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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 <58>


산은 제 모습이 어떤 모습이든 제 모습보다 더 나아 보이려고 욕심 부리지 않습니다. 제 모습보다 완전해지려고 헛되이 꿈꾸지도 않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꾸미지 않고 살려 합니다.

다만 사람들이 저마다 제가 선 자리에서 본 산의 모습을 산의 전부인 것처럼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오른쪽에서 산을 오르는 사람은 늘 오른쪽에서 본 모습만을 전부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서쪽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은 서쪽에서 만나는 산의 모습을 산을 가장 잘 아는 모습인 것처럼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정작 산에 올라 보면 산꼭대기에 서서 보아도 산의 안 보이는 구석이 많은 걸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산을 향해 오고가면서 만들어 내는 산에 대한 온갖 화려한 말 속에서 산은 정작 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 앉아 있습니다. 사람들은 제 모습보다 나아 보이려고 애를 쓰거나 제 모습보다 더 아름다워 보이기 위해 몸부림을 치지만 산은 그저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사람들이 산을 바라보고 산을 제 것으로 하기 위해 애쓰면서도 정작 산처럼 높거나 산처럼 크게 되지 못하는 것이 모두 사람들의 허영 때문임을 산은 알고 있습니다.

부끄러움도 부족함도 다 제 모습임을 산은 감추지 않습니다. 못난 구석도 있고 험한 모습도 갖추고 있음을 산은 숨기려 하지 않습니다. 제 모습보다 더 대단해 보이려고 욕심 부리지도 않습니다.

산은 헛되이 꿈꾸지 않습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내리면 눈 속에 덮여도 있는 모습 그대로 드러내 보여 주고 있기 때문에 영원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헛되이 욕심 부리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때론 부끄러운 구석도 가지고 있고 때론 때 묻은 모습을 하고 있을 때도 있지만 부끄러움도 때 묻음도 다 내 모습의 한 부분임을 구태여 감추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사는 것이 더 인간적이지 않을는지요.

벼랑도 있고 골짜기도 있지만 그래도 새들이 날아와 쉬게 하고 꽃들이 깃들어 피게 하는 산처럼 완벽하진 않아도 허물없이 사람들이 가까이 올 수 있는 넉넉함은 바로 그 부족함, 그 부족함이 보여 주는 인간 그대로의 모습 때문은 아닐는지요.

산은 말로써 가르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보고 느끼게 합니다.

산은 문자로 깨우치지 않지만 마음으로 깨닫고 돌아가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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