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비판대로 KBS 보도가 바뀌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30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연 '이병순 체제 1개월, KBS 보도 긴급진단' 토론회에서는 "민감한 사안에 아예 침묵하거나 사회적 이슈에 무비판적으로 접근하는 단순 보도가 늘어났고 연속 기획 보도도 확연하게 줄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대통령 발언에 무비판적 보도 행태 두드러져"
이병순 취임 후 KBS 보도의 변화 가운데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 것은 '심층성의 약화'였다. 이날 토론회의 발제자로 나선 이송지혜 민언련 모니터부장은 "지난 6일에서 26일까지의 방송보도 모니터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KBS 보도의 심층성이 사라졌다는 점"이라며 "외자 유치 문제, 국제중 허용 등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거나 민감한 사안에 무비판적 보도 행태가 두드러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대통령이 제기한 정책 사안에 무비판적 보도 행태가 두드러졌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지난 23일 국무회의에서 "학원비가 올라 서민가계에 큰 부담이 되고 있으니 종합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 내용 보도가 한 예다. 당시 KBS는 "이 대통령의 직접 지시에 따라 정부가 학원비 잡기에 본격적으로 나설 태세여서 사교육 시장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한발 더 나아가 '대통령 띄우기'도 나타났다. 이송지혜 부장은 지난 9일 밤 10시에 생방송된 '대통령과의 대화'와 관련해 "다른 방송사와 달리 KBS는 8일과 9일 대통령과의 대화를 소개하는 보도를 내보냈다"며 "특히 9일 뉴스 후반부 '잠시후 생중계' 보도에서는 이 대통령이 KBS 사장 및 임원진과 인사를 나누고 생방송 준비에 들어갔다는 동정보도 까지 내놓아 '대통령 띄워주기'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KBS 시청자 위원을 맡고 있는 우문숙 민주노총 대변인도 "KBS 시청자 위원을 2년간 해왔지만 이렇게 '받아쓰기'로 일관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예를 들면 정부가 추석 전후로 전기, 가스 등 기본 요금 인상 발표를 한 것은 민생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는 일인데도 KBS는 단신 보도로 처리했을 뿐 그 영향은 분석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우 대변인은 "'종부세 완화 정책'과 같은 사안을 놓고도 심층 보도하고 전문적 의견을 전달하기 보다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간의 정치 공방만 내놓고 있다"며 "이와중에도 야당인 민주당의 입장은 대변인 발언 정도로 처리하고 민주노동당의 멘트는 단 한번도 내보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국민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은 공영방송으로서의 자질과 정체성을 상실한 것 아니냐"고 질타했다.
KBS의 심층보도 축소 지적은 이병순 사장이 '탐사보도팀'을 사실상 해체한 문제와 연결된다.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지난 한 달간의 보도를 보면 즉각적이고 적나라한 방식으로 정권을 찬양하는 식의 보도는 나올 것 같지 않다"며 "그러나 정부 정책의 편향성과 같은 문제점이나 권력 집단 내부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는 보도, 심층 보도 등은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현석 KBS기자협회장은 "탐사보도팀 기자들이 내놓은 좋은 보도를 예전 같으면 다섯 꼭지 정도로 다룰 것을 이제는 한두 꼭지로 내놓는 등 데스크에서 축소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지금은 그래도 탐사보도팀을 약화시킨 영향이 덜 나타났지만 내년 초부터는 심각하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정권에 비판적인 심층 보도 등이 많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고민을 토로했다.
"이명박 대통령 사위, 주가 조작 의혹 전혀 보도 안 해"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아예 보도하지 않는 일도 있었다. KBS는 지난 9일 새벽 벌어진 '조계사 식칼 테러 사건'뿐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 사위인 조현범 씨가 주가 조작 연루 의혹으로 검찰의 내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도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또 미국발 금융 위기 사태에서 국민연금이 6조3000억 원대의 손실을 입었다는 사실도 보도하지 않았다. 국회나 시민사회에서 '사상 최대의 보복 인사'라는 비판이 일었던 자사의 인사 논란은 정치 공방으로만 전달했다.
이렇게 민감한 사안이 보도에서 사라진 것은 이병순 사장 이후 경직된 사내 분위기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현석 기자협회장은 KBS 뉴스에서 자사의 '보복성 인사 논란'을 다루지 않은 것을 두고 "국회 출입 기자가 민주당이 낸 '보복성 인사' 비판 성명을 기사로 올렸지만 데스크에서 출고 사인을 하지 않았다"면서 "광범위한 자기 검열과 민감한 사안은 피해가려는 분위기가 심하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기자들이 '힘'이 빠졌다는 것"이라며 "특히 젊은 기자들이 상처받고 힘이 빠져 있는 것처럼 스스로 보기에 뉴스가 전체적으로 번뜩이는 재기가 없고 편집에서도 날카로운 맛이 없이 무난하게만 하려고 하는 것 같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미국 구제금융 신청보다 이승엽 선수 홈런이 중요?"
한편, 보도의 연성화 문제도 제기됐다. 사회적 파장이 크고 논란이 되는 이슈를 중심으로 다루기 보다 가볍고 '보기 좋은' 내용만 중점적으로 다룬다는 지적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제기된 것이 미국에서 구제금융 승인 요청이 있었던 지난 21일 보도의 기사 배열이다.
이송지혜 부장은 "KBS는 21일 첫번째 꼭지로 헬기로 주말 풍경을 취재하는 스케치 보도를 내보냈으며 이어진 보도는 중국의 멜라민 파문과 관련된 내용이었고 다음으로는 마라톤 교통사고 등 사건·사고를 보도했다"며 "이날 국제 금융가의 주요 이슈였던 미국의 7000억 달러 구제금융 승인 요청은 9번째 꼭지로 다뤄졌다. 심지어 이승엽 선수가 일본에서 홈런을 쳤다는 소식을 그 앞에 보도하는 이례적인 기사 배열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또 내용 상으로도 MBC와 SBS가 미국의 구제금융 승인 요청 소식을 첫번째 꼭지로 다루면서 관련 내용을 두 꼭지 더 다루면서 미국의 구제금융 승인요청이 국내 경제에 미칠 영향까지 함께 다룬 것 등에 서 크게 차이가 났다는 지적이다.
또 지난 6일 추석 분위기를 전하는 보도에서도 SBS는 경기 침체로 힘든 추석을 맞는 서민들의 모습을 다루고 MBC도 연속기획 보도로 서민들의 어려움을 짚은 반면 KBS는 "꼬리 문 성묘 행렬", "추석 분위기 '물씬" 등의 보도에서 추석을 앞둔 활기찬 모습을 전하는데 그쳤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우문숙 민주노총 대변인은 "KBS <뉴스9>이 공영방송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는 것은 KBS 구성원들이 정권의 방송 장악이나 비민주적인 사장 바꿔치기 등에 분명한 입장을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KBS 노조의 감시, 감독 역할이 정상화 되어야 한다. 노조가 조합원들에게 끊임없이 공영방송의 중요성을 교육하고 일상적인 투쟁을 조직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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