얘기"라고 몰아붙였다. 그린스펀은 이런 지적에 "전적으로 정확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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