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어는 천계(天界)의 옥찬(玉饌)이 아니면 마계(魔界)의 기미(奇味)다. 복어를 먹으면 신통하게도 체내의 불화(不和)가 사라지고 엄동설한의 추위도 잊어버리게 한다."
미미구진(美味求眞)이란 책에서 인용했다는 정문기 선생의 <어류박물지>에 나오는 이야기다. 겨울 통영은 복국의 계절이기도 하다. 독이 있는 물고기들은 대체로 맛이 뛰어나다. 독성이 강한 생선의 대표 주자는 복어지만 복어만큼이나 맹독을 가진 독어(毒漁)들도 적지 않다. 쏨뱅이나, 쏠배감펭, 가시달갱이, 쏠종개, 독가시치 등은 독가시를 가지고 있고 한없이 유순해 보이는 물메기도 입 덮개에 독이 있다.
한 중 일 세 나라만이 아니라 동남아, 이집트 사람들도 복어를 좋아한다.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라도 복어를 탐하는 이유는 그 맛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이다. 복어의 내장과 알(난소) 등에는 테트로톡신이란 독이 있다. 복어의 학명인 테트로에 독(톡신)이 더해진 이름이다. 복어의 독은 산란기인 5~7월 사이에 가장 강하다. 가을, 겨울 동안은 독성이 약해진다. 한때 일본에서는 복어 독에 중독돼 죽은 사람이 한해 200명이 넘은 적도 있었다. 30cm짜리 자지복 한 마리의 독이 33명의 사람을 죽일 수 있다. 복어는 청산가리의 열 배 이상의 독성을 가진다.
▲ 종잇장처럼 얇게 포를 떠 접시 바닥이 비치는 복어회와 통영 복요리들. 하얀 복회가 마치 나비처럼 날아갈 듯하다. ⓒ이상희 |
그럼에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 위험한 물고기를 탐식한다. 복어 중에서도 맹독을 가진 복어일수록 맛이 일품이니 그 유혹 또한 강렬하다. 미국 FDA도 복어를 캐비아, 푸아그라, 트뤼플(송로버섯)과 함께 세계 4대 진미 식품으로 선정했을 정도다. 중국 송나라 때 시인 소동파도 "복어의 신비한 맛은 생명과도 바꿀만한 가치가 있다"고 찬양했다. "복어는 먹고 싶고 목숨은 아깝고"라는 일본의 식담(食談)이 전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조선 시대 사람들도 복어에 대한 탐식이 지나칠 정도로 높았던 모양이다. 유중림은 그의 저서 <증보산림경제>에서 복어 독의 위험성을 잘 알면서도 사람들이 탐식 때문에 죽는다고 개탄하고 있다.
"피와 알에 무서운 독이 들어 있는데 잘못 먹으면 반드시 사람이 죽는다. 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없지만, 한때의 별미를 탐하여 종종 그 독에 빠지게 되니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
▲ 복섬 무더기. 사진 왼쪽 황색 얼룩무늬 한 마리만 졸복이다. ⓒ 이상희 |
복어라고 다 똑같은 독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더러 밀복, 가시복, 거북복처럼 독이 없는 복어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즐겨 먹는 황복, 졸복, 검복, 매리복 등은 가장 위험한 맹독성 복어들이다. 또 눈개불복, 까칠복, 까치복, 자지복 등도 강독을 가졌다. 복어의 독은 벚꽃이 필 때 가장 강하다. 그때가 최고로 영양 상태가 좋아 맛도 최상이다. 그러나 아무리 맹독의 복어라도 전문요리사가 독을 제대로 제거하기만 하면 무탈하다. 대체로 복어 독이 화를 부르는 것은 더한 자극을 즐기려는 욕심이나 객기 때문이다.
술꾼들에게 복어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유혹이다. 복어 회 한 접시는 천상의 안주이고 북국 한 그릇은 술독을 푸는 데 명약이다. 복어는 겨울이 제철이다. 복어 회는 종잇장처럼 얇다. 비싼 생선이라 귀해서 얇게 써는 것이 아니다. 복어는 육질이 단단하므로 두껍게 썰면 질기다. 그래서 나비가 날아갈 듯이 얇게 포를 뜬다. 복어는 뽁지, 복쟁이, 점복,복장어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나그네의 고향 완도에서는 복쟁이라 하는데 통영에서는 뽁지 혹은 복지(伏只)다. 석기시대 패총에서 복어 뼈가 출토될 정도로 복어를 식용한 역사는 길다. 중국에서는 황복을 강돈(江豚) 혹은 하돈(河豚)이라 했다. 우는 소리와 맛이 돼지와 비슷하다는 이유에서다. 세계적으로 100여 종류의 복어가 있으며 한국 바다에는 20여 종의 복어가 산다.
복국 한 그릇을 먹는 세 가지 방법
통영의 유명한 뽁찌 집은 서호시장과 중앙시장에 몰려있다. 통영은 이 나라에서 복국 문화가 가장 발달한 고장이다. 이름난 복국 집들이 즐비하다. 과거 복이 많이 나던 시절에는 통영 항남동에 복포 공장도 세 곳이나 있었다 한다. 오래전부터 통영은 복어의 집산지였다. 지금도 복요리로 그 명맥을 유지해가고 있다. 서호시장 인근에서 가장 오래된 복국집은 호동식당, 분소식당 등이고 중앙시장에서는 동광식당이 그중 유서 깊다. 동광식당 정정호 대표에게 복어 이야기를 청했다. 요즘 통영 복국집들의 주재료는 졸복(拙服)이다.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는 소돈(小魨), 속명을 졸복(拙服)이라 한다고 했다. 복어 종류 중 작다 해서 졸복이라 하지만 아주 큰 것은 35cm까지 자라니 작다고 할 수 없다. 졸복은 난소와 간장에는 맹독이 있고 피부와 장에도 강독이 있다. 하지만 정소에는 비교적 약한 독이 있으며 살과 피에는 독이 없다. 복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은 복섬(grass puffer)이란 복어다. 가장 커봐야 15cm 정도다. 흔히 바닷가에서 낚시할 때면 귀찮게 달라붙는 녀석들이 이 복섬이다. 통영에서도 졸복뿐만 아니라 복섬으로 국을 끓여내는 집들도 있다. 요즈음 대체로 종류와 무관하게 작은 복으로 끓이는 복국을 졸복국이라 통칭한다. 같은 참복과지만 졸복의 맛이 좀 더 뛰어나다.
▲ 시원하기가 일품인 통영 졸복국, 나그네의 술병에는 특효약이다. ⓒ강제윤 |
통영 복집들이 본래부터 졸복을 썼던 것은 아니다. 졸복은 작아서 손질하기 성가시고 품이 많이 드는 까닭에 예전에는 잘 취급하지 않았다. 옛날에는 까치복, 밀복, 참복 등 큰 복을 주로 썼다. 그중에서도 점밀복, 흰밀복, 흑밀복 등 밀복 종류를 많이 썼다. 하지만 큰 복들이 잘 잡히지 않으면서 많이 나는 졸복에 눈을 돌렸다. 그런데 끓이고 보니 크기는 작아도 졸복의 맛이 밀복보다 깊었다. 개운함도 더 했다. 다른 지방의 졸복도 써봤지만 그중 통영바다의 졸복이 단연 최고였다. 육질도 더 쫄깃하고 국물도 시원하다. 물론 냉동이 아닌 생복을 썼을 때 이야기다. 지금이야 규모가 큰 복집들이 많이 생겼지만, 옛날에는 상호도 없이 작은 탁자 두어 개 놓고 장사하던 식당들에서 손님의 주문이 있으면 가끔 끓여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아니면 고급 일식집들에서나 맛볼 수 있었다. 그러다 복국집이 성행하기 시작한 것이 30년 전쯤이다. 역사가 40년이 넘은 호동식당, 동광식당, 분소식당들이 통영 복국 1세대 중 살아남은 복국집들이다.
정 대표는 복어 다루는 법을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배웠다. 식당을 하던 아버지에게 전수받은 것이다. 정 대표의 아버지는 일본강점기 부산 온천장 부근의 일본 식당에서 일하며 복어 다루는 법을 배워 식당을 차렸다. 정 대표는 보통 일식집 같은 데서 복국을 끓일 때 레몬 한 조각씩을 넣는데 그러면 개운한 맛이 덜하다고 말한다. 식초를 넣어 먹는 것도 마찬가지란다. 식초를 넣으면 복국 본연의 맛이 줄어든다. 복 맛이 아니라 식초 맛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복국에 미나리나 식초가 넣는 것은 해독작용을 돕기 위해서였다. 전문요리사의 손길을 거친 복국은 식초를 넣지 않아도 무방하다. 하지만 나그네는 해독과 무관하게 식성이 신맛을 좋아해서 식초를 넣어 먹기를 즐긴다. 그래도 시원하다. 음식 맛에는 정석이 없다. 각자 입맛대로 먹으면 될 것이다. 물론 각각의 맛을 따로 음미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그래서 나그네는 한 그릇의 복국을 세 가지 방식으로 먹는 법을 터득했다. 처음에는 그냥 맑게 먹다가 다음엔 밥을 말아서 먹고 마지막엔 식초를 약간 넣어 먹는다. 그러면 세 가지 국물 맛을 다 맛볼 수 있다. 끝에 식초를 넣는 것은 같은 맛의 지루함을 없애주고 입맛을 되살려 마지막 남은 한 방울의 국물까지 남김없이 다 먹을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나도 책에서 본 건데 일본에서 한때는 복을 먹으면 처형시킨다고 국법으로 정했다고 해요. 복을 먹고 워낙 많이 죽으니까 그랬겠죠. 그래도 몰래 먹었다고 그래요. 복 먹고 죽으나 칼 맞고 죽으나 죽는 건 한가지니까."
복이 가장 맛있는 철은 언제일까. 보통 10월부터 3월 사이에 잡히는 복어가 가장 맛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겨울 생선은 대체로 맛있으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정 대표는 "복은 배추꽃 필 때, 보리 누름 때가 젤로 맛있다"고 주장한다. 5월 중순에서 6월 중순까지가 최고라는 것이다. 그 시절은 산란기라 복 먹는 것을 되도록 피하라고 하는데 어찌 된 일일까. 그 무렵 복어들은 수면 위를 날아다니는 나비까지 잡아먹는다. 그래서 "나비 먹은 복을 먹으면 즉사한다"는 속설까지 있다. 그만큼 맹독이다. 정 사장은 산란기 때의 복을 먹지 말라는 것은 독성이 가장 강하니 조심하라는 이야기지 복이 맛없어서가 아니란다. 오히려 산란을 위해 비축해둔 영양분이 가장 많을 때라 육질도 탱탱하고 절정의 맛을 자랑한다는 것이다. 특히 수컷의 곤(정소, 이리)이 특미라고 한다. 곤뿐만 아니라 알도 물론 최고의 맛일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알은 먹을 수 없다. 죽음의 알이기 때문이다. 복어 대부분에는 알에 가장 강한 독이 들어 있다. 하지만 곤은 미독이 있어도 독을 완벽하게 제거하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이리를 먹으면 입안에서 보드라운 것이 퍼져요. 그 우유처럼 하얀 것이 입안 가득 고이면 달콤하고 고소해요."
▲ 식당에서 졸복을 삶아낸 뒤 식히고 있다. ⓒ강제윤 |
복 지느러미 술(히레사케)은 딸기코 치료에 특효약
정 대표는 5월에는 복어 곤 맛을 꼭 보여주겠다고 찾아오란다. 잔뜩 기대된다. 참복이나 금복, 자지복 등 큰 복의 지느러미는 깨끗이 씻어 볕에 말린 뒤 구워서 정종이나 소주에 넣어 먹는다. 일본 말로 '히레사케'가 그것이다. 복 지느러미 술을 마시면 알코올이 혈관 속으로 스며드는 것이 느껴진다. 물론 술이 확 오르지만, 또한 깨기도 금방 깬다. 복 지느러미 술은 많이 마셔도 속이 쓰리고 아픈 것이 없다. 약간의 미독이 약으로 작용하기 때문일까. 특히 이 술은 술독으로 인한 딸기코를 치료하는데도 특효약으로 알려져 있다.
옛날에는 복의 독을 잘 제거하고 꼬치에 끼워 바짝 말려놨다가 딱딱한 메주콩과 함께 가마솥에 넣고 끓여 먹었다.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르는 독은 메주콩이 삶아질 정도로 열을 가하면 없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어 독은 열을 가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근거 없는 그 믿음 때문에 마른 복 끓여 먹고도 많이들 죽었다.
그래서 산란 철에 복을 손질할 때는 정 대표도 초긴장 상태가 된다. 복에 중독되면 혀와 눈 끝이 떨리고 입술이 딱딱해진다. 입술을 깨물어도 안 아프다. 복어 독에 중독되면 해독제가 따로 없다. 그냥 병원 가서 인공호흡을 하며 수액을 넣어 핏속의 독을 씻어내는 수밖에 없다. 다행인 것은 웬만한 중독은 즉시 병원으로 가서 처치만 받으면 별문제 없다는 점이다.
복어는 생명력이 아주 강한다. 정 대표는 복을 다루다 보면 아침 9시쯤 물기도 없는 곳에 복을 쌓아 두었는데 오후 4시까지도 살아 있는 놈들을 자주 본다고 한다. 물도 없이 땡볕 속에서 몇 시간쯤 거뜬히 살 수 있다니 대단한 생명력이다. 복은 산란이 끝나는 6월 말부터 10월까지는 거의 잡히지 않다가 11월 찬바람 불 때부터 본격적으로 잡히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맛이 오르다가 산란기 때 최절정에 달하게 되는 것이다.
정 대표는 여름에 쓸 복은 냉동보관 한다. 정 대표에게 혹시 맛을 내는 비법이 있느냐고 묻자. 비법 같은 건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다른 재료로 국물을 내서 쓰지 않고 복 삶은 국물로만 복국을 내는 것이 비법이라면 비법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재료의 싱싱함이 담보될 때만 가능한 맛이다.
"북국 집들에서 냉동을 안 쓴다는 건 다 거짓말이에요."
동광식당에서도 냉동 복을 생물과 섞어서 쓴다. 비율은 생물 70% 냉동 30% 정도다. 그래서 정 대표는 1~2월, 복이 많이 날 때는 하루 열두 시간씩 꼼짝 않고 앉아 복어 손질만 하기도 한다. 정 대표는 복의 창자와 머리를 따내고 바닷물에 담갔다가 핏물을 씻어낸 뒤 다시 민물에 담가 핏기를 완전히 빼낸다. 그래야 독이 완전히 제거되기 때문이다.
▲담백하면서도 차진 졸복 수육. ⓒ강제윤 |
통영 복국은 술병 고치는데 명약
서호시장 부근의 호동식당은 통영 복국을 전국에 알린 집으로 유명하다. 복국 맛이 깔끔하고 시원한 것이 특징이다. 이 집은 참복 수육도 아주 부드럽고 입에 착착 감긴다. 통영을 찾아온 지인들과 이 집 복요리들을 안주 삼아 낮술로 시작해 저물도록 마셨지만, 흥취만 오를 뿐 숙취도 없이 깔끔했던 기억이 새롭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하하하'의 배경이 됐던 집이기도 하다. 분소식당은 호동 식당에서 일하던 아주머니가 나와서 차린 집이라고 한다. 통영 사는 이진우 시인 말에 따르면 그 이름을 이 시인 아버지가 지어 주었다 한다. 주인아주머니가 이 시인 아버지에게 이름을 부탁하길래 "당신은 호동 식당에서 떨어져 나왔으니 분소라 해라" 그래서 분소식당이 됐다는 것이다. 분점이란 뜻이지만 주인이 엄연히 다르고 체인점도 아니다. 이 집은 복국도 맛있지만, 물메기탕이나 매운탕 등도 아주 일품이어서 연일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만성복집도 유명하다. 이 집은 길가가 아니라 서호시장 안 깊숙이 있어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도 물어 물어서들 외지 손님들도 잘만 찾아간다. 아무리 깊이 숨겨져 있어도 맛있다고 소문나면 사람들은 다 찾아간다. 이 집은 복국도 복국이지만 밑반찬이 다른 집들에 비해 푸짐하고 맛깔스럽다. 밥상에는 늘 제철 해산물이나 회 등이 오른다. 여름엔 학꽁치회, 가을 겨울엔 생굴이나 꼴뚜기, 봄엔 멍게 등이다. 전어밤(내장)젓도 이 집만의 특식이다.
일전에 한참 술병으로 고생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소식을 들은 통영에서 가깝게 지내는 선생님 내외가 한산도에서 그 귀한 자연산 황복을 구해다 복국을 끓여 들고 동피랑의 내 작업실까지 병문안을 와주신 적이 있다. 그 복국 맛을 두고두고 잊을 수 없다. 그야말로 천계의 옥찬이었다. 그 황복국 몇 번 먹고 술병이 거뜬히 나았음은 물론이다. 통영이 아니었으면 통영의 인심이 아니었으면 어디서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있었겠는가. 고맙고 또 고마울 뿐이다. 중앙시장 건어물 골목 통영 전통 젓갈 집과 바다 나라 건어물 사이 골목 초입에는 사철 복어만을 파는 할머니가 있다. 다른 생선은 거의 취급하지 않고 복어만 판다. 까치복, 참복 등 귀한 복들이 늘 쌓여있다. 나그네도 언제 사다 직접 끓여 먹어볼 참이다. 통영에 사는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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