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 만리 타국 땅에서 추석을 맞은 1000여 명의 아르헨 한인교민들은 지난 14일 오후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곽지역에 조성된 한인묘원에 모여 송편과 막걸리 등 다과를 함께 나누며 본국의 추석분위기를 한껏 만끽했다.
이날 행사가 특별히 관심을 끌었던 건 외국거주 한인들로써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체 묘원을 소유하고 있는 아르헨티나 교민들이 묘원 입구에 한글 기념비와 정려문을 세우는 등 뜻 깊은 행사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전체 묘지 4000기 규모의 한인 전용 묘원에는 현재 약 600여 기의 유해가 안장돼있다. 여기에 묻힌 대다수는 청운의 꿈을 안고 더 낳은 삶을 찾아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결정했던 이민 1세들이다.
아르헨티나 한인묘원은 다른 민영 묘원들과는 다르게 한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약 100달러에서 150달러의 영구관리비만 한번 납부하면 묘원이 개인소유가 되며 묘원관리회사 측이 추가 경비 없이 조경 등 전체적인 관리를 책임저주는 파격적인 조건이다.
현지 개인회사들이 운영하는 사립묘원들이 거액의 분양비와 한 기당 매년 150달러 상당의 관리비를 받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한인들은 엄청난 금전적인 특혜를 받고 있는 셈이다.
지난 1989년 한인묘원 설립을 주도했던 최범철 전 한인회장에 따르면 "당시 아르헨티나의 경제악화로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한 묘원회사 사장이 찾아와 한인들이 필요한 만큼 묘지를 무상기증을 하겠다는 제안을 해 한인묘원 조성계획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면서 "20여 년 동안 전 교민들의 지지와 후원으로 오늘날 어떤 사립묘원에 못지않게 아름다운 한인전용 묘원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처음 이들이 제시한 조건은 묘지는 무료였지만 매년 적정선의 관리비는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묘원사업은 '백년대계'라는 점과 우리가 기증받은 묘지가 4000기인데 한 기당 100달러씩만 계산해도 매년 40만 달러 상당의 묘원 관리비가 교민 몫이 된다는 것을 우선 고려했다. 그래서 우리는 묘원 회사측과 줄다리기 협상을 통해 관리비를 매년 내지 않고 일시불로 지불, 추가부담을 없애는 파격적인 조건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억 만리 타국에 잠든 독립군 유해 본국으로 보내달라'
한인묘원 공식행사에 참석한 기자는 아르헨티나 예비역장교단과 재향군인회 회원들로부터 한 기의 특이한 무덤을 소개받았다.
장덕기(張德祺, CHANG DUK KY. 1921.11.11~1996.12.16)
1980년대 중반 아르헨티나로 이민 와 생활하다 지난 1996년 사망해 한인묘원에 묻힌 장 옹은 일제시대 만주벌판을 누비던 광복군의 일원이었다.
아르헨티나 예비역장교단 임원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장 옹은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나 이범석 장군 휘하의 조국광복군 제2지대에 입대하여 항일투쟁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1945년 장 옹은 한미합작 특수부대인 OSS훈련을 받았고 국내 침투 일보직전 광복을 맞았다.
이후 장 옹은 대한민국 포병장교로 편입돼 6.25를 거치는 등 군에서 조국을 위해 일생을 바친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이런 장 옹의 독립운동과 군 생활이 정부로부터 인정받아 1977년 건국포장을 받았고,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기도 했다.
대한민국 육군 포병예비역 대령출신인 장 옹이 어떤 경유를 통해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왔는지는 자세하게 알려진바 없다. 현재 아르헨티나에는 직계가족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장 옹은 생전 아르헨티나에서 한국 정부가 국가유공자에게 지급하는 연금을 기본생활비로 삼고 잡화상 등 자영업을 운영하면서 어렵게 생활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을 뿐이다.
평소 장 옹과 가깝게 지냈던 재아 예비역 장교단모임 임원들은 "군 대선배인 장 옹이 친족 하나 없는 아르헨티나의 한인묘원에 홀로 묻혀있는 것 보다는 유해라도 조국으로 돌아가 국립묘지에 묻혀야 된다는 게 우리 후배들의 간절한 바람"이라면서 "본인도 젊음을 바쳐 지킨 조국으로 돌아가 뼈를 묻는 게 마지막 남은 소원이라고 말하곤 했었다"고 입을 모았다.
"조국 광복을 위해 일생을 바친 독립유공자가 먼 타향의 묘원에 초라하게 묻혀져 잊혀지는 것보다는 정부가 나서서 장 옹을 국립묘지에 모셔야 하는 게 후손들의 도리가 아니겠느냐"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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