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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와 집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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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와 집돼지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 <56>


눈 덮인 산속을 헤매며 배가 고파 견딜 수 없어 하던 멧돼지가 있었습니다. 멧돼지는 마을로 내려와 구수한 냄새를 따라 어느 한 곳에 다다랐습니다. 그곳은 집돼지의 우리였습니다. 닷새를 굶은 멧돼지는 먹을 것을 좀 나눠 달라고 집돼지에게 통사정을 하였습니다. 집돼지는 마침 죽통에 먹다 남긴 것이 있어서 선선히 허락을 했습니다. 멧돼지는 집돼지가 가르쳐 준 대로 우리 안으로 밀치고 들어갔다. 이튿날 주인은 횡재를 했다고 기뻐했습니다. 그리곤 우리를 더욱 단단히 손질해 두었습니다.

집돼지의 우리 속에서 겨울을 보내는 멧돼지는 먹고 사는 데엔 걱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멧돼지는 좁은 우리 안이 불편해졌습니다. 산비탈을 마음껏 달리고 싶었고 가랑잎을 헤치고 도토리를 줍고 땅을 파서 칡뿌리를 캐며 먹이를 찾던 시절이 그리워졌습니다. 그때부터 멧돼지는 우리를 빠져 나갈 궁리를 하였지만 상처뿐이었습니다. 어금니도 부러지고 주인은 더욱 단단한 대못으로 우리를 막아 놓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겨울이 가고 봄기운이 돌아 향긋한 산냄새가 멧돼지를 더욱 참을 수 없게 하던 날 밤, 멧돼지는 온몸을 우리의 판자에 던졌습니다. 마침내 판자벽 한 귀퉁이를 무너뜨린 멧돼지는 집돼지에게 말했습니다.

"자 나하고 함께 산으로 가자. 주는 대로 받아먹고, 먹은 자리에서 싸고 또 그 위에 드러누워 뒤룩뒤룩 살만 찌워 봤자 그게 누구 좋은 일 시키는지 아니? 금년 봄 이 집 주인 환갑 잔칫상에나 오를 게 뻔하지."

"아유, 난 골치 아파. 그런 복잡한 것은 생각하기도 싫다. 귀찮게 굴지 말고 갈 테면 너나 가거라."

집돼지는 검불더미 속에 코를 박은 채 귀찮다는 듯 일어서지도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멧돼지는 혼자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멧돼지가 이제 산으로 가면 힘들여 일해야만 먹이를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 힘센 짐승들과도 싸워야 할 테고 우리에 갇혀 주인이 넣어 주는 먹이나 편안히 받아먹던 때와는 다른 많은 고통이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뛰쳐나온 멧돼지의 힘살은 팽팽하게 당겨졌습니다.

이 이야기는 조장희 님의 동화「멧돼지와 집돼지」의 줄거리를 요약한 것입니다. 이 작품은 우리의 정신 속에 들어 있는 안주하고픈 마음과 자유에의 갈망을 두 짐승으로 그려 보이고 있습니다. 또 우리들의 삶의 형태를 집돼지와 멧돼지의 모습으로 형상화하고 있기도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살면서 꼭 그렇게만은 살 수 없다는 것을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일단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단순하고도 큰 명제 때문일 것입니다. 더 단순히 말하면 하루 세 끼 밥은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존에의 요구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밥을 어떻게 먹고 사는가 하는 것도 굶지 않고 사는 일 이상으로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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