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가 4일 오전 서울 세종로 청사에서 대통령 업무 보고를 열고 '방송통신 선진화를 통한 신성장 동력과 일자리 창출 방안'을 발표했다.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강조한 제목이 보여주듯 이날 방통위의 업무 보고는 철저히 '산업 동력으로서의 방송'에만 맞춰졌다.
방통위는 이날 업무 보고에서 "IPTV를 포함한 방송통신 서비스 분야의 생산 규모를 연평균 6.8% 성장시켜 21조 4000억 원으로 끌어올리고 양질의 일자리 4만 개를 더 창출하겠다"며 △방송과 통신의 융합 선도 △방송 서비스 시장 선진화 △통신 서비스 투자 활성화 △해외 진출 및 그린 IT 확산 등을 중점 추진 과제로 제시했다.
방통위는 '일자리 4만 개 추가 창출'이라는 목표 외에 구체적인 방안은 내놓지 않아 '현실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또 방통위가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맞춘 업무 보고를 내놓은 것 자체가 최근 경제 위기에 난관을 겪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관심사에 맞춘 '짜맞추기 식 업무 보고'라는 비판도 나온다.
대기업-거대신문, 종합편성채널 소유 허용
방통위는 이날 업무 보고에서 방송계와 시민사회의 반발이 거센 '신문-방송 겸영 허용', '지상파 및 종합 편성, 보도 전문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에 대한 대기업 진입 제한 기준 완화', '민영 미디어렙(media rep) 도입' 등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날 방통위의 업무 보고 내용은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미디어 간 교차 소유를 통한 미디어 산업의 활로를 개척하겠다"며 '신문-방송 겸영 허용' 방침을 밝힌 것. 방통위는 "보도·종합 편성 PP의 겸영 범위를 확대하겠다"며 "적정 범위 및 시기 등은 여론 수렴을 거쳐 사회적 합의에 따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방통위 관계자는 "이제 '신문-방송 겸영 허용'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어느정도 무르익었다고 본다"며 "이제 한국에도 세계적인 미디어 기업이 나올때가 됐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현재 승인을 받은 종합 편성 채널은 없으며 보도 전문 채널은 YTN과 MBN 두 곳 뿐이다. 종합 편성 PP는 보도와 교양, 오락 등 다양한 방송 분야를 편성하는 채널로 방송법상 종합유선방송과 위성방송은 반드시 종합 편성 채널를 편성해야 한다. 현재 한국에서 유선방송과 위성방송 가입 수가 80%를 넘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종합 편성 PP는 사실상 지상파 방송에 준하는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
게다가 종합 편성 PP는 현재 지상파 방송에 금지돼 있는 중간 광고도 할 수 있고, 광고 영업 역시 직접 할 수 있기 때문에 지상파 방송보다 수익 확보에 유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방송 진출을 추진하고 있는 신문사들 역시 종합 편성 채널 확보에 관심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방통위는 지상파 및 종합 편성, 보도 전문 PP에 대한 대기업 진입 제한 기준을 현재 3조원에서 10조원으로 완화하고 케이블방송 사업자 간 겸영 기준(77개 방송 구역의 5분의 1이하)도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이미 이러한 내용을 담은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공청회 등을 거쳐 오는 11월쯤 시행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 14일 시행령 개정안 공청회를 열었으나 언론노조 등의 반발로 무산됐으며 방통위는 오는 9일 공청회를 다시 열겠다는 방침이나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09년까지 민영 미디어렙 도입
또한 방통위는 "한국방송광고공사(사장 양휘부)가 지상파 방송광고 판매 대행을 독점해 방송광고 가치가 저평가되고 연계판매 등 문제점이 나타고 있다"며 "2009년 12월까지 민영 미디어렙 신설로 경쟁 체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또 방통위는 "방송광고 정책의 일원화를 위해 관계 부처 협의를 거쳐 방송광고공사의 관리 감독 체계를 재정립하겠다"며 방통위가 방송 광고 정책 주무 권한을 갖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해 현재 방송광고공사의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의 주도권 다툼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방통위 관계자는 "현재 방송광고공사의 소관부처는 문광부지만 업무상 방통위와 관련이 있는 부분이 많다"며 "문광부와 협의해서 체계를 재정립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방통위는 광고 시장의 경쟁 체제 도입으로 어려움을 겪게 될 지역, 종교 방송에 대해서는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으나 경쟁 체제가 도입되면 취약 매체들에 대한 공익적 자본 배분이 어려워져 여론의 다양성이 위축될 것이라는 비판이 높다.
"방통위는 '조중동 방송'의 출범을 획책하나"
한편, 언론단체들은 방송통신위원회가 대통령 업무 보고를 진행한 것 자체가 타당하지 않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54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미디어행동은 4일 방통위 청사 앞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독립적 운영을 약속한 방송통신위원회가 대통령 업무 보고까지 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를 깨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기자 회견문에서 "방통위 설치법 제1조는 방통위의 '독립적 운영'을 규정하고 있다"며 "방통위는 대통령에게 업무 보고를 할 것이 아니라 추진하는 모든 내용을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사회적 합의를 충실하게 반영한 다음 실행하면 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업무 보고 내용에 대해서도 "재벌기업에게 지상파 방송과 보도 및 종합 편성 PP를 선물로 안겨주고 수구재벌신문사에게 방송국 겸영을 허용해 이른바 '조중동 방송'의 출범을 획책하고 독점적 시장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방송의 공공성과 공익성은 안중에도 없이 대통령과 정권지지 세력만을 위한 온갖 계략을 획책하고 있는 최시중 '방송통제'위원장은 더 이상 방송을 더럽히지 말고 당장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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