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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중병설에 평양은 '잠잠' 서울은 '홍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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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중병설에 평양은 '잠잠' 서울은 '홍역'

한반도브리핑 <99> 정부-보수언론 합작한 아이러니

위기를 만드는 정부와 위기를 키우는 언론

'9월 위기설'이 있었다. 단기외채의 급증, 환율 급등, 채권 만기 도래 등이 겹치면서 IMF 위기가 다시금 재현되지 않을까 하는 경제적 위기가 그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9월 위기설은 현실화되지 않았고, 그렇게 위기는 지나갔다.

그러나 또 다른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진짜 위기는 지금 다가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남과 북, 그리고 주변 국가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그 위기는 다름 아닌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이다.

일주일 동안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을 놓고 여러 가지 분석과 해설이 난무하고 있다. 거기에 새로운 소식들이 덧붙여져서 뉴스가 뉴스를 재생산하고 있다.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과장되었는지도 불분명한 보도들이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의 신변에 관한 사항은 한반도의 정세 변화에 매우 중요한 변수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북한 같은 수령제 국가에서 최고지도자의 신변 이상은 다른 국가들의 그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며, 그러므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봐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신중함과 냉철함이 요구된다. 설익은 정보에 기초한, 잘못짚은 대응이 나온다면 그냥 가만히 있는 것보다 못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런 점에 최근 우리 정부가 보여준 태도는 여러모로 우려스럽다. 마치 옆에서 지켜본 듯 정보를 노출하고 정보력을 과시하는 듯한 태도는 그 자체도 우려스럽지만, 그것이 가져올 결과도 걱정스럽다.

현재 남북관계는 당국간 대화의 중단과 금강산 총격 사건 등으로 인해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없더라도, 이미 남북관계는 위기였다. 그런데도 최근 정부와 언론은 위기를 만들고, 키우는데 공을 들이는 듯하다. 미국, 중국 등 정부 당국이 보여주고 있는 태도와는 확연히 비교된다. 이명박 정부가 미국과의 동맹을 최우선시하고, 미국에 보조를 맞추고자 한다면 마땅히 이런 것부터 배워야 하지 않을까?
▲ 추석을 맞아 조상의 묘를 찾은 북한 주민들. 평양 시민들의 평온한 모습 속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에 관한 어떤 징후도 느낄 수 없었다. ⓒ연합뉴스

더 큰 위기를 조장하는 공세적 군사작전

더욱이 당황스러운 것은 지금의 위기를 관리하고, 합리적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공세적 군사작전이나 논의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도 기다렸다는 듯이 그동안 개념계획으로 머물러 있던 '5029'가 작전계획으로 변경되고 있고, 사단급의 한미 연합 상륙훈련이 구체적으로 계획되고 있다.

작전계획 5029가 가지고 있는 주권 침해의 문제, 중국의 군사적 개입의 우려, 북한에 대한 공세적 군사작전이 가져올 예상하지 못할 부작용 등으로 그게 논의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현재의 남북관계를 보다 악화시킬 것은 명확하다. 여기에 소규모로만 운영되던 호국훈련이 한미연합의 대규모 상륙작전으로 추진됨으로써 위기를 더 악화시킬 것은 불을 보듯 분명하다.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상이 사실이라면, 이를 기회로 공세적 군사작전을 내놓는 것은 북한을 자극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의 악화, 현재 교착국면에 있는 6자회담의 재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위기를 증폭시키고, 주변국과의 불필요한 마찰과 갈등만 불러올 위험도 있다.

김영삼 정권 시절, 김일성 주석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전군에 비상령이 내려지고, 북한의 미래에 대한 무분별한 예측과 흡수통일에 대한 노골적인 공세가 남북관계를 파탄시켰던 역사가 되풀이 되고 있다.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는 것은 역사로부터 얻은 교훈을 망각했을 때 일어난다.

분명히 하자. 남북관계의 악화를 통해 우리가 얻을 이익은 무엇인가? 현재 우리가 처한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조금이라도 이익을 가져달 줄 수 있는가? 빈약한 외교력을 보완하는데 보탬이 되는가?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작용을 하는가?

자신을 겨냥한 부메랑이 되지 않기를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에도 불구하고 평양은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북한 전역에 별다른 특이 징후가 포착되지 않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다.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에도 홍역을 앓았던 것은 평양이 아니라 서울이었다. 혼란과 당혹감이 지배했고, 국론이 분열되었으며, 정책도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였다. 결국 북한의 위기에 잘못 대처한 대가를 고스란히 치렀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의 상황은 그때와 같은 혼란이 일어날 정도로 우리가 취약하지는 않다. 발등에 떨어진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그러하기도 하지만 지난 10년간 남북관계가 진전됨에 따라 국민들의 인식이 이미 이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일각에서만 그러한 반응이 나타날 뿐이다. 문제는 그러한 반응이 마치 전체의 분위기인양 신문지상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며, 정부가 이를 조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문제다.

우리에게는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나아가 지난 10년보다 나은 관계를 만들어야 할 과제가 놓여있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부터 하나씩 신뢰관계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에 이상이 있다면 차분한 대응을 하면 되고, 북한의 여러 가지 사태 변화에는 그에 해당하는 대응책을 마련해서 실행하면 된다. 아니 이미 마련된 대응책들을 점검하고, 언제든지 실행할 수 있는 준비태세를 갖추면 된다. 지금처럼 불확실한 정보에 근거해서 이리저리 흔들거려서는 안 된다.

이미 북한은 새로운 미사일 발사 기지를 건설하고 있다. 민감한 시기에 흘러나온 소식이어서 더욱 불안하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북한은 어김없이 이에 대한 대응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북한은 이미 <노동신문>에 '언제든지 인공위성을 쏠 수 있다'고 확언하기까지 했었다.

지금까지 보여준 북한의 행동은 철저히 '행동 대 행동'이었다. 우리 정부가 최근 보여준 위기관리가 더 큰 위기를 불어오는 오류를 범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것은 상대방을 겨냥하기 보다는 자신을 겨냥한 부메랑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 1994년 김일성 북한 주석의 사망소식에 긴급 안보 관계 장관 회의에 들어서고 있는 김영삼 대통령 ⓒ연합뉴스

남북관계의 발전만이 해답

위기를 합리적으로 관리하고, 더 큰 위기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남북관계의 발전만이 해법이다. 남북관계의 순조로운 발전은 지금과 같은 위기시에 보다 더 정확한 정보를 획득할 수도 있으며, 북한의 변화에도 예측가능한 관리를 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 조그마한 위기에 과잉대응하기보다는 꾸준하게 남북관계를 유지, 발전시킴으로써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비용면에서 보더라도 훨씬 더 경제적일 것이다.

'이번 기회에 북한을…'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최근 나오는 북한 급변사태, 권력이상설, 후계구도설 등의 이면에는 '김정일 없는 북한'은 결국 붕괴와 흡수통일일 뿐이라는 속마음이 있는 듯하다.

'김정일 없는 북한'이 붕괴와 흡수통일로 쉽게 움직일 것 같지도 않지만,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주관적 희망대로 동서독의 전철을 밟을지도 확실치 않다. 북한의 주민들의 남한의 품에 스스로 안길 가능성도 없으며, 중국이 팔짱끼고 지켜보지도 않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작전계획 5029'에 따르면, 북한의 붕괴는 우리의 주권 행사가 아니라 미군의 군정으로 계획되어 있다는 점이다.

백번을 양보해서, 북한을 흡수통일 한다고 해도 북한 주민들이 동독의 주민들처럼 스스로 남한 체제를 선택하게 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의 발전이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 지금과 같이 위기에 적을 대하듯, 군사작전까지 운위하면서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 아닐 수 없다. 흡수통일을 하기 위해서라도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얻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를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남북관계의 발전을 통한 것밖에 없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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