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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체제가 흔들린다"

[정세현의 정세토크] <6> 김정일 와병설과 위기의 9.19공동성명

우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에 관한 얘기를 좀 해볼게요. 지금은 상당히 정리됐고, 선정적인 보도도 수그러들었지만, 우리 정부가 적절하게 대응했는지, 그것이 앞으로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건강이상설이 많이 보도되던 시기에 정부가 상당히 자신있게, 정보기관과 청와대가 중계방송을 하듯 얘기했어요. 그런데 그건 일종의 자가당착적 조치였습니다. 왜냐면, 7월 11일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이 난 뒤에 정부와 여당이 이런 얘기를 했어요. '지난 10년 동안 햇볕정책을 추진하는 바람에 대북 정보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버렸다. 그래서 금강산 사건이 일어나도 해결 방법도 찾을 수 없게 됐다'는 식으로 지난 10년을 싸잡아서 비판했죠. 그런데 그런 말이 있고 나서 불과 2달도 안 됐는데, 김정일 위원장이 양치질을 하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정보력이 살아났다는 게 난 이해가 안 돼요. 응? 그렇잖아요?

지난 10년간 간첩도 안 잡고, 그래서 북한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전혀 알지 못하게 됐다고 했는데, 보안을 철저하게 할 수밖에 없는 김정일 위원장의 거동에 대해서 그렇게 상세하게 보고할 수 있는 정보력이 불과 두 달 만에 살아날 수 있었는가? 허...허.

미국 정부는 북한 당국이 직접 말할 때까지는 말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식으로 했어요. 중국은 물론 언급 자체를 안 했고. 일본에서도, 언론에서는 이러쿵저러쿵 보도했지만, 정부는 조용히 있었습니다.

근데 우리 정부는 마치 두 달 만에 살아난 대북 정보력의 위력을 과시라도 하듯이, 두 달 만에 살아난 정보력이란 표현에는 따옴표를 쳐야 됩니다. 실시간 중계라도 하듯이 서비스를 했단 말예요.

"8월에 알았는데 9월에 긴급회의, 말이 됩니까?"

그런 얘기가 나오니까 개념계획에 머물고 있는 5029를 작전계획으로 승격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고, 국방장관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국회에서 말했죠. 그런 걸 보고 우리 국민들 중에도 '아, 곧바로 북한의 급변사태가 오고, 미국을 앞세워서 밀고 올라가면 통일 되는구나'하는 그런 환상에 빠진 사람들이 있었을 거예요.

우리 정부가 김정일 건강이상을 8월 14일부터 포착하고 있었고, 계속 예의 주시했다고 하는데...언론 보도가 나온 그날(10일) 아침에 대통령 주재 회의를 하고, 저녁에는 관계 장관 회의를 하면서 '흔들림 없이 가자'고 했다는 것도 앞뒤가 안 맞는 얘기예요. 아, 다 알고 있었으면 그 때부터 대비를 했어야지. 왜 언론에 나온 뒤에야 비로소 국민을 안심시키려는 것 같은 행동을 하는 건 뭐냐 이겁니다.

이제 국민들이 그 정도, 아니 그 이상의 수준은 됩니다. 8월 14일부터 알고 있었으면 실시간으로 민심이나 경제, 국내 상황에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대비책이 있었어야 할 거 아녜요? 그런데 보도가 되고 나서야 뭐, 동요하지 않도록 하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거...그걸 보면서 아, 참, 난 94년 김일성 전 주석의 유고시에 우리 정부가 취했던 조치가 생각났어요. 그것 때문에 사실 통미봉남으로 들어간 겁니다.

7월 8일 12시에 저쪽에서 김일성 주석의 유고를 공식적으로 발표했어요. 그리고 바로 김영삼 대통령이 소위 전군에 비상경계령을 내려야 한다는 식으로 지시하고 회의하고 그랬죠.

저쪽의 지도자가 유고 상태에 빠졌는데 밀고 내려올 가능성은 없지 않아요? 저쪽에서 보면 이를 거꾸로, '이때를 계기로 우리를 치려고 하는 거구나'라고 해석할 수 있어요. 그래서 결국 그 뒤에 우리를 강력하게 비난하면서...또 조문을 불허하는 그런 정부 방침에 시비를 걸고 통미봉남을 본격화했죠.

물론 그러기 전에 북핵 문제를 협상으로 풀려고 하는 클린턴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 김영삼 대통령이 강하게 비판하다 보니까, 미국도 우리보고 '당신네는 빠져라', 북한도 '너희들은 들어올 자격이 없다' 이렇게 돼가지고 그때부터 핵문제에서 우리 자리는 없었지만, 바로 김일성 주석 사망 때 취했던 조치들 때문에 통미봉남은 더 강화돼요.

제임스 켈리가 통일부를 찾아온 까닭은?

북핵 문제와 관련해 새 정부 들어서 남북관계 우선론이 아니라 한미관계 우선론을 강하게 견지하면서 남북대화가 끓어져 버렸잖아요? 그러다 보니 핵문제 해결 과정에서 우리가 아무런 역할을 할 수가 없게 됐어요.

핵문제와 남북대화 병행 전략을 쓰는 과거 10년 동안에는, 남북대화를 통해서 어느 정도 우리가 북한에 영향을 줬다고 봅니다. 내가 그 자리(통일부 장관)에 2년 5개월 있는 동안 제임스 켈리(당시 미 국무부 아태 담당 차관보)가 나한테 두 번 찾아왔어요. 허바드 (당시) 주한 미국 대사는 여러 번 찾아왔죠. 남북장관급회담이 있을 때마다. 또는 남북간에 주요한 접촉이 있으면 '북쪽에 이러이러한 얘기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나한테 했단 말예요.

효과가 있으니까 그 사람들이 그랬을 거 아닙니까? 6자회담 과정에서도 남북대화가 있고 난 뒤에 북한의 태도가 조금씩은 바뀐다는 그런 사실이 검증됐기 때문에 미국도 여러 번 그런 요구를 했을 거 아녜요?

그런데 지금은 남북관계가 경색되다 보니까, 북핵 해결 과정에서 우리가 역할도 못하고 미국도 (우리한테) 기대할 게 없게 됐단 말입니다. 대신 자꾸 중국한테 이렇게 저렇게 해 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나 하고 있는데...이런 와중에 94년 사건(김일성 사망)과는 완전히 강도도 다르고 내용도 다른 사건(김정일 건강이상설)이었지만 우리 쪽에서 작계 5029 얘기까지 나왔단 말예요. 이걸 앞으로 북쪽이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반응할 건지...그리 좋은 결과로 연결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 국회에서 답변하고 있는 김하중 통일부 장관 ⓒ연합뉴스

그나마 그 와중에도 통일부 장관이 국회에서 '민감한 문제라서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게 적절치 않다'는 식으로 답변했고, 며칠 후에 외교부 장관도 국회에 나가서 '얘기할 내용이 없다'는 식으로 해서 정부가 뒤늦게나마, 정부 내 일부에서 자신만만하게 얘기하던 것에 대해 반성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수습해 나간 건 다행입니다. 그러나 어쨌건 9월 9일부터 일주일 가까이 5029를 작전계획으로 승격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국회에서도 나왔다는 기록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그래서 이걸 빨리 정부가 어떤 식으로 마무리를 해야 되는데...물론 국방부도 나중에는 작계 5029를 금년 중에 구체화시키거나 협의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지만, 그러나 이미 쏴 놓은 화살이다 이겁니다.

그걸 어떻게 수습할지 지혜를 모야야 될 겁니다. 정부 내에서도 모으고, 또 어쨌건 그게 적절치 못했다는 것에 대한 평가나 검토가 있어야 하고, 앞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반성이 있어야 됩니다.

또 민간단체들의 방북 과정에서도 그런 메시지는 가야돼요. 사실상의 과잉조치 내지는 도에 지나친 자극행위에 대한 유감 표명을 민간 차원에서라도 해야 돼요. 꼭 정부의 위촉을 받고 하라는 게 아닙니다. 정부의 뜻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정부가 그렇게 한 것에 대해서 과오를 좀 인정하는 식의 조치를 취하고, 민간들이 전달을 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기왕에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 뛰고 있는 단체들이 자기 분야 일만 하면 됩니까? 이럴 때 가서 뭔가 역할을 잘 해서 '그거 좀 지나쳤지만, 뒤늦게 수습했는데, 정부 얘기는 직접 못 들었지만, 좀 지나쳤다는 걸 아는 것 같더라'고 말해서, 더 이상 저쪽이 14~5년 전처럼 남북관계를 경색시키는 쪽으로 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 때는 민간단체 방북도 없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걸 하니까 민간단체들이 가서 역할을 좀 해야 합니다.

"9.19체제가 흔들린다"

다음에는 북핵 문제를 잠깐 얘기하겠습니다. 지난주 금요일이 9.19공동성명 발표 3주년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그 9.19체제가 심각한 위기 국면에 있어서, 그걸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좀.

9.19체제는 처음부터 BDA 문제(2005년 9월부터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에 있는 북한 자금이 미국의 조치에 의해 동결되면서 북한의 국제 금융거래가 봉쇄됐던 일) 때문에 굉장히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2006년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핵실험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충격을 받은 미국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가 그해 말부터 바뀌면서 그 이듬해에 9.19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라는 이름의, 2.13합의라는, 실질적인 북핵문제 해결 로드맵을 만들어 냈고, 그걸 보완해서 불능화와 신고 문제까지 합의한 10.3합의를 이끌어 냈어요.

9.19체제가 훼손되지 않고 회생할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북한의 벼랑끝 전술. 핵문제 해결을 위한 미국의 정책노선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일종의 협상 전술이었죠. 그게 전적으로 유효했던 건 아니지만 상당 정도 효력이 있었다고 봐야 되는 거고...또 하나는 북한이 부시 정부, 특히 네오콘들의 대북 압박정책의 결과로 미사일 발사까지 해 버리고, 미국 시간으로 2006년 7월 4일이었죠? 그건 미국이 외교적인 망신을 당한 겁니다. 독립 기념일에 그런 일을 당했으니까. 그러다가 10월 9일 핵실험까지 해버리면서 미국의 국제정치적 리더십이 추락했다는데 대한 여론이 비등해 지면서, 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겠지만, 11월 초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사실상 대패하잖아요. 그리고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니까, 할 수 없이 대북정책 기조를 바꿀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두 가지. 미국의 국내정치와 북한의 벼랑끝 전술이 작용해서 그런 대로 2.13합의, 10.3합의, 또는 금년도 4.8 (북미)싱가포르 합의, 또는 7.12 베이징 6자 수석대표 회동...그렇게 문제 해결 국면으로 왔죠. 그런데 미국이 8월부터 갑자기 신고 내용에 대한 검증 문제와 관련해서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어요.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금년 5월 8일 북한이 1만8882페이지에 해당하는 핵활동 일지를 미국한테 건넸을 때, 미국은 처음에 '아주 내용이 좋다.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성실하게 자료를 넘겼다'는 식으로 좋게 평가를 했어요. 그 후에 북한과 미국이 막후 접촉을 통해서 신고를 어떻게 할 건지 합의된 상태에서 6월 26일 북한이 신고서를 제출하고, 거기에 대한 반대급부 차원에서 부시 대통령이 의회에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를 통보했어요. 그렇게 하면 법에 의해서 8월 11일까지는 발효되게 돼있었죠. 그리고 7월 12일 베이징에서 6자가 만나서 신고된 결과에 대한 검증 문제에 대해서 합의를 합니다.

그때 수석대표들이 언론보도문을 발표했는데, 검증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를 하게 돼있어요. 시설방문, 문서검토, 기술인력 인터뷰. 그리고 만약 추가로 무슨 기타 조치가 필요한 경우에는 6자 만장일치로 합의해야 한다는 단서까지 달아놨어요. 그리고 검증의 구체적인 계획과 이행은 전원 합의의 원칙하에 한반도비핵화 실무그룹에서 결정한다고 했어요.

그럼 북한으로서는 다 됐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8월 11일이 되어도 검증 문제 때문에 테러지원국 해제가 안 되니까 8월 26일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죠. 불능화 중단하겠다고.

그러면서 그 때 북한이 했던 말을 뒤집어 보면, 북한과 미국이 무슨 얘기를 해왔는지 추정할 수 있어요. 8월 26일자 북한 외무성 성명을 보면 미국이 북한에 대해 특별사찰을 요구한 걸로 돼있어요. 특별사찰은 내용상 불시사찰, 아무 때나 들어가는 거죠. 그 다음 미신고 시설에 대한 사찰. 핵시설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여기 뭐가 있는 것 같다'고 하면서 의심나는 대로 무조건 들어갈 수 있는 게 특별사찰이에요. 또 시료채취도 요구했죠. 그러니까 북한은 '이른바 국제적 규범이라는 미명하에...' 이런 얘기를 했는데, 9월 19일 판문점에서 있었던 에너지 지원 남북 실무협의에 나온 현학봉 미국국 부국장도 '국제적 기준이라는 미명하에 특별사찰을 요구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재확인을 했단 말예요.

약속대로 테러지원국 해제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북한과 미국이 8월 11일 이후에 몇 번 직간접적으로 만났어요. 거기서 미국이 특별사찰을 추가로 요구한 모양인데, 그러면서 7.12합의를 뒤집는 결과가 된 겁니다.

미국이 이런 얘기를 한다고 합디다. '신고는 곧 검증을 전제로 하는 거고, 검증은 국제적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신고한데 대한 검증을 비켜갈 수 없다.' 동양 사람들을 자주 접촉하다 보니까 그런지 모르겠는데, '젓가락 한 개만 가지고 어떻게 먹냐. 신고와 검증은 젓가락 두 개처럼 불가분의 관계다. 그런데 북한이 저렇게 나오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요.

6월 26일 신고한 내용에 대해 충분히 검토해서 7월 12일 합의를 한 걸 텐데, 특별사찰이 필요한 내용을 추가로 뒤늦게 발견했는지 뭔지 모르겠어요. 이해가 잘 안 되는데, 하여간 북한이 세게 반발하면서 지금, 9.19체제 자체가 흔들리게 됐습니다.
▲ 2005년 9.19공동성명 탄생의 주역들. '추억의 사진'으로만 남을 것인가 ⓒ연합뉴스

미국 국내정치에 휩쓸려온 북핵 역사

아마도 미국 국내정치가 변수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어요. 매케인이 8월까지만 해도 페일린 효과가 없어서 상당히 밀렸죠. 그래서 보수층을 결집시키려고 그랬는지 그건 모르겠는데, 어쨌건 북핵 문제가, 북한의 여러 가지 협상 전략전술 때문에도 요동을 많이 쳤지만, 사실은 미국의 국내정치 때문에도 많이 요동을 쳤어요. 클린턴 정부 시절에 제네바합의를 해 놓고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져서 북한과의 여러 가지 약속을 제대로 못 지킨 게 대표적인 사례죠.

또 BDA 문제로 9.19체제가 초기에 우여곡절을 겪었던 것도 사실 부시 행정부 내에 협상파와 강경파 사이의 갈등이나 경합 때문에 그랬던 거 아닙니까? 그런데 또 미국 국내정치(중간선거) 때문에 부시 정부의 노선이 압박에서 협상으로 바뀌어서 2.13합의, 10.3합의, 7.12 합의까지 나왔단 말예요.

이 상태로 가면 9.19체제가 그냥 와해될 수도 있어요. 미국의 다음 정부가 나올 때 까지 이도저도 아닌 상태에서 표류할 수 있는데, 부시 정부가 그나마 외교에서 업적을 쌓고 떠날 수 있는 대외 문제가 북핵 밖에 없습니다. 이라크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만 한 건 아니고. 그래서 나는 9월 중으로 미국 정부가 다시 생각을 바꿔서 7.12합의의 수준으로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정부도, 그냥 미국이 하자는 대로 북한이나 중국한테, 아, 참, 지금은 북한한테 말할 기회도 없지...중국한테 미국 얘기대로 하자는 식으로 어시스트나 하고 찬조나 하는 식으로 하지 말고, 미국한테 거꾸로 '7.12합의 수준에서 일단 고비를 넘겨 놓고, 다음 정부에서 하도록 하자'는 권고, 외교적 협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코스트만 말하고 베네핏은 입 다무나?"

그리고 마지막으로...며칠 전에 신문을 보니까 작년 10.4남북정상선언을 다 이행하려면 14조 3000만원이 든다고 통일부가 국회에 보고했다고 해요. 그거에 대해서 좀 할 말이 있습니다.

10.4선언 이행에 얼마나 드느냐만 물어봐서 그렇게 답했는지 모르겠지만, 코스트(비용)를 말할 때는 반드시 베네핏(수익, 효과)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상식 아녜요?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CEO 출신이기 때문에, '이 정도의 돈을 들여서 땅을 사고, 토목공사에 얼마, 건축에 얼마, 내장에 얼마를 들여서 시장에 내놓으면 얼마짜리가 되고, 그러면 우리 회사는 돈을 얼마나 번다'...이런 방식에 아주 익숙해 있는 분입니다. 대통령 보고나 국회 보고나 마찬가지죠. 그리고 또 국민들한테도 반드시 코스트가 14조 들어가면 베네핏이 얼마로 예상된다는 걸 분명히 얘기해야 해요.

또, 예산이나 경비 관련 얘기를 할 때는 그 돈이 얼마 동안 투자되는 돈인가 하는, 소요 기간을 명시해야 돼요. 10.4선언 이후 합의된 걸 보면, 어떤 건 5년 이상 걸리고, 반면에 효과가 바로 나는 사업도 있어요. 예를 들어서 조선소 같은 건 북한한테 지어 주는 게 아녜요. 북한에 조선소를 만들지만 싼 노동력을 가지고 우리 조선사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거죠. 조선소를 가령 1억불 들여 만들면, 인건비 때문에도 현대중공업이나 대우조선해양 같은 데서, 어차피 블록 공법을 쓰기 때문에, 투자 환수 시간이 굉장히 짧을 거예요. 그런 걸 얘기 해야죠.

'연평균 얼마씩 들어간다. 우리한테는 언제부터, 전체적으로 얼만큼 수익으로 돌아온다'를 같이 설명해야죠.

한나라당 어떤 의원 한 분이 우리가 북한에 지원을 할 때, 보건복지 분야에서만 오히려 33조 이상의 이익이 우리한테 돌아온다고 계산했다는 보도가 있었어요. 우리가 북한을 도와서 북한 주민들의 건강 상태가 지금보다 5%만 좋아져도 우리가 거기서 33조의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노동력의 질이 향상되니까, 생산성이 높아지고...뭐 이런 겁니다. 그러니까 10.4선언을 이행하기 위해서 14조를 들여 대북사업을 하면, 그것이 140조 효과가 될지 1400조가 될지, 정부가 이제는 정확하게 얘기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겁니다. 돈 들어가는 것만 얘기하지 말고.

통일비용론도 마찬가지예요. 90년대 중반에 통일비용론이 왜 국민들로 하여금 '차라리 분단 상태에 있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냐? 통일되면 분단비용이 더 이상 안 들어가는 얘기는 안 하고 투자비용만 계산해서 내놨죠. 생돈 들어가는 얘기만 하고 그 돈이 새끼를 치는 애기는 안 하니까 '아이고, 돈 엄청 드는 구나' 이렇게 생각했는데...그래서 사실 통일비용론은 분단 이데올로기로 역할을 했습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14조가 들어간다는 얘기를, 잘못 과장하기 시작하면 '야, 이거 남북사업도 그만 두고 차라리 이렇게 그냥 사는 게 좋겠다. 그 뭐, 14조씩이나 들여도 북쪽한테 고맙단 소리도 못 듣는데...'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또 14조가 그리 많은 액수도 아니라고 봅니다. 올해 책정된 남북협력기금이 1조 2000억이니까, 내년에도 1조 정도 된다고 보고 계산을 하면, 10년이면 10조입니다. 그게 14조랑 거의 비슷해요. 언뜻 커 보이지만, 별로 큰 것도 아닙니다. 독일 통일 전에 서독이 동독에 매년 지원한 액수(80년대 10년간 2000억 마르크, 연평균 200억 마르크/120억 달러)와 비교하면 14조(140억 달러)는 그 8분의 1이나 10분의 1 정도 밖에 안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국제정치 상황과 무관하게 남북 경제공동체를 만들고 남북간의 민심이 연결돼서 외세의 간섭 없는 통일까지 꿈 꿀 수 있게 되면, 그 돈은 써야 돼는 거 아니냐...우리 국민들이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해줘야 합니다. 우리 속담에 '쌀독에서 인심난다'고 했습니다. 북쪽도 그 말을 잘 써요. 지원을 통해서 민심의 흐름이 바뀌는 겁니다.

* '정세토크'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現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 경남대 북한대학원 석좌교수)이 한반도 문제에 관해 자신의 경험과 견해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격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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