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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민 파동? 우리는 서로를 믿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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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민 파동? 우리는 서로를 믿을 수 있는가"

[권은정의 WHO] 두레생협 김기섭 상무이사

멜라민 사태가 터지자 사람들은 서로 쳐다보고 있다. '또! 도대체 뭘 먹어야 하는 거야?' 이런 소동에 모두들 조금씩 면역이 되었는지 그다지 놀라워하지 않는 표정이다. 이러다가 '먹을거리 안전성? 적당히 넘어가지 뭐'라고 할까 두려워진다. 생협운동하는 이들은 이럴 때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했다. 먹을거리에 관한한 누구보다 첨예한 문제의식을 지닌 사람들이 아닌가.

두레생협(김진홍 목사의 두레마을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의 상무이사 김기섭 박사를 만났다. 그는 먼저 양해를 구했다. 자기가 하는 말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생각일 뿐 생협 일반의 생각과는 다를 수 있다, 그저 '특이한 놈이 하는 특이한 생각'으로 들어주길 바란다는 게 요지다. 그러나 '생협 일을 하면서 제 나름대로 생각해본 것'이라며 말을 시작했다. 오랜 경험에 의하면 이렇게 시작하는 말은 언제나 무척 재밌다. 의자를 바싹 당겨 앉았다.
▲ 김기섭 두레생협 상무이사 ⓒ프레시안

'안전한 먹을거리 확보? 자기가 생산해서 먹는 게 가장 좋지요.'

그의 일성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게 어렵잖아요. 그러면 그 다음은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생산한 것을 나눠 먹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단다. '그 사람 대체 믿을 수 있는 사람이야?'

그 사람이 믿을 수 있다는 보증을 하는 단계는 제 3단계에 속한다. '믿을만한'사람이라고 누군가가 보증을 서는 것이다. 다음 제 4단계는 생산자가 누구든 간에 그 물건에 대해서만 신뢰여부를 확인해주는 시스템이다. 마지막 5단계는 그런 구조 자체가 되어있지 않는 단계. 즉, 광우병 쇠고기건, 멜라민 분유건 간에 '소비지가 안 사먹으면 그만'인 단계다.

김상무이사의 지적에 따르면 지금 우리사회의 식품위생관련 제반 행정적 구조의 모습은 4단계와 5단계 사이를 오락가락 하는 중이라고 한다. 사람을 믿을만한가를 따지는 수준에는 손도 못 대고 있다. 생산된 제품이 안정성의 기준에 적합한지 어떤지 겨우 따져볼 구조를 갖춘 정도다. 식품 안정성 따위는 당연히 확보될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멜라민의 경우는 가공식품 원재료의 문제가 아니라, 2차 원재료의 문제이지요. 요즘은 미각이 복잡해져서 가공식품을 만들 때 4차 원재료까지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그걸 전부 과학적으로 안정성을 규명하겠다고 한다면 식품을 만드는 비용보다 규명하는 비용이 더 들어가요. 소비자들이 그 비용을 부담하고 먹을 수 없겠어요? 그렇게 되면 그냥 눈감고 가자, 가격대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것들은 묻지 말고 가자, 그렇게 되는 거지요. 물품만 가지고 안정성을 확보하는 시스템으로 간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일정 정도 필요하겠지만) 신뢰를 담보할 수 없는 것이지요. 생협의 출발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 김기섭 박사는 물품이 아닌 생산하는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을 이야기한다. ⓒ프레시안

생협은 물품에 대한 신뢰를 우선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그 물품을 생산하는 사람을 신뢰한다. 그 사람이 생산하는 것이라면 믿는다, 그런 관계에서 물품을 받는다는 말이다.

요즘 시장에 나가면 유기농, 무농약, 저농약 등 안전장치가 둘러쳐진 듯한 먹거리에 손을 대는 소비자들이 많이 눈에 띈다. 소비자들의 의식이 높아졌다. 생협에 대한 거리감도 가까워진 것 아닐까. 생협을 이용하려는 소비자는 생협에 대해 일정 정도 이해가 있어야한다.

'극명하게 두 측면을 대비해 놓고 보자면 사람관계, 물품관계로 보는 것이지요. 초기 생협 관계자들은 사람관계 의식이 아주 투철한 이들이었어요. 하지만 이런 관점을 모두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데다가 모두의 눈높이에도 맞아야하니까, 물품에 대한 신뢰도를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왔지요. 요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사람관계보다 물품중심으로 바라보고 싶어하는 게 사실입니다. 사람관계는 서로 이해해야하고 여러 면에서 시간도 많이 들여야 하니까요. 산지도 직접 가보고 하는 게 귀찮죠. 그런 면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나쁜 것은 아니지요.'

그는 두레생협의 특징을 '자주인증시스템'이라는 용어로 정리해준다.

'우리는 생협 물품을 구매하는 조합원들이 직접 산지에 가서 생산자를 만나보고 그들의 생각을 듣고 생산구조를 확인 하지요. 그것을 전부 전체조합원들에게 오픈합니다.'

물품의 안정성을 확인하는 시스템이 내부적으로 갖춰져 있다는 말이다. 식약청이나 각종 검사기관에만 의존하기보다 조합원 스스로 물품에 대해 안전성을 확인해주니 더욱 든든하다. 지금 두레 생협 전체 조합원수는 4만5000명. 생산자의 철학과 삶의 방식, 농사짓는 모습에 대한 구체적 이해를 통해 소비자와 신뢰관계를 구축 한다는 사고의 소유자들이다.

요즘 소비자들은 안전한 식탁을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대가를 지불할 용의가 되어 있다. 소비자들에게는 먹을거리의 안전성을 보장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생협이 그 '누군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협이 하자는 대로 따라온다면 안전한 먹을거리는 보장할 수 있다'고 외치면 따라나설 사람들 많을 것이다. 그에게 좀 큰 목소리로 생협을 말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그게… 저는 기본적으로 자기 먹을거리는 자기가 지키는 것으로 생각해야한다고 봅니다. 자기의 음식을 남이 지켜줄 것이라는 그런 바람에서 먹을거리 오염이 나왔다고 생각하거든요. 먹을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마련해야한다는 정신이 먼저예요.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기 어려우니까, 그 땅의 주인을 나와 똑같은 존재로 생각하고 그 사람의 생산물을 나눠 먹는다는 생각으로 가야하거든요.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식품오염의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생협을 믿고 따라와 달라'는 정도의 말을 원했을 뿐인데....
▲ "음식을 남이 지켜줄 것이라는 그런 바람에서 먹을거리 오염이 나오지 않았을까. 먹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마련해야한다는 정신이 먼저다." ⓒ프레시안

그에게 생협에 대한 관심이 언제부터였느냐는 질문은 틀림없이 우문이다.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주위 어른들이 두런두런 나누는 얘기 중에도 협동정신, 협동운동이란 말은 빠지지 않았다. 그런 말들은 그에게 물이나 공기 햇빛과 같은 것이었다.

'70년대 독재정치에 대한 원주지역의 민주화운동이 있었지만 구체적인 생활운동이 함께 있었어요. 신용협동조합운동, 소비자 협동조합운동이었지요. 소비자를 위한 소매업, 협업적인 농사짓기 등등 그런 기본정신에서 정치적인 목소리도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그에게 평생의 스승이시다. 지척에 모시고 살았지만 그 어르신의 가르침을 자신의 중심으로 잡아 살기로 작정한 것은 정작 서울로 유학을 왔을 때였다. 그 스승의 생명운동이 무슨 의미였는지 그는 민주화투쟁이 터지는 캠퍼스 한가운데서 알아차렸다. 80년대 초 여대생들의 모습은 그에게 큰 충격이었다.

'여자선배님들이, 너무나 좋은 그분들이 매일 인상을 찡그리고 계셨어요. 세상 모든 아픔을 다 짊어지고 사시는 거예요. 도서관 유리창을 깨고 옥상에서 뛰어내리시려고 하고… 그걸 보니 제 가슴이 찢어지는 거야. 그때 살아있다는 게 뭔지, 살아간다는 게 뭔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지요.'
▲ 그는 용감한 '찌지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프레시안

대학시절을 회상하는 그의 표정이 여간 안타까워 보이지 않는다. 아주 훌륭한 누님의 뒤를 따르고 싶어 했던 것 같은데… 누님만큼의 용기가 없었던 그는 한동안 마음고생을 했으리라. 그러나 김지하 시인이 '밥이 하늘이다'라고 선언한 글을 통해 그는 세상사람 대부분이 자기 같은 '찌지리'라는 사실에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용감한 찌지리가 되기로 마음먹고 소중한 생명체를 파괴하는 것은 옳은 일에서 시작했다 하더라도 '문제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 바람에 당시 선배들한테 그는 확실히'찍혔다'.

국문학도였던 그가 일본의 고베대학에서 농업경제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건 순전히 원주의 어르신들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애초 1년 정도 잡고 일본의 생협운동을 살펴볼 참이었는데 7년이 되어버렸다. 유기농, 협동조합, 생태운동 세 가지 주제로 공부했다. 그의 은사인 야스다 교수는 일본 시민운동의 선구자이며 선도운동가로서 명망이 높은 이였다. 덕분에 그는 일본 생협운동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그들과의 만남과 배움을 더없는 행운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야스다 교수가 한 운동은, 정확히 말하자면 '생산자 소비자 제휴운동'이었다.

'한마을의 소규모 생산자 조직과 인근 도회지역의 소비자 조직이 서로 연결되는 것이지요. 소비자조직은 생산자 조직이 생산한 전 품목을 모두 의무적으로 소비하는 것입니다. 선택적으로 구매하는 게 아닙니다. 물품 하나하나마다 가격을 붙이는 그런 게 아니에요. 한 농가당 1년 생활을 보장하는데 드는 금액, 연간 소득 금액을 농가에서 출하되는 물량으로 나누기를 하면 가격이 나오거든요. 그렇게 해서 각 가정으로 가는 박스 가격이 정해지는 거지요. 예를 들어 다섯 농가가 생산한 물품을 500개 박스에 다 나눠 담는단 말이에요. 그 중 한 박스가 소비자의 집으로 오는 것이지요. 그 박스에 어떤 물품이 담겨오는지는 받아봐야 알아요. 생산되는 대로 담겨져 오니까요. 어떤 때는 몇 주 동안 시금치만 계속 먹을 때도 있는 거죠. 태풍 한번 지나가면 아무것도 없는 빈 박스가 오기도 하고 그래요.'
▲ "일본의 생협운동은 '한마을의 소규모 생산자 조직과 인근 도회지역의 소비자 조직이 서로 연결되는 것이지요." ⓒ프레시안

태풍이 휩쓸고 가버린 들판에는 건질게 아무 것도 없다. 농가의 고통을 도시의 소비자들이 고스란히 함께 하겠다는 마음이다. 이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김상무이사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그렇게 센 운동을 이야기한다. 아무래도 그는 진짜 '근본주의자' 인 것 같다.

생협 수도권 연합회인 두레 생협 연합회에서 '뼈를 묻을 각오'를 하지 않지만 그는 아주 열심히 일하고 있다. 제대로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면서 두레생협의 자랑을 열거하였다.

첫째, 두레생협은 생산자와 가장 긴밀하게 관계하는 조직이다. 물건 믿으려고 하지 말고 사람을 믿으라고, 생산자를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노래한다.

둘째, 민주주의를 실현하려고 노력한다. 조직이란 게 무릇 모아지는 곳에 권력이 있는데 여기는 모아낸 곳에 권력이 있다. 연합회의 권력은 단위조합에 있고 단위조합의 권력은 조합원에게 있다. 협동조합의 용어로 하자면 조합원 주권, 단협 주권이다.

셋째가 세계 여러 지역과 손잡고 나가는 연대활동이다.
▲ "민중교역, 생산물이 아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중심이죠. 공정가격 지불은 기본일 뿐입니다." ⓒ프레시안

그가 새삼 목청을 올려 밝게 말한다.

'우리 생협의 올리브유는 팔레스타인에서 가져오는데 아마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올리브기름일 것입니다. 필리핀에서 설탕, 페루, 에콰도르, 동티모르에서 커피를 가져오고요.'

두레 생협의 프라이드라고 강조하는 세계 여러 나라와의 교류를 그는 민중교역이라고 부른다. 생산물이 중심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중심인 것이다. 그는 페어 트레이드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공정가격지불은 기본일 뿐이다. 그 너머 지역의 생산자가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두레생협 모든 조합원들은 설탕 1봉지 가격에 1,2백원 정도의 네그로스 프로젝트 펀드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 펀드는 매년 약1400만 원 정도가 되는데 필리핀의 사탕수수 산지인 네그로스 섬으로 보내진다. 이 돈으로 생산자인 주민들은 우물도 파고 재봉틀도 사고 송아지와 돼지를 키운다. 생산자인 필리핀 주민들과 소비자인 한국의 조합원들 사이에 인간적 연대가 맺어지는 것이다.
▲ "완전하게 믿을 수 있게 할 것" 우리는 서로 믿을 수 있는가? ⓒ프레시안

그의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두레생협 회원으로서의 프라이드를 나눠가지고 싶은 마음이 커져갔다. 생협정신을 따르며 살아간다면 안전한 먹거리 확보뿐만 아니라 좋은 소비자로 거듭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의 생각은 어떤가?

'물론 더 많은 이들이 생협 운동에 동참하셔야 하지요. 그렇게 되면 좋지요. 그러나 조합원분들에게 저는 무조건 생협을 믿고 따르지 마시라고 합니다. 왜냐? 그 순간 권력의 주체는 생협이 되거든요. 여러분이 권력의 주체가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지요. 생협은 조합원의 믿음을 받아서 신뢰라는 하나의 상징을 만들어내야 하는 조직이거든요. 인간관계상의 신뢰는 뒷전으로 밀리고 제도로서의 신뢰가 우선이 되는 거지요. 그걸 인증이라고 하는데, 그 물건의 생산자를 모르니까 그 마크를 보고 그 물건을 신뢰하겠다는 것이잖아요. 제가 보기에 이건 말짱 헛것이에요!'

우리는 서로 믿을 수 있는가? 철저히 믿을 수 있는가? 두레생협의 김기섭 상무이사가 지금껏 던지고 있는 질문이다. 그는 이렇게 답을 얻은 것 같다. '완전하게 믿을 수 있게 할 것.' 이제 그가 그 방법을 하나씩 하나씩 세상에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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