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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은 어디로 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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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은 어디로 갔는가?

한반도브리핑 <105> 오리엔탈리즘 벗고 따져 보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개월 넘게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고, 이에 대해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뇌경색으로 쓰러져 뇌수술을 받고 회복중이라는 건강이상설에서부터 심지어는 김 위원장이 이미 사망했고 '가게무샤(影武者)'가 대역을 하고 있다는 설까지 나온다.

얼마 전 일본의 <요미우리신문>과 <산케이신문>은 "김 위원장의 건강 등과 관련된 중대 발표를 앞두고 재외공관에 외출 금지령을 내렸다"고 보도해 많은 이들을 긴장시켰지만, 결국 중대 발표는 없었다. 미국 <ABC> 방송은 21일 "두 달 만에 김 위원장이 공식 재등장하였다"며 사진을 공개했으나, 그 사진에는 2005년에 사망한 연형묵 전 총리가 나와 역시 오보임이 확인되었다.

자료도 없는 고대사는 어떻게 연구하나?

김정일 위원장은 정말 어떻게 되었을까? 왜 이런 낭설과 오보가 난무하고 있을까? 북한이 폐쇄사회이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한 가지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북한과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억측은 늘 기존의 이성(rationality)을 넘어서고 있다. 톨스토이가 말했듯 "미래는 신의 영역"이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신의 영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현재와 현실은 한 번도 정확히 드러난 적이 없는 것 같다. 북한에 대한 보도가 가지는 일관성이라면, 보도하는 언론이 한국 기자건 일본 기자건 미국 기자건 '황색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에 가깝다는 점뿐이다.

어느 나라건 기자란 풍부한 지성과 날카로운 비판의식, 그리고 무엇보다 냉정한 이성(rationality)을 기본적으로 가진 프로(professional)를 가리킨다. 그런데 왜 이런 프로들이 북한에 대한 보도에서만은 매번 오보와 지극히 수준 낮은 상상적 낭설만을 유포하고 있는가? 다시 말해 왜 이들은 북한 또는 김정일에 대한 취재와 보도에서 이성을 잃는 것일까?

이러한 현상은 단지 기자라는 직업(profession)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사회과학이라는 '과학'의 영역에서 북한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도 유사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는 하나의 사회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폐쇄국가이기 때문에 그런 거라면 자료도 유적도 찾기 힘든 고대사를 연구하는 일도 무의미하고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외부세계와 단절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상대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북한은 하나의 국가로서 현실에서 기능하고 있고 제한적이고 왜곡되었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분석이 가능할 만큼 북한과 관련된 자료를 가지고 있다. 역시 제한적이지만 북한을 방문할 수도 있고, 한때 북한의 주민이었고 현재 한국에 살고 있는 많은 탈북자들을 통해 간접적이나마 북한에 대한 정보를 입수 할 수 있다.
▲ 북한은 지난 11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한 인민군 제821부대 산하 여성포중대를 시찰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김정일 위원장의 시찰모습은 지난 8월 14일 조선중앙통신이 그의 군부대 시찰보도를 내보낸 뒤 이틀 후인 16일 시찰 사진을 공개한 후 처음이었다. ⓒ연합뉴스

오리엔탈리즘이 문제다

문제는 제한된 정보와 자료가 아니라 북한을 보는 '시각'에 있다. 북한을 실재하는 사실(fact)로 보고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분석하는 사람들의 의지대로 해석하려는 시각이 문제인 것이다.

미국에 북한이란 나라는 그 실재를 용인하기조차 싫은, 그래서 처음부터 생기지 말았어야 할 'bastard' 국가였다. 일본은 어떠한가? 일본 개화기 후쿠자와 유기치의 탈아론(脫亞論)에 나타난 것처럼 일본은 미개(未開)한 아시아 국가가 아니고 구라파에 합류해야 할(脫亞入歐) 선진국가다. 한때 한반도를 식민지로 거느린 일본은 바로 그 입장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한국은 어떠한가? 이승만 때부터 시작되고 박정희 시절 더욱 강화된 반공(反共)·멸공(滅共)체제에서 북한의 실재와 현실은 실종되었다. 근대화와 경제발전을 달성한 '현대인' 한국의 입장에서 북한은 지지리도 못 살고 아직도 개화되지 못한, 때문에 인정하기 싫은 부끄러운 형제, 친척 또는 탕아로 비춰지지 않았나?

북한을 취재하고 연구하는 많은 이들에게는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가 지적한 '오리엔탈리즘', 즉 서양인이 선입관을 갖고 동양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선입견이 존재한다. 서양인에게 동양의 문화는 서양의 이성 뒤편에 존재하기 때문에 '동양적인 미개하고 야만적 현상'으로 인식되는 것처럼, 북한 역시 현대인의 이성 밖에 존재하기에 이성 밖에서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다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

오리엔탈리즘은 근본적으로 서양인들과 서양 학자들이 갖고 있는 인종적·지역적 우월감이었다. 또한 서양이 동양을 지배해야 한다는 정당성을 그들 스스로 부여한 자기도취적이고 제국주의적이며 파괴적인 선입견이다. 이러한 선입견 속에서는 학문적인 발전이나, 동양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연구가 결코 나올 수 없었다.

북한에 대한 이러한 시각이 변하지 않는 한 북한에 대한 상상적 낭설과 오보는 그치지 않을 것이며, 결국 손해 보는 것은 낭설과 오보에 이끌려 제대로 현실에 대응하지 못하는 쪽이 될 것이다.

김정일 뇌수술설이 납득되지 않는 까닭

김정일이 공식 석상에 나오지 않은 것은(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8월 중순 무렵부터다. 대부분의 언론과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일의 신상, 즉 건강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일이 프랑스 의사로부터 뇌수술을 받고, 다시 중국 인민해방군 군의관으로부터 치료를 받았다는 게 근거로 제시됐다. 나아가 독일 의사도 방북해 김정일을 치료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1942년 2월생인 김정일은 올해 나이 67세로, 70세를 바라보는 노인이다. 그러므로 그의 건강은 시간이 갈수록 약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의학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김정일에 대한 그런 보도에는 고개를 갸우뚱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아 전문가에게 수술을 받을 정도의 뇌경색이라면 빠른 시간 안에 집도를 해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프랑스 의사가 김정일을 치료했다?

북한과 프랑스는 국교도 수립되어 있지 않다. 또 프랑스에서 북한에 갈려면 상당한 시간(모든 일정이 맞아 떨어져도 최소 20시간)이 소요된다. 그런데도 프랑스 의사가 평양에 들어가 수술을 집도했다는 이야기는 김정일이 뇌경색으로 쓰러졌지만 매우 운(?)이 좋다는 것이다. 또한 그 의사는 김정일을 정말로 흠모하거나 의사로서의 사명감이 대단한 사람일 것이다.

중국 군의관이 프랑스 의사의 뒤를 이어 김정일을 치료했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프랑스의 서양의학체계와 중의학 중심에 서양의학을 병행하는 중국의 의학체계는 매우 다르다. 이처럼 의학체계가 틀린 나라의 의사를 잇달아 불러 환자를 치료하게 했다는 것은 북한이 의학적인 상식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와 마찬가지인데, 미흡하지만 일정 수준의 의학체계를 갖고 있는 북한의 사정을 고려할 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역사적으로 북중관계를 되짚어 봐도 실현되기 매우 어려운 일임을 알 수 있다. 북한은 중국을 믿지 않으며 늘 경계하고 있다. 북한에서 주체사상은 만주에서 빨치산투쟁을 하던 김일성이 중국공산당으로부터 '민생단' 간첩으로 몰려 사형 당할 위기에 처했다가 극적으로 목숨을 건진 후부터 태동했다.

중국 역시 레토릭(rhetoric)으로는 북한을 이와 잇몸의 관계로, 혈맹관계로 말하지만 북한을 방패삼아 미국 또는 일본과 직접적인 대치를 막는 것을 목적으로 북한을 활용할 뿐이다. 이렇듯 상황에 따라 적이 될 수도 있는 중국에 '수령'의 안녕을 맡긴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또 그 다음으로 독일 의사가 투입됐다는 것은 북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최고 지도자를 실험용 모르모트나 기니피그(guinea pig)로 생각하지 않으면 (그래서 누구나 김정일을 치료하도록 방치 하는) 벌어지기 어려운 일이다.
▲ 김일성-김정일 부자 현지지도 장면 ⓒ연합뉴스

두문불출로 알 수 있는 건 현지지도가 없다는 사실 뿐

그렇다면 김정일은 다른 이유 때문에 모습을 감춘 건 아닐까? 그는 과거에도 오랜 기간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적이 있었다. 1994년 7월 아버지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고 87일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후에도 국제사회와 대립이 첨예해지는 시기에 장기간 잠적하는 행태를 반복해왔다.

2003년 2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고 다음 달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자 50일간 공개 활동을 하지 않았다. 2003년 9월 1차 6자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자 42일 동안 두문불출했고, 2006년 7월 미사일 시험 발사 직후에는 40일 동안 그랬다. 올 들어서도 이명박 정부 출범을 전후해 두 차례(2월 16~29일 14일간, 3월 9일부터 4월 5일까지 28일간) 장기간 행방을 감춘 바 있다. 이런 행적을 종합해보면 김 위원장은 북한의 안보상황이 변해 새로운 정책이 나오기 전 잠행을 보였음을 알 수 있다.

사실상 김정일은 북한에서 가장 바쁜 인물이다. 김일성 시절부터 북한은 수령이 국가의 거의 모든 것을 손수 챙기는 매우 비효율적인 정치지도체계-유일지도체제를 만들어 놓았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현지지도다. 김정일이 직접 생산 현장과 군부대 등을 방문해 정책이 제대로 실행되는지를 챙기고 검토하는 한편 어느 한 군데를 시범 설정해 새로운 정책을 시험하고, 모범을 창출해 전국으로 확산시키곤 한다.

김정일은 후계자 시절부터 아버지의 현지지도에 동행했으며 최고 지도자가 된 후에도 평균 사흘에 한번 꼴로 현지지도를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기에는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 기자들이 늘 동행해 보도한다.

그렇다면 김정일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은 일단 현지지도를 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국가안보에 심각한 사태가 발생하거나 국가 정책에 변화가 필요한 경우 불가피하게 현지지도 등을 접고 사태와 상황에 대한 정보 수집과 분석, 그에 대한 회의를 해야 한다. 북한의 언어를 빌려 설명하자면, 새로운 정책을 내오기 전 '결심'을 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테러지원국 해제에 '목숨 건' 북한

그렇다면 8월 14일 군부대 시찰을 마지막으로 두문불출하고 있는 김정일이 새로운 '결심'을 해야 할 만한 상황은 있었는가? 이 시기로 돌아가 보자. 부시 행정부는 8월 11일 테러지원국 해제의 법률상 발효 시한인 45일이 지나도록 북한의 핵 신고 검증 방안을 문제 삼아 해제를 발효하지 않았다.

그전까지 북미관계는 급속히 진전되고 있었다. 북한은 6월 말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 핵 신고서를 제출한 데 이어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는 등 일련의 조치들을 취했고, 부시 미 대통령은 6월 26일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를 환영하며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과의 약속을 연장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미국 외교에서 북한 문제는 우선순위가 아니며, 풀어야 할 많은 외교적 문제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북한에 있어 테러지원국 해제는 최우선 순위(top priority)를 갖는, 사실상 국가의 존망을 결정하는 첫 관문이다.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개선과 정상화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북한에 늘 위협이 되어 왔다. 미국의 대북정책은 냉전적 '봉쇄(containment) 정책'으로 일컬어지나 본질적으로는 '무시 정책(the policy of ignoring)' 이었다. 미국은 소련과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북한도 스스로 붕괴할 것이라고 믿었으나, 붕괴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에 북한은 언젠가는 망할 또는 망해야 되는 나라였고, 미국은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의 강도를 조절하면서 북한이 내부적으로 붕괴할 것을 기대했다.

초강대국인 미국 변방의 약소국에 불과한 북한에 있어 이러한 정책은 피가 마르고 허리가 부러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북한은 해방 후 줄곧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해 왔으나, 미국 '무시 정책'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급기야 북한은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 미국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 즉 장거리 미사일과 핵무기를 개발했던 것이다. 북한과 같이 경제적으로 취약한 처지에서 국가예산의 30%이상을 군방비로 쓰면서 장거리 미사일과 핵무기를 만든다는 것은 '고혈을 짜고 골수를 빼는' 것과 같은 '고난' 그 자체이며 생사를 거는 모험이다.

잠행 더 길어질 수도

김정일은 미국과의 군사적 대치상황을 해소하고, 수교를 통해 정상적인 국가로 인정받는 것을 최종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것의 첫째 관문이 바로 테러지원국 해제다. 북한 입장에서 보자면, 이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고 미국으로부터 약속까지 받아냈는데도 불구하고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마지막 카드인 핵을 불능화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협상에 임했지만 다시 '무시'를 당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김정일은 모든 것을 재정비하고 준비해야 하는 '결심'의 상황이 왔고, 이때부터 김정일의 두문불출이 시작되었다. 김정일에게는 상황을 관망하며(때를 기다리며) 외부의 반응을 점검하기 위해서도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9월 들어 북한은 폭파시킨 영변 냉각탑의 재가동을 시도했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이 문제를 해결하려 평양을 찾았을 때, 북한은 다음 단계는 결국 전면전(head to head crash) 밖에 없을 것이라며 미국을 압박했을 것이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인 전쟁을 수습하지 못해 곤경에 빠져있고, 금융문제로 경제위기까지 겹친 레임덕 부시 행정부는 이전의 약속대로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워싱턴포스트>는 추가 핵실험에 대한 우려에서 부시 대통령이 테러지원국 해제를 단행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런 측면에서 김정일이 두문불출이 시작된 8월 중순부터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결정이 나온 10월 10일까지, 약 두 달간 한반도는 매우 심각한 상황과 상태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북한이 합의 사항을 지키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테러지원국 리스트에 복귀시킨다는 조건을 붙여서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했다.

테러지원국 해제는 북미관계 정상화의 첫 관문이고, 북한은 미국의 경제봉쇄를 풀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으며, 나아가 관계정상화를 위한 한 발짝을 더 내딛을 수 있다. 김정일은 자신의 임기 내에 북미관계 정상화, 즉 북미수교를 이루고자 한다. 정상화를 향한 이후의 과정이 되돌릴 수 없는 행로(irreversible path)에 진입했다는 확신을 갖기 전까지 김정일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으로 예상할 수도 있다.

물론 이것도 또 다른 가설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이는 북한을 둘러싼 현재의 상황에 기반을 둔 가설이다. 분명한 것은 낭설과 오보에 기초해서는 국익에 부합하는 정책을 만들기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비이성적인 낭설과 오보를 벗어나는 첫 단계는 북한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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