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국회 예산·결산소위원회에서 3백여개 시민단체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합의되었다는 동아일보 보도가 있었다. 전국 시민단체들의 연대기구인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소속단체가 450여개이니 얼마나 많은 시민단체를 감사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있다. 향후 5개월간 감사를 진행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아예 시민단체들을 일정기간 활동할 수 없게 만드는 것으로서, 정부가 시민단체들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겠다는 발상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물론 탄압의 빌미를 제공한 환경연합의 회계관행은 그 자체로 분명히 잘못된 일이며, 시민단체 스스로 잘못을 시정하고 혁신해야 할 일임에 틀림없다. 시민단체들은 재정적 어려움 때문에 묵인되어온 이 잘못된 관행을 고치기 위해 정기적으로 회계교육을 실시하고, 회계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그룹을 운영하며, 회계 관련 기준을 마련하는 등 앞으로 계획을 세워 전체적인 회계관행을 개혁하고 그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무슨 권력형 비리 다루듯 검찰 특수부가 나선다든지, 행정안전부가 기다렸다는 듯이 117개에 이르는 단체에 공문을 보내 이들 모두가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는 듯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전체 회원명단을 내라고 한다든지, 감사원이 감사를 하겠다고 나선다든지 하는 것은 시민단체의 활동을 국가가 규제하겠다는 발상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더구나 검찰이 시민단체를 후원했던 기업들을 조사한다든지, 시민단체의 누가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는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한나라당이 새로운 비밀을 밝혀낸 듯 이야기하고 보수언론이 이를 큼지막하게 보도하는 행태는 이번 기회에 시민단체로 하여금 아예 활동 자체를 못하게 만들겠다는 의도가 있지 않고서는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시민단체를 겨냥한 권력기관들의 합동작전
거기에 국정원은 낡은 유물 국가보안법을 다시 벼리어 여기저기 뒤적이고 다니며 새로운 '사건'들을 만들어내는 등 냉전시대로 돌아가자고 협박하고 있다. 심지어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은 불법시위에 참여한 단체들에 정부 보조금을 지원하지 말자는 법안을 발의하고 있는데, 시민단체들이 기껏해야 일회성 사업보조금을 프로젝트 방식으로 받는 데 반해 아예 운영경비를 보조받는 단체나 규모 자체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돈을 받아쓰는 정당이 불법을 저지르는 것은 괜찮은지 자문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같이 법 형평성에 맞지 않게 특정 세력만을 겨냥해 징벌적 법체계를 만들려고 하는 것은 명백한 정치적 탄압이다. 21세기에는 정부가 다양한 견해와 의견 혹은 이해관계를 가진 시민사회세력과 대화하고 협력하는 거버넌스가 중요하다고 이야기되지만, 이명박정부는 아예 지난 10여년간 우리 사회에서 일정한 공감대를 형성한 거버넌스 개념을 스스로 폐기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조금이라도 틈만 나면 정치적 자유와 의사표현의 자유를 묶을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테러방지법, 집시법, '최진실법'(싸이버모욕죄), 아동복지법, 비영리단체에 관한 법 등 그동안 거론된 법들만 해도 적지 않다. 이쯤 되니 모두들 신공안정국이라고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졸렬한 정치보복에 항거하는 시민들
그러나 신공안정국이라 불리는 작금의 사태의 핵심은 이명박정부가 시민과 시민단체를 상대로 무차별적이고 치사하며 졸렬하게 정치보복을 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절정은 유모차 부대와 촛불자동차연합, 시위에 참가한 중고생, 광고불매운동에 나섰던 네티즌들에 대한 수사에서 드러난다. 먹을거리가 걱정되어 거리로 나서 잘못된 협상을 바로잡자고 주장한 것을 귀기울여야 될 이견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정부정책에 반대한 자들이라면 누구라도 처벌하겠다는 식으로 응답한 셈이다.
광고불매운동에 나섰던 네티즌의 출국을 금지한 저들의 처사에서는 졸렬함이 배어난다. '우리가 가진 권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모르지? 맛 좀 봐라' 하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그 졸렬함에 누가 승복할 수 있겠는가? 촛불자동차연합 회원 한명이 자신에게 발송된 운전면허 취소통지서를 보고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허탈하게 웃는 모습에 담긴 뜻을 이명박정부는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한번 행동에 나섰던 사람들은 이제 그 졸렬함에 혀를 차며 행동을 일상화하기 위해 '조직'을 만들고 아예 운동의 대열로 들어서고 있다. 과거의 공안정국과 달리 사람들은 권력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대신 조롱과 멸시만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이명박정부의 이런 정책은 성공하지 못할 거라고 단언할 수 있다. 졸렬한 정치보복에 국가기관을 총동원함으로써 당장에는 자신들이 원하는 한두가지 정책을 관철할 수 있을 듯 보이지만 말이다.
시민사회의 다양성과 위상을 존중하라
시민사회 내에서 서로 다른 주장과 견해가 부딪히고 갈등하는 것은 친북좌파가 준동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세계화와 정보화 등으로 특정 정책과 견해에 모두가 동의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하고 다원화된 세계로 이행되었기 때문이다. 이 객관적인 사회변화와 발전을 무시하고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진 집단이나 세력과 대화하고 협력하기보다 이들을 배제하고 척결하려는 태도는 결국 이명박정부 자신의 정치적 토대를 점점 취약하게 만들고 종국에는 통치불능의 상태로 접어들게 만들 것이다. 그때쯤 가서야 이명박정부는 자신이 폐기하고 있는 거버넌스의 중요성을 비로소 알아차릴지 모르지만, 그때는 이미 너무 늦을지 모른다는 점을 깊이 이해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시민과 시민사회가 정권의 탄압에 굴복하기에는 너무 많이 성장해버렸다는 점도 덧붙여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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