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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적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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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적한 날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 <81>


늘 다니던 길이 갑자기 고적해 보이는 날이 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다니던 길인데 그 길이 넓어 보이고 허전해 보입니다.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을 때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 길로 수없이 많은 사람이 지나가고 수많은 바퀴 자국이 오고갔는데, 잠시 보낼 것은 다 보내고 홀로 누워 있는 길을 만나면 그 길이 그렇게 고적해 보일 수가 없습니다.

그 위에 늦은 가을 햇살이 내려와 있으면 오래오래 나도 거기 앉아 있고 싶습니다. 괜찮다면 한참을 누워 있었으면 싶습니다.

저녁 강물을 보면서 오래 전부터 느꼈던 고적함입니다.

끝없이 끝없이 제게 오는 것들을 흘려보내기만 하는 저녁 강물을 보며 강물이 고적해 보이는 날들이 있습니다. 그저 제 것으로 붙잡아 두고 있으려고만 하지 않고 아낌없이 흘려보냄으로써 생명이 유지되는 강은 사랑 그 자체입니다. 관용 그 자체입니다.

끊임없이 넓은 곳으로 나아가도록 등을 밀어 주는 동안 비로소 강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주기 때문에 늘 새로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저녁노을 등에 진 채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저녁 강물의 뒷모습은 돌아와 누워도 가슴 깊은 곳으로 고적하게 흘러가곤 합니다.

그런 밤 별빛은 또 왜 그렇게 쓸쓸해 보이는지요.

하늘 그 먼 곳에서 지상의 아주 작은 유리창에까지 있는 것을 다 내주었는데도 가까이 오는 것은 바람뿐인 저녁. 별들이 차가운 바람으로 몸을 씻고 하얗게 반짝이는 모습은 가을이 깊어 갈수록 우리 마음을 고요히 흔들곤 합니다. 차가운 아름다움. 쓸쓸해서 더욱 아름다운 모습을 가을별에서 봅니다.

그런 별 아래서 더욱 외로운 날이 있습니다.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도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말할 수 없이 외로운 날이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오면서, 사람들과 섞이어 흔들리는 저녁차에 매달려 돌아오면서 깊이깊이 외로운 날이 있습니다.
내 안의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외로움. 나누어 가질 수 없는 외로움. 한지에 물이 배어 스미듯 몸 전체로 번져 가는 이 저녁의 고적함.

저녁 무렵의 고적함 속에 끝없이 가라앉는 날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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