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으로 스사노오가 신라국의 소시모리에 있다고 말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스사노오를 이 곳은 흔히 '우두천왕(牛頭天王 : 소머리천왕)'이라고 불립니다. 그런데 이 말 즉 소시모리는 소시무리(曾尸茂梨)와 유사하지요. 그렇다면 소머리산 즉 우두산(牛頭山)이 있는 곳이 바로 경남 거창의 가조로 한국의 영남 땅에서 우두산이라고 부르는 곳은 가야산(伽倻山) 밖에는 없습니다. 가야산은 예로부터 소의 머리와 모습이 비슷하다고 하여 우두산(牛頭山)이라고 불렀고 주봉을 우두봉(牛頭峯) 또는 상왕봉(象王峯)이라고 합니다.
저는 『대쥬신을 찾아서』에서 거창에 있던 스사노오가 현재의 경주 방면으로 이동한 것은 가야계들 사이의 이해관계의 대립과 투쟁이라는 측면에서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즉 아마테라스는 당시 가야연맹의 맹주인 금관가야(金官伽倻) 세력이고 이들의 세력이 2~3세기 거창 지역으로 확장되면서 거창지역의 가조 가야인(스사노오)들이 아마테라스의 세력에 패배하여(그러니 스사노오의 행실이 나빠서 추방된 것으로 표현되고 있죠) 부산(김해)으로 경주로 이리저리 몰려다니다가 결국은 신라에 투항했다가 영일현(포항) 쪽에서 일본(이즈모)으로 이주한 것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이외에도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는 대가야 즉 고령(高靈)의 또 다른 이름을 미오야마(彌烏邪馬)라고 하고 그 왕의 이름을 이진아기(伊珍阿鼓)라고 합니다.(27) 즉 아마테라스가 이룩한 나라나 일본 최초의 여왕으로 기록된 히미코(卑弥呼)의 야마대국(邪馬臺國)의 이름과 아마테라스의 조상이 바로 여기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일본서기』의 이자나기(伊奘諾尊 :イザナキ)는 이진아기(伊珍阿鼓)는 같은 존재를 음을 빌려서 쓴 말로 추정되므로 같은 말로 봐도 큰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아마테라스는 오히려 대가야쪽의 맹주라고 볼 수도 있겠군요. 앞으로 연구가 더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대마도의 지방 역사가로 일본 고고학협회와 민속학회 회원으로 대마도를 대표하는 지성인 나가토메 히사에(永留久惠)는 자신의 저서인 『고대일본과 대마(古代日本と對馬)』에서 다까마노하라에 나타난 신들의 사당들이 대부분 대마도에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28) 아마테라스의 원래 모습인 해신(海神) 아마데루 신사(阿麻氐留神社)나 아마테라스의 손자로 일본에 강림했던 천손족 니니기를 도운 황조신 다가미무스비신과 그의 세명의 신장(神將)들의 사당들도 대마도에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아마데루 신사(阿麻氐留神社)는 일본의 다른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당들은 한국인들이 한반도에서부터 대마도를 거쳐 일본으로 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들입니다(그리고 일부는 해류를 타고 포항에서 시마네쪽으로 간 것이고요). 그러니 이쯤에서 다까마노하라 논쟁은 이제 그만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참고로 현재 거창의 가조면에는 일본신들의 고향이라고 하여 대대적인 성역화 사업을 하여 관광지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다음 그림은 고천원 지역의 안내지도입니다.
현재 시네마현 이즈모市 해안에는 히노미사키(日御崎) 신사(神社)가 있고 신사의 산 정상에는 등대가 있습니다. 그 등대 옆에 작은 신사가 있는데 이 곳이 바로 스사노오의 무덤이라고 합니다. 스사노오는 이곳의 사다 마을(町)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데 이 마을 사람들은 지금부터 3천년 전에 스사노오가 한산(韓山 : 한국의 어느 산간지대)에서 왔다고 합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스사노오를 신라(新羅)의 신이라고 믿는데 사실은 가야(伽倻)의 신이겠지요.
따라서 스사노오가 일선동조론의 가장 큰 이론적인 무기가 된 것은 일본군국주의자들이 『일본서기』의 내용들을 깊이있게 분석하지 못한 소치입니다. 오히려 스사노오의 일대기는 반도쥬신들의 열도 개척과 관련이 있는 것이지 일선동조론의 기초와는 아무 상관이 없지요.
차라리 제국주의 시대의 일본 군부는 『일본서기』보다는 『삼국사기』의 내용을 적당히 짜집기 했더라면 더 나았을 뻔도 합니다. 즉 『삼국사기』에 호공(瓠公 : 조롱박)이 등장하는데 호공은 본래 왜인인데 몸에 조롱박을 허리에 메고 왔기 때문에 호공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호공은 신라 박혁거세 시대의 재상으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리고 신라의 탈해왕 역시 왜국의 동북 1천리에 있는 다바라국(多婆那國)에서 온 사람이라고 하는데 왜국에서 동북쪽으로 1천리가 된다는 것은 왜가 현재의 일본 열도를 가리키면 존재할 수가 없고 대체로 한반도 남부 즉 가야에서 1천리 정도로 보면 현재의 울릉도 또는 일본의 시마네(島根)현 등의 지역에 이르는 곳이 됩니다. 이 지역은 포항이나 울산 지역에서 항로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죠. 왜(倭)가 한국인들의 이름이며 주로 가야인들을 의미한다는 것은 뒤에서 상세히 분석할 것입니다.
대체로 보면 규슈 또는 혼슈 → 신라(한반도) 로 이르는 민족 이동보다는 그 반대 경로가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한반도 → 규슈·혼슈 로 이르는 방향의 이야기가 많다는 말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고사기』나 『일본서기』에는 신라왕자인 아메노히보코(天日槍[天之日矛])가 일본에 귀화했다는 이야기가 있죠. 그런데 당시의 사정으로 보면 이들 왕자가 귀화할 정도의 체제를 갖춘 국가는 기록에 나타나지 않으니 그저 무리들을 몰고가서 나라를 세운 것이죠.
민간의 문명사학자인 요시다도오고(吉田東伍)에 따르면, 신라왕자 한 사람이 일본에 와서 각처에 자손을 두었고 그 자손 가운데 쓰쿠시(築紫 : 현재 규슈의 후쿠오카)에 정착한 후손들이 이도국(伊都國)을 세웠다고 합니다. 이 내용이 훨씬 합리적입니다.(29)
지금까지 우리는 이른 바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이라는 이상한 논리를 살펴보았습니다. 이 같은 정치성이 강한 논리를 한국과 일본이 견고하게 가지고 있고 서로 자기가 옳다고 하는 것이 현재의 상황입니다. 그러면 지금부터는 아무런 편견없이 제가 하는 한일동족론(韓日同族論)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필자 주
(27)『東國與地勝覽』「高靈縣」
(28) 永留久惠『古代日本と對馬』(大和書房 : ) 226~226쪽.
(29) 吉田東伍『日韓古史斷』(富山房 : 1893) 39~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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