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연초 이명박정권의 출범을 준비하던 대통령직 인수위에서는 MB노믹스의 우선순위로 공기업 민영화, 그중에서도 1순위로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민영화를 꼽았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로 한국경제가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하에 들어간 이래 급진적으로 시행되어온 공기업 민영화에서 살아남은 '최후의 공공부문'마저 민영화하겠다는 것이며, 10여년에 걸친 한국경제의 신자유주의적 재구조화를 완결짓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금융산업의 개방, 대형화, 민영화는 10여년 전부터 현재까지 일관된 기조로서 정책당국에 의해 추진되어온 것이기도 하다. 산업은행 민영화의 경우도 노무현정권 시기인 2007년초 이미 국책은행 구조개편이라는 명목으로 정책금융을 제외한 산업은행의 투자은행 부문을 자회사인 대우증권과 합쳐 금융투자회사로 만든 후 민영화하려는 민관합동 태스크포스의 구상이 있었다. 게다가 현정권 초기 기획재정부는 금융써비스산업에 국민경제의 핵심 성장동력으로서 '제조업을 대신'하는 정도의 비중까지 부여하는 동시에, '외화벌이용 수출산업'으로 육성하려는 의도를 담은 기획을 제시하기도 하는 등 금융화정책 추진의 정도를 한층 강화했다.
금융공기업 민영화, 재벌을 위한 것인가
산업은행 민영화와 관련하여, 정권 초기에는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산업은행, 우리금융지주, 기업은행을 통합한 '초대형 금융지주회사 설립안'과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우선 민영화 시행 후 매각대금에 의한 정책금융 전담펀드 조성안'이 대립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현재는 후자에 힘이 실려 우선 민영화를 추진하되 양자를 절충하는 방안으로 가고 있는 듯하다. 2008년말 산업은행을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고 2012년까지 '임기내'에 완전 민영화한다는 것이다.
이 와중에서 정책금융기능에 관해서는, 따로 한국개발펀드(KDF)를 설립하여 민간금융회사에 전대(on-lending)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제공함으로써 이들이 중소기업에 자금을 지원케 하는 방안이 함께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의 민영화와 정책금융기능 분리는 헐값매각이 재발할 가능성을 우려하게 만드는 동시에, 자금조달비용이 늘어나 중소기업 금융소비자들의 비용상승을 불가피하게 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정권 출범 전후 보수적 싱크탱크 역할을 한 한반도선진화재단은 금융부문 정책방향에 대한 제안서를 출간했다. 그 필자들인 보수적 경제학자들은 선진화를 운운하며 금융공기업 민영화를 강조하는데, 그들이 제시하는 민영화 이후 금융기관 소유지배구조상의 대안은 주로 국내 산업자본, 즉 재벌이 사모펀드 구성함으로써 금융기업의 소유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금산분리 규제의 완화와 철폐였다. 그들의 제안에서 금융과 제조업부문을 아우르는 재벌의 지배력 확대가 불러올 문제들에 대한 우려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정부는 민영화보다 경제난에 신경써라
정권 출범 후 반년을 넘긴 지금, 이런 경제학자들의 국민경제 성장에 대한 정책제안마저 과도하게 낙관적으로 보일 만큼 상황은 더 '험악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그 단적인 예가 민영화 대상에 개항 4년 만에 흑자를 달성하고 국제적으로 우수한 써비스 성과를 보이고 있는 인천공항을 포함시킨 것이다. 이에 대하여 현정권은 대통령의 친인척이 관계된 호주 금융기업 매쿼리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이명박정권의 강한 정책드라이브 아래 금융부문을 포함한 제반 영역에서, 정권 지배세력의 '특수한 이해들' 및 최대의 기회를 얻을 것으로 기대되는 '예상 소유주들의 계산'과 맞물려 국민경제 발전에 대한 신중한 고려 없이 무차별적으로 공기업 민영화가 추진되고 있다는 우려마저 갖게 만든다.
이명박정권의 공기업 민영화 드라이브는 4월 총선 이후 본격화되리라 예상되었으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파동으로 인한 국민의 분노와 촛불정국의 와중에서 잠시 주춤했다. 심지어 당시 민심 달래기 차원에서 민영화계획을 정부여당이 스스로 공개 부정하는 등 꼬리를 내리는 듯하기도 했다. 하지만 촛불정국의 소강국면에서 현정권은 다시 기회를 만난 듯 공안정국 조성 기도와 동시에 말을 뒤집어 국민의 신뢰를 한층 추락시키고, 민영화 보따리들을 '공기업 선진화'라는 기만적 명칭을 사용하며 풀어대고 있다. 정부는 치솟는 환율, 물가고, 내수불황, 고용 및 투자침체, 국제수지적자, 주가폭락 등 심각해진 경제난조차 관심의 후순위에 두는 듯한 인상마저 주어가며, 현재 '민영화'를 경제정책상 일차적으로 중요한 대상인 양 취급해오고 있는 것이다.
핵심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공공성을 다시 생각한다
이러한 민영화 와중에 매각대상의 자산저평가나 부실판정이 일종의 필요한 사전절차처럼 왕왕 등장하여 공기업의 헐값매각이 유도되곤 했다. 이후 그 공기업이 바로 정상화되면서 부실을 빌미로 싼 가격에 매입한 사적인 주체(주로 외국자본이나 민간 대기업)에 국민의 세금에서 나온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국민세금의 정책적 이전과정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는 외환위기 이후 공적자금이 투입된 후 외국자본에 매각된 국내기업이나 은행들, 특히 론스타사태를 야기한 외환은행의 사례가 교훈적으로 보여주는 바이다. 심지어 산업은행의 경우도 일단 사유화하는 매입주체에 유리하도록 의도적 부실화를 초래할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간 핵심적 국책은행으로서 산업은행이 다량 보유한 대우증권이나 대우해양조선, 한국전력 등의 지분을 고려할 때, 산업은행의 매입주체는 국내 기간산업에 대한 소유지배력까지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산업은행의 민영화는 더욱 위험한 구석이 있다. 국내 은행부문의 민영화 비중은 이미 OECD에서도 평균을 상회한다. 그런데도 계속된 일방적 민영화와 금융의 대형화 유도는 금융의 공공성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동시에, 경제력 집중을 심화시키고 선진국에서 볼 수 있는 중층적 금융생태계를 마련하는 일을 더욱 어렵게 한다. 역사적으로 드러난 대로, 주로 정권 차원의 이권사업으로 전락한 공기업 민영화가 이제는 국내 경제정책의 만능열쇠로 동원되는 일이 중단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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