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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사태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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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사태의 근원

[中國探究]<14>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11월 23일 특별회의를 통해 자신의 대(對) 중국 '중도 노선'을 유지키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중국 정부와의 대화를 통해 중국 정부의 어떠한 변화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비현실적인 강력한 티베트 독립 운동의 추구보다는 자치권 확대를 요구하는 달라이 라마의 기존 노선을 재확인한 것이다.

2002년부터 달라이 라마 망명 정부와 공개적 대화를 시작한 중국 정부는 달라이 라마 자치권 확대 구상인 '대장족 자치구(大藏區)' 자체를 독립 요구로 간주해 왔다. 역사적으로 존재했다고 주장하는 대장구는 현재의 티베트 지역뿐 아니라 중국내 서장자치구 인근 5개성과 인접국 영토도 포함하는 방대한 구역이다.

티베트의 미래와 관련해 직접적인 독립 추구나 보다 강경한 행동 실천 등을 주장하는 많은 급진 단체들은 이러한 중국 정부의 입장과 달라이 라마의 현실적 선택에 대해 불만을 피력하고 있다. 여기에 달라이 라마의 고령 및 은퇴, 사후에 발생할 수 있는 중국의 새로운 달라이 라마 옹립 등과 관련해 향후 상당한 곡절이 예상 된다.

중국 당국과 티베트 지역의 갈등을 잘 보여준 예가 바로 지난 3월 14일에 발생한 유혈 독립 시위이다. 중국 당국은 이 독립 요구 시위를 유혈 진압했다. 3월 15일 끝난 제11기 전국 인민대표대회를 통해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하고 출범한 제2기 후진타오 체제는 '조화로운 사회', '조화로운 세계'라는 구호에도 불구하고 평화적 국제 이미지 구축에 심대한 타격을 각오하고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하는 유혈 진압을 한 것이다. 이로 인해 중국의 인권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국제 사회 일각에서는 베이징 올림픽 보이코트 문제까지 제기 하였으며 국제 사회 지도국의 위치를 자처하는 중국은 국가 이미지에 상처를 입었다.

당시 이미 중국과 58년에 달하는 갈등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티베트 지역의 독립의지가 실천 행동으로 나타난 데는 이유가 있다. 기본적으로 티베트 지역에서는 알려지지 않았을 뿐 지속적이고 산발적인 분리 독립 시위가 지속되고 있다.

올 3월에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 것은 티베트를 탄압하고 있는 중국의 존재를 중국이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시점에서 세계에 알려 국제 문제화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여기에는 당연히 수십 년 동안 티베트 분리 독립 내지는 고도의 자치를 주장하면서 국제적 인물로 티베트 문제의 해결에 부심하고 있는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의 고령화도 중요한 원인이 된다. 티베트의 최고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는 전임 달라이 라마가 입적하면 수 년 후 그 화신이 태어나고 여러 가지 증명을 거쳐 다음 달라이 라마가 되는데 현재 달라이 라마가 입적하면 티베트 내에서 다음 달라이 라마의 선정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중국의 '서부 대개발' 정책에 따라 티베트 지역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경제적 성과는 여전히 한족들이 장악하게 되면서 티베트인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더욱 증폭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시위가 과거처럼 일부 승려나 독립주의자들의 항의에 그치지 않고 일반 민중까지 가세하게 된 것이 이를 잘 설명해 준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티베트 문제는 티베트를 바라보는 중국 당국의 시각과 티베트인들과의 민족의식 간에 해결되기 어려운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간극에서 기인한 것이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중국 당국은 1950년 인민해방군을 출병해 티베트를 강제 점령하고 다음해 5월 소위 17조 평화조약으로 불리는 '시장(西藏) 지역의 평화적 해방 방법에 관한 협의'를 통해 중국의 영토로 편입하였다. 티베트 인들은 지속적인 중국의 종교와 민족 문화에 대한 말살 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티베트 최고의 종교, 정치 지도자인 당시 16세였던 달라이 라마 14세가 중심이 되어 라싸 사건으로 불리는 대규모 독립운동을 일으킨다. 이 사건으로 약 9만 명의 티베트인들이 사망하였으며 달라이 라마는 약 1천명의 추종자를 이끌고 인도의 다름살라 지역으로 피신해 망명 정부를 수립하게 된다.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지위 문제를 놓고 중국 당국과 1982년과 84년 비밀 협상을 진행하기도 하였으나 실패하고 1987년부터는 티베트 문제의 국제화를 시도하면서 89년에는 노밸 평화상까지 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티베트 내부에서는 1989년 라싸 사건 3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으며 이미 약 150차례 이상의 시위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부 티베트 과격 단체는 달라이 리마의 비폭력 저항 및 독립보다는 자치에 비중을 두는 정책에 항의하면서 급진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기도 하다.

티베트 인들은 티베트가 기본적으로 독립 왕국을 유지해 왔으며 역사, 문화, 종교 등 제 방면에서 중국 중앙정부의 통치에 예속되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고, 더욱이 자신들은 무력으로 점령당했고 중국 당국이 자신들의 고유문화와 종교를 말살하려 하기 때문에 티베트 지역의 독립 요구는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티베트인들은 독립을 위해 지속적인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중국은 전혀 다른 입장이다. 중국 정부는 이미 원(元)나라 때부터 티베트가 중국의 영토이기 때문에 티베트에 대한 중국 통치는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현재 티베트지역은 중국의 '시장 소수민족 자치구'이므로 독립 시도는 국가 분열 행위라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이미 '반국가 분열법'이라는 분리 독립방지법까지 마련해 법률적으로도 티베트를 압박하고 있다. 국제 사회의 시선 집중을 모를 리 없는 중국 당국이 티베트 독립요구 시위에 강경책으로 맞선 것도 티베트 지역의 엄청난 부존자원도 중요하지만 바로 55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에서 티베트의 독립 요구는 신강 위그루 등 또 다른 분리 독립 운동의 도화선이 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정부가 가장 우려하던 승려들의 시위에 민중이 합세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으므로 강경진압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실 현재 시점에서 중국이라는 거대한 실체에 맞서 티베트가 독립을 쟁취할 수 있는 역량이 없기 때문에 이 문제는 언제나처럼 곧 조용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58년의 갈등을 빚고 있는 티베트 문제는 단순히 중국 국내 문제로 보기에는 그 파급 영향이 너무 크다. 중국 당국과 티베트 지역은 보다 근본적인 원인 진단을 통한 대화와 협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배전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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