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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한 명, 야간 한 명

[한윤수의 '오랑캐꽃'] <7>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회사

사출기계에 오른손 검지를 찧은 방글라데시 여성이 찾아왔다. 15일 전에 다쳤는데 제대로 치료하지 않아서 살은 다 썩고 뼈도 검게 상했다. 전면적인 재수술이 필요했다. 어쩌면 이렇게까지 방치했단 말인가? 돈을 적게 들이려고 변두리 의원에서 간단히 처치하고 연고나 발라줬으니 이럴 수밖에! 당장에 수술하라고 오산의 큰 병원으로 보냈다.


그러나 병원 측에선 수술해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보증인이 없으면 수술 못해요."


나는 사장에게 전화해서 보증을 서라고 했다. 사장님의 목소리는 공손했지만 무척 난처한 사정이 있는 것 같았다. 전화기를 붙들고 통사정을 했으니까.


"목사님, 제가 보증서는 것보다 저희 회사 사정이 너무너무 어려우니까 어디 무료로 수술할 수 있는 방법이 혹시 있나 좀 알아봐 주세요. 저희 좀 살려주세요. 죄송합니다."


나는 회사 사정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늘 신세를 지는 화성보건소에 수술비 지원을 부탁했다. 담당자는 말했다.


"수원의료원은 우리 협력병원이니까 거기서 수술할 수만 있다면야 지원해 보도록 하지요."


환자를 싣고 수원의료원으로 달렸다. 그러나 달린 것도 허사, 수원의료원 정형외과에서는 피부이식 수술이 불가능하다며 난색을 표했다. 결국 무료수술의 길은 사라졌다.


이제 방법은 피부이식이 가능한 오산의 '서울병원'에서 수술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사장에게 전화해서 오산의 서울병원에서 만나자고 했다.


원무과에 쪼그리고 앉은 사장은 잠바 차림에 초라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영세기업의 사장이 틀림없다. 알고 보니 영세기업 정도가 아니다. 기계가 딱 한 대, 노동자 두 명이 전부다. 주간에 한 명, 야간에 한 명, 이렇게 한 명씩 주야간으로 교대하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회사다. 노동자 두 명은 부부 사이였고 주간 근무자인 아내가 다친 것이다. 내 살다 살다 이렇게 조그만 회사는 처음 보았다. 회사 이름도 없고 산재보험에도 안 들었고 물론 치료비도 없었다.


사장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지금까지 이런 사고는 열이면 열 모두 산재로 처리해왔지만 사장이 불쌍해서 차마 산재로 처리할 수가 없었다. 불법체류자를 고용했으니 벌금 최소 천만 원에 보험료도 소급해서 내면 이 회사는 결국 망할 것이다. *공상으로 처리할 수밖에,


"그래도 5백은 들 걸!"
속으로 계산해보았다. 최소 4주는 입원해야 하니까, 하지만 그거야 감수해야지. 일단 수술을 해야 하니 별 수 없다.


나는 사장에게 보증을 서라고 했다.
"보증 서는데 돈이 드는 건 아니니까요."


이 얼마나 공허하고 구차한 말인가.
"결국은 내야 하잖아요!'


사장은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호소하듯 나를 보았다. 맞는 말이다. 내야지!


어쨌든 이 사람을 위로해야 한다는 생각뿐인데 적당한 말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나온다는 말이
"인생의 고비라고 생각하세요."


그제서야 사장의 얼굴은 체념하는 표정이 되었다.
사장이 보증서에 싸인을 하고 수술 지시가 떨어지자 노동자 부부는 기뻐했지만 사장의 얼굴은 어두웠다, 발안으로 가야 하기에 나 먼저 병원을 나서는데 사장이 내 손을 잡았다.


"일 끝나고 찾아 뵙겠습니다."
"그러세요."
돌아서는데 뒤통수가 따가왔다.

*공상 : 회사쪽에서 치료비, 보상금 등을 지불하고 산재처리를 하지 않는 것. 산재 사실이 알려지면 산재보험료율이 올라가기 때문에 일부 사업주들은 산재로 처리하지 않고 공상으로 처리하기를 원한다.
또한 불법체류자가 산재를 입었을 경우 산재로 처리하면 출입국에 통보되어 불법고용사실이 드러나고, 그 결과 고액의 벌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에 공상으로 처리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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