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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있다. 문제는 우리다"

[오바마 시대] MB, 남북관계 밑천 없이는 '참고인'

유일초강국 미국이 버락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미국 역사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미국정치사에서 가장 극단적인 정치세력인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을 등에 업은 공화당 부시 행정부의 적폐는 실로 다면적이며, 따라서 오바마 대통령의 역사적 책무는 무겁고 준엄하다. 그만큼 세계인의 기대는 뜨거우며, 60년 분단의 한반도에 사는 우리 또한 다르지 않다.

민주당 행정부 등장의 한반도적 의미

최근 30년의 한미관계에서 민주당 대통령의 등장은 한반도에 각별한 의미를 지녔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을 위해 박정희 정권에게 주한미군마저 카드로 활용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뒤 북핵문제로 한반도가 위기에 빠졌을 때 카터는 김일성을 직접 만나 돌파구를 마련했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한반도에서의 냉전 종식을 위해 북한과 고위급 양자협상을 주도했고, 김대중 정부에는 남북관계 발전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격려했으며, 정치적 공간을 배려했다. 오바마 시대의 한반도 정책도 이러한 전통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오바마의 사람들'은 정치·경제·인권·외교 등 모든 방면에서 전임 부시 행정부가 실패했으며, 안보 정책도 'ABB'(Anything But Bush)를 뛰어넘어 전면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인식한다.

김대중 대통령과의 첫 번째 한미정상회담 이래 부시 대통령의 미국은 한국 정부를 정당하게 대우하지 않았으며, 본질적인 의미에서 정책공조는 없었다고 본다. 그런 과거로 볼 때 오바마의 태도는 한국과 한반도를 향해 적극적으로 기여하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 오바마-바이든 팀은 미국 민주당의 전통적인 대북정책 패턴을 따를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뉴시스

대북 특사 조기 파견은 없을 듯

북한의 정치체제와 인권, 일반적인 대외 행동양식이 잘못됐다는 데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과거 공화당 행정부와 전혀 이견이 없다. 그러나 문제의 소재로서 북한을 대하는 방식은 크게 다르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나쁜 행동에 대한 보상이나 굴복으로 인식한다든지, 봉쇄를 통한 '레짐 체인지'가 바람직하다든지, 6자회담은 핵문제 해결이 아닌 북한의 도전적 행위에 공동 대응하는 목표에 복무해야 한다든지 하는 부정적인 전략을 수용하지 않는다.

물론 북한이 미국을 시험하려 들거나 합의를 위반할 때의 인내심은 공화당 정부보다 더 없을 것이다. 대화를 위한 대화나 정치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6자회담 과정이 진전되고 있는 것처럼 애쓰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새로 들어설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과 상상력·창조성이 넘치는 외교,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대화를 추구하겠다는 의사는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전통적인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의 이해와 협조를 중시하면서도,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정착, 동북아에서의 다자안보체제 구축, 중국과의 협력 등이 동북아정책의 기본 줄기를 형성한다.

또한 오바마 측은 북한과의 의제 설정에 있어 까다롭지 않다. 핵문제를 중심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핵 폐기 이후 북한과의 외교관계, 인도적 지원과 인권개선 필요성 등 대화의 범위는 넓다.

부시 행정부 시절 크리스토퍼 힐이 맡았던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게 하는 한편, 차관급 또는 그 이상의 북핵 전담 대사직을 신설해 출범 초부터 적극적으로 움직인다는 계획이다.

단, 일각에서 거론되는 바와 같이 정권 인수 기간 중에 고위급 특사를 평양에 보내는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다. 대화 자체에 초조해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협상을 통해 약속은 지키되, 그 약속은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철저히 이행하고, 필요한 보상이나 미국의 의무 이행이 지연되어 북측에게 빌미를 주는 양상은 지양할 것이다.

북한도 지난 2004년, 아니 2000년 대선 때부터 민주당 행정부의 등장을 희망해 왔다. 북한을 연구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미국 최고지도자의 북한에 대한 발언을 중시한다. 제네바합의를 난관에 빠뜨리고, 클린턴 행정부 시절 합의한 조미 공동코뮈니케를 전면 부정하면서, "악의 축" "폭정의 전초기지" "나는 김정일을 혐오한다" 등의 발언에 이르기까지 부시 대통령의 공식·비공식 발언이 이어지던 부시 1기에 6자회담은 성과를 낼 수 없었음을 잘 안다.

역으로, 굳이 소문으로 떠도는 건강 문제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오바마 행정부 4년 간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물학적 연령을 고려할 때 '다음'을 준비해야 하며, 피할 수 없는 변화의 흐름 속에 들어와 있다.

따라서 미국과 북한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들도 알고 우리도 안다. 그러면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정책의 동기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민주당 정권

우선 민주당 정권의 특징을 이해해야 한다. 공화당 행정부는 정책 보다는 정치 이념을 중시한다. 이념이 유사하면 정책적 차이도 정치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 고지식하되 조금은 따뜻한 일면도 있다.

그러나 민주당 행정부는 정책의 동기보다는 결과를 중시한다. 오바마 행정부가 정책의 윤곽과 설계도를 완성하면 정치적 고려로 재고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물론 동맹국과의 정책 공조는 중시한다. 그러나 이때의 공조는 큰 틀에서 인정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면 협력하라는 의미에서의 정책 공조다.
▲ 최근 30년의 한미관계에서 민주당 대통령의 등장은 한반도에 각별한 의미를 지녔었다. 그 중심에 있었던 카터 전 대통령(오른쪽)과 클린턴 전 대통령 ⓒ로이터=뉴시스

한반도 평화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 정부가 북한과 별도의 창구를 통해 기여할 것이 없다면, 한국의 발언을 경청하긴 하겠지만 수용하지는 않는 것이 민주당 정권의 전통적인 패턴이다.

오바마 시대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이처럼 비전에서는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지만, 정책협조의 측면에서는 우리의 독자적인 자산이 없다면 미국은 자체 프로젝트를 속도감 있게 끌고 나갈 전망이다.

그렇다면 결국 한국 정부가 바뀌어야 한다. 미국정치사 200년에서 최대의 이변이 일어났다면 당연히 우리도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야 한다. 특히 오바마 시대의 한반도 정책은 강한 추진력을 가지고 신속하게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다. 잘 될 것처럼 하다가 부통령실에서 막히는 일은 오바마의 안보 정책이 청산해야 할 부시 행정부의 오류 제1호다.

이런 흐름을 기회로 볼 수 있는 선의의 협력의지가 한국 정부에 있다면 신은 우리 민족에게 미소를 보낼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2000년 조미 공동코뮈니케와 2005년 9.19공동성명을 하나의 준거로 삼는다면, 한국 정부도 10.4정상선언과 9.19공동성명을 함께 존중하겠다고 밝혀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4년 동안 한반도는 평화를 향해 순항할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탄생을 한반도의 축복으로 생각하는 필자로서는 그 반대의 상황에 대해 적어도 오늘만큼은 말하고 싶지 않다.

한미 FTA 드라이브가 간과하는 것

여기서 11월 중순 워싱턴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게 될 이명박 대통령을 위해 한 가지 첨언코자 한다.

오바마 당선인은 동북아시아의 정치와 안보 문제에 대해 내년 1월 이후 가동시킬 액션플랜을 만들라고 지시한 뒤 우선은 경제문제에 집중할 것이다. 브루킹스 연구소를 중심으로 여러 민간전문가들도 나름대로 다양한 정책을 개발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은 전례에 따라 워싱턴을 방문하는 전 세계 주요국 지도자들과 짧지만 인상적인 상견례를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여러모로 바람직한 일이다. 이때 이명박 대통령이 오바마 당선인과의 심리적 조율에 성공하기 바란다.

이를 위해서서는 먼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의제로 삼지 말 것을 권고한다. 미시간 등 미국의 자동차 산업을 주도하는 몇몇 주들은 지난 수 년 동안 주민들의 평균 소득이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 오바마 당선인은 이 지역들에 대해 정치적인 부담을 많이 갖고 있다. 따라서 시간을 두고 한미 FTA의 긍정적 측면을 살펴 볼 여유를 갖도록 해야 한다. 미 의회의 상황을 보더라도 2009년은 지나야 본격적으로 다시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차라리 오바마 당선인의 경제 재건을 위한 프로젝트에 적극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가볍게 넘어가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우리 국민과 경제를 위해 드리는 고언이다.

정부·여당이 나서서 한미 FTA의 연내 국회 비준을 서두른다면 그것을 바라보는 오바마 신 행정부의 심정은 영어로 'being offended'(성질을 건드리다. 능멸하다)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상대방이 나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인상을 줌으로써 이익이 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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