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최근 중국에서 학생 인턴들에 대한 이슈가 크게 부각된 것은 폭스콘의 열악한 근무 환경과 학생 인턴제도가 교묘하게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다. 즉 폭스콘은 중국 전역에서 학생 인턴제도를 통해 '저렴한 양질의 노동력'을 시장 상황에 맞추어 손쉽게 조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2012년 초 미국 공정노동위원회(FLA)의 현장 조사 이후 폭스콘의 학생 인턴 숫자가 대폭 감소하였고 근로 조건도 향상되었지만 적어도 2011년 말까지 폭스콘은 인건비 절감과 유연 생산시스템 구축 및 생산 효율성 극대화를 위해 학생 인턴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였다.
사실 중국의 학생 인턴제도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통해 경제성장을 추진했던 중국 정부의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중국 정부는 제1차 5개년 계획(1953∼1957년)기간에 산업화와 기술인력 양성을 촉진하기 위해 소련으로부터 기술계 고등학교 제도를 도입하였고 1953년 중국 전역에 651개의 기술계 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중국 정부는 기술계 고등학교를 국비로 운영하였고 졸업생들은 비록 직장 선택이나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었지만 정부가 지정하는 국유기업에 고용되어 평생 일할 수 있었다. 또한 재학 중 학생 인턴제도를 통해 국유기업에 파견되어 현장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국유기업 근로자들도 학교에 파견되어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 미 애플사(社)의 제품을 제조하는 폭스콘의 중국 공장 ⓒ로이터=뉴시스 |
소위 기술계 고등학교와 국유기업 간 '학습과 근로의 결합(工学结合; combination of learning and working)'이라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특히 1978년 개혁개방 정책 이후 제조업 중심의 경제성장과 노동집약적 산업의 인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기술계 고등학교 설립 요구가 급증하였고, 이에 따라 1980년부터 1985년까지 기술계 고등학교 재학생이 전체 고등학생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8.7%에서 35.9%로 꾸준히 늘어났다. 이러한 기술계 고등학교 증가 추세는 1996년까지 계속 이어졌으며 1996년 현재 중국 내 기술계 고등학교는 6만 1,626개에 달했고, 전체 고등학생의 56.7%가 기술계 고등학교의 재학생이었다. 개혁개방 정책 이후 20여 년간 기술계 고등학교는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최고의 황금기를 누렸던 셈이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기 들어 산업구조조정과 국유기업 개혁 및 시장을 통한 직업 선택권 확대와 경쟁체제 도입 등이 가속화되면서 국유기업과 기술계 고등학교 간 협력 관계는 중대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학생 인턴과 졸업생의 최대 수요자였던 국유기업들의 파산이나 구조조정은 기술계 고등학교 재학생의 공급 초과현상으로 나타났다. 국유기업 간 통폐합을 통해 비효율성을 줄이려는 노력이 결과적으로 기술계 고등학교의 입지를 크게 약화시켰는데, 여기에 중국 정부가 일자리 할당 및 국비 운영을 사실상 중단하고 사립학교로 전환을 유도하게 되자 기술계 고등학교들은 치열한 생존 경쟁에 내몰리게 되었다. 특히 다국적기업과 민간 기업들이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커지게 되자, 중국 정부는 기술계 고등학교와 이들 기업 간 협력관계 형성을 적극 주도하였다. '학습과 근로의 결합' 구조에서 기술계 고등학교의 파트너가 국유기업에서 다국적기업과 민간 기업으로 바뀐 것이다.
기술계 고등학교의 협력 파트너 변화는 학생 인턴제도를 '저렴하고 유연하게 고용할 수 있는 노동력 공급원'으로 변화시켰다. 특히 폭스콘과 같이 중국을 생산거점으로 활용하는 다국적 기업들은 학생 인턴들을 적극 고용하여 인건비 절감과 유연 생산체제 확립 및 가격 경쟁력을 꾸준히 확보할 수 있었다. 중국의 노동법에 따르면 학생 인턴들은 정식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근로 조건이나 작업 환경에서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고 각종 사회보험제도에서도 제외되었다. 반면 세계 시장 상황에 따른 제품 주문량의 변동이 빈번한 다국적 기업의 입장에서는 필요할 때마다 3개월에서 6개월씩 고용한 뒤, 주문량이 줄어들면 신속하게 학교로 돌려보낼 수 있는 학생 인턴들이 매우 요긴한 존재였다. 생산라인에서 단순한 작업을 반복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노동력을 대량으로 저렴하게 조달하여 초과 근무나 야간 근무, 주말 근무뿐만 아니라 산업재해의 가능성이 많은 작업까지도 부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 인턴들은 자신들을 파견한 학교가 직접 나서지 않는 한, 기업들의 부당한 요구에 대해 적절히 대응할 방법을 알지 못했고, 노동조합 등 자발적인 조직력도 갖추지 못했다.
한편 독자적인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기술계 고등학교들의 입장에서는 학생들의 이해관계보다 학생 인턴들을 받아주는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더욱 중요했다. 즉 기술계 고등학교들은 현장 실습을 나가는 학생들로부터 수업료와는 별도로 인턴십 소개비를 징수할 수 있었고, 기업들로부터는 재정 지원금과 장비 구입비 등을 받을 수 있었다. 따라서 기술계 학교는 졸업반 학생들에게 현장 실습을 필수적인 과정으로 교육시켰고 현장 실습과 졸업장 수여를 연계하여 인턴 과정의 중도 이탈을 최대한 막으려고 하였다. 결국 학생 인턴을 매개로 하여 학교와 기업 간 모종의 거래관계가 만들어졌고, 이는 '노동의 상품화'와 '교육의 상품화'를 동시에 촉진시켰다. 예전에 기술계 고등학교와 국유기업 간 결합 구조가 노동과 교육에 대한 자본의 개입을 최소화한 상호 호혜적인 관계였던 반면, 1990년대 후반기 이후 기술계 학교와 기업 간 관계는 자본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한 시장거래로 전환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전환 과정에서 중국 정부는 방임 내지는 '암묵적 지지' 입장을 취해 왔다고 할 수 있다. 학생 인턴 개개인의 근로 조건보다는 다국적기업 유치를 통한 일자리 창출, 기술계 고등학교의 자립 및 국유기업 개혁 등이 더욱 중요한 과제였기 때문이다.
폭스콘 사태 이후 중국 언론들은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학생 인턴들의 부당한 처우와 인턴들을 기업에 공급하면서 사적인 이윤을 추구하는 기술계 학교들의 실상을 보도하면서, 이들 학교가 다국적 기업의 직업 중개기관으로 변질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폭스콘 사태 이후에도 학생 인턴제도에 대한 중국 정부의 인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몇 가지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지만, 학생 인턴제도의 근간을 흔들 정도로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즉 학생 인턴제도와 관련된 당사자들 간 복잡한 이해관계에 섣불리 개입하기보다는 국내외 여론 동향을 꾸준히 살피면서,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문제점이 자연스럽게 해결되길 바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오히려 최근 폭스콘을 비롯한 다국적기업들과 민간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학생 인턴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고 고용을 최대한 자제하는 분위기이다.
물론 앞으로 진행 상황을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지만, 폭스콘 사태는 학생 인턴을 포함한 중국 현지 근로자들의 이익 증진이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에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는 점을 확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더 나아가 중국 노동법의 사각지대에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형성하고 암묵적으로 그 하부구조를 담당해왔던 학생 인턴제도 역시 중대한 전환기에 직면하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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