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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벨트에 침을 뱉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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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벨트에 침을 뱉어라!

[시론] '저탄소 녹색성장'과 토건자본주의의 망령

광복 63주년이자 건국 60주년 기념일이었던 8월 15일 이명박 대통령의 경축사를 듣고 약간은 놀랐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 건국 60년 성공의 역사이자 발전의 역사, 기적의 역사"라고 규정하고, 향후 60년의 새로운 비전으로 온실가스와 환경오염을 줄이는 지속 가능한 성장인 '저탄소 녹색성장'을 제시했다. 그는 이어 "재생에너지 산업은 기존산업에 비해 몇 배나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고, 한강의 기적에 이어 한반도의 기적을 만들 미래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한 입으로 두 말
  
  나는 생각했다. '이 분이 드디어 건설회사 CEO 출신의 한계를 딛고 친환경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국가 운영의 초석을 놓으려는가 보다'라고.
  
  그러나 '혹시나' 했던 기대는 얼마 후 '역시나'라는 실망으로 귀결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그린벨트를 풀어서라도 신혼부부와 서민가정에 주택을 공급하고 싶다"고 말했다. 잉크도 채 마르지 않은 8.15 경축사를 보기 좋게 부인하면서 스스로 저탄소 녹색성장 마인드가 없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어 17일 이만의 환경부 장관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그린벨트는 성역일 수 없다"고 말한다. 설상가상으로 이틀 뒤인 19일엔 그린벨트 해제에 대한 정부의 구체적 방안이 발표된다.
  
  이어서 나온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피니쉬 블로우. 강 장관은 지난 24일 한국선진화포럼 월례토론회에서 "우리나라와 같은 그린벨트제도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제도다" "집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린벨트가 '분노의 숲'이다" "그린벨트는 후손이 걱정해야 할 일이다"는 등의 발언을 속사포처럼 쏟아낸다.
  
  그린벨트를 풀어 주택을 짓겠다는 정부 시책, 더욱 정확히 이 대통령의 신념에 대한 비판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하지만 구절 하나하나가 모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는 폭탄성 발언이었다.
  
  "그린벨트에 침을 뱉어라!"
  
  강 장관의 발언 내용이 알려지자 당장 정치권ㆍ시민단체 등이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특히 "그린벨트가 한국에만 있는 제도"라는 강 장관의 발언은 영국ㆍ미국ㆍ프랑스ㆍ독일 등 선진 8개국이 우리보다 먼저 또는 비슷한 시기에 그린벨트제도를 도입, 건축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는 바람에 장관의 자질까지 의심받게 됐다. 더구나 새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3월 3일 국토연구원이 '영국ㆍ프랑스ㆍ독일 그린벨트정책의 최근 동향과 시사점'이라는 연구보고서까지 발간한 바 있다. 평소 그린벨트에 관해 보고서 한 편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방증이 드러난 셈이다.
  
  지금 우리 경제의 지향점은 확실하다. 바로 저탄소 녹색성장이다. 마침 22일 이 대통령 주재로 열린 신성장 동력 보고회에선 에너지ㆍ환경, 수송시스템, 뉴정보기술(New IT), 융합신사업, 바이오, 지식서비스 등 6대 분야 22개 사업이 선정됐다. 이들 분야를 보면 에너지ㆍ환경 뿐 아니라 여타 5대 분야 모두가 저탄소 녹색성장의 기조 위에 추진될 수밖에 없는 숙명을 안고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강 장관의 언행은 신성장 동력 프로젝트와는 정면 배치되는 입장이다. 하나하나가 개발연대 마인드, 계획경제 마인드, 토건 자본주의 마인드에 충실한 발언인 것이다.
  
  강 장관은 아직도 토목 공사나 대규모 파헤치기로 비실거리는 대한민국 경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주군의 통치 마인드에 맹종하기 위해 별다른 고민 없이 토건 자본주의에 코드를 맞추려는 것인지?
  
  5년 뒤 탄소배출 의무 생각 없나?
  
  마침 전세계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이 급격히 증가했다는 우울한 보고서가 나왔다. 국제 대기순환 연구사업인 글로벌 카본 프로젝트(GCP)가 25일 발표한 2008년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도 전세계 CO2 배출량은 2006년보다 3%나 늘어나는 급속한 증가세를 보여 유엔 정부간 기후변화위원회(IPCC)가 예상했던 최악의 시나리오를 능가했다는 것이다.
  
  GCP 보고서는 세계적인 경기 불황으로 에너지 사용이 둔화될 것이란 예측을 뒤엎고 한 해 사이에 이처럼 오염물질이 늘어난 반면, 숲과 바다의 이산화탄소 흡수율은 지난 세기에 비해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런 현상이 계속될 경우 기온과 해수면 상승은 최악의 경로로 진행될 것으로 우려된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작년에 확정된 발리 로드맵(포스트 교토의정서)에 따라 2013년부터는 탄소배출 의무감축국이 될 예정이다. 우리가 1990년 수준으로만 줄이는 의무를 진다 하더라도 에너지 사용을 지금의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
  
  특단의 조치 강구해야
  
  전체적인 측면에서 볼 때, 요즘 내각은 이 대통령의 토건 자본주의 철학에 맞추느라 스스로의 철학을 뒤로 물려놓거나 아예 뇌리에서 지워버렸음이 분명하다. 그린벨트 훼파와 한반도대운하 군불 때기에 앞장서고 있는 국토 부 장관, 저탄소 녹색성장을 아랑곳없이 대규모 토목 건설 공사로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재정부 장관, 여기에 장단 맞추는 환경부 장관 등.
  
  이럴 때 특단의 조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헌법소원이다. 우선 현재 불거진 그린벨트 문제부터 제기하면 어떨까.
  
  그린벨트 훼파로 야기될 도시 허파 기능의 저하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는 취지의 소원 말이다. 이것 외에 망국적인 토건 자본주의의 망령을 제압할 방법이 현재로선 언뜻 생각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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