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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의 normalcy(常態) 정치로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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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의 normalcy(常態) 정치로의 전환

[남재희 칼럼] 촛불 정국을 일단 정리해 본다

"최상의 시기였다. 최악의 시기였다. 모든 일이 가능해 보였던 때였다. 그리고 아무 것도 가능해 보이지 않았었다. 혼미의 시기였다 할까.(It was the best of times, it was the worst of times. A time when everything seemed possible - and nothing seemed possible. An age of confusion.)"

자칫 요즘의 우리 시국을 묘사하는 뒷날의 글로 여길지 모르겠다. 아니다. 널리 알려진 명작 소설의 압축판 도입부 첫 문장이다. 그 소설명을 밝히는 것은 감칠맛을 떨어뜨릴 것 같다.

지난 5월 말에 새천년포럼이 참여정부의 첫 외무장관인 윤영관 서울대 교수를 불러 듣는다기에 가보았다. 윤 장관은 재직 시 386의 자주파에 둘러싸여 동맹파로 외롭게 노력했다고 언론에 보도되었었기에 관심을 갖게 됐다. 또한 공교롭게 주최 측인 이범준 전 의원은 DJ정권 첫 외무장관이었던 고(故) 박정수 박사의 부인이기도 하다.

MB정권이 들어서면서 '한미관계의 복원'이란 기치를 내걸었으며 당선자의 대미특사까지 '한미관계 복원'을 공언하며 출발하였기에 무언가 잘못되어간다고 느끼던 터였다. 쉬운 말로, 노 정권이 말만 경솔하게 떠벌였지, 미국의 요구를 모두 충실히 들어주었는데 한미관계 복원은 무슨 복원인가.

거기에 대하여는 핵 문제로의 대북 압박에 있어서 미국과 호흡을 완전 일치시키지 않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그 때 부시 정권은 ABC(Anything But Clinton-클린턴 정책 아닌 것은 다 좋다) 방침에 따라 북을 '악의 축'으로 몰아대며 압박하고 핵개발도 안하고 알카에다와 관련도 없는 이라크를 막무가내로 침략하던 때가 아닌가. 다행히 요즘은 부시 정권이 대북정책을 U턴하였다. 그 때 한미 간에 호흡이 맞지 않았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게 아니겠는가. 아니 오히려 떳떳했다고 보이는 것이다.

그런 평소의 생각이었기에 윤영관 장관에게 "한미관계 복원 운운이 과연 외교정책상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또한 그런 자세이기에 캠프 데이비드 회담에 앞서 쇠고기 문제를 졸속으로 크게 양보하며 타결한 것 아닌가"하고 물었다. 윤 장관은 복원 운운의 말은 외교에 있어 할 수 없는 말이라며 오히려 미국 측이 어색한 느낌을 가졌을 것이라고 답변하였다.
▲ 노 정권이 말만 경솔하게 떠벌였지, 미국의 요구를 모두 충실히 들어주었는데 한미관계 복원은 무슨 복원인가. ⓒ로이터/뉴시스

만약에 외교상 잘못이 있다 해도 속으로는 그 점을 유념하면서도 겉으로는 어물어물 넘어가는 게 외교가 아닌가 한다. 서양 사람들, 미국 사람들은 'muddling through' 란 말을 잘 쓴다. 분명하게 따져서 해결하지 않고 좋게좋게 어물어물 그렁저렁 슬슬 넘어가는 그런 해결방법을 말한다.

DJ나 노 정권과 차별화하려다가 우선 난관을 맞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그런 이야기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10년의 대북정책이 못마땅하다 해도 상대가 있는 것이기에 겉으로는 시치미를 뚝 떼면서 실제에 있어서는 불만인 부분을 경시하는 등의 방법으로 'muddling through' 하는 것이다.

촛불 데모가 막바지에 이른 7월 7일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 각계 인사들이 모여 시국 전반을 이야기한다기에 가보았다. 김지하 시인, 이정우 교수도 나오고 촛불데모의 주역들인 수경스님을 비롯한 몇몇 인사들도 참석했다.

촛불 데모 주역들과는 초면이어서 말을 하는 데 신중을 기했다. 그러한 운동을 보면, 일반론으로 말하여, 온건파와 과격파가 있게 마련이다. 과격파는 끝장을 보려 한다. 끝까지 대결하여 권력의 본질을 폭로하고 그리하여 다음 단계로의 사태의 진전을 유도한다는 전략이다.

마침 가톨릭 신부들이 촛불 데모에 나서고 또 이어 불교 스님들도 나서 촛불 데모를 일단 끝낼 수 있는 좋은 계기를 갖게 되었다는 판단이다. 그냥 슬그머니 끝내기도 쑥스럽고 어색한데 종교인들이 모양 좋게 끝낼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다.

그리고 MB 정부는 쇠고기 촛불 데모에 엄청난 양보를 하였다. 대운하를 단념한다고 했고 전기・수도・가스・철도 등은 민영화를 하지 않겠다고 하였으며 '강부자' 참모・내각을 개편한다고 하였다. 아마 후일의 역사가는 촛불 데모의 일대 승리라고 기록할 줄로 안다.

더구나 여·야당도 마침 모두 전당대회를 마치고 등원 방침이어서 이제 원내로 문제를 수렴해 볼 때도 되지 않았는가. 촛불 데모의 주역들은 분명한 말은 안했으나 그 날 저녁 모임을 갖고 앞으로의 방향을 정할 것인데 일단 정지하자는 의견도 있다고 하였다.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도 나온 이야기지만 MB 정권이 모멘텀을 상실하지 않았냐는 판단이고 걱정이 있다. 나는 거기서 본래 MB는 visionary(꿈을 좇는 사람)가 아니지 않느냐, 처음부터 기대한 것은 정책의 집행력이 아니었느냐고 말했다.

전에도 MB와 관련하여 쓴 바 있지만 정책의 선택지가 그리 많이 있지 않은 우리나라 형편에서 정책의 집행력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내가 인용한 바 있는 일화를 재탕하여 보자. 미국 존슨 대통령의 월남 정책에 반기를 든 유진 매카디 상원의원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 예비 선거에서 존슨에 과감히 도전하였다. 그리고 '젋은이들의 십자군'이라고 일컬어졌던 젊은 세대의 지원을 얻어 뉴햄프셔주 예선에서 존슨에 치명적인 강타를 가했다. (민주당 후보는 종당엔 휴버트 험프리로 낙착되었다)

매카디는 상원에서 선망의 위원회인 외교위에 있었는데 그 후, 갑자기 정부운영위(Government Operation's Committee)로 자진하여 옮겨 사람들을 궁금하게 했다. 기자들의 의아해하는 질문에 그의 재담.

"If as Marshall McLuhan said 'medium is message', then operation is the policy.(마샬 맥루한이 말한 대로 '매체(媒體)가 메시지'라면 '운영이 정책'이 아니겠는가)"

그 <조선일보> 논객 가운데서는 그래도 좋은 칼럼을 쓴다고 여겨지는 송희영 논설실장은 7월 12일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이명박 정권의 경제 교과서부터가 갈기갈기 찢겨져 버렸다. 7대 경제 강국 신화를 만들겠다던 깃발이나 불도저식 성장을 약속하던 간판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 비제도적인 대중정치는 이제 항존(恒存)하는 것이 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하게도 된다. 인터넷시대, 휴대폰시대와 관련된다. ⓒ뉴시스

글쎄 너무 비관하는 게 아닌가. 신자유주의에로 질주하려던 것이 멈칫하였을 뿐이지 그렇게 비관할 것은 아닌 것 같다. 정상을 되찾으면 좋은 게 아닌가.

YS 정권이 출범할 때 normalcy(常態)란 개념을 대중화하여 시대적 명분으로 제의하려 하였다. 그 때 곧이어 YS의 장관이 되는 최창윤 박사는 미국 정치사에도 normalcy를 내세운 정권이 있었다고 바로 알아차렸었다. 정상이나 평정(平靜)의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YS 정권은 청산하거나 바로잡아야 할 그 전 정권의 잔재들이 너무 많아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MB 정권에서는 가능한 일이라고 보인다.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는데 선거전의 구호로서 대단히 성공적인 것이었지만 매우 과장되었다는 것도 분명한 게 아닌가.

조순 전 경제부총리의 글(<헌정> 7월호)이 참고가 된다.

"우리가 버려야 할 고정관념으로 다음의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① 자유시장은 항상 효율적이므로 모든 시장규제를 철폐해야 한다 ② 민영화는 항상 바람직하다 ③ 한국은 금융허브가 되기 위해 모든 금융 규제를 풀어야 한다 ④ FTA를 많이 하면 할수록 유리하다

통속적 지혜(Conventional wisdom)가 된 이상과 같은 고정관념은 항상 틀린 것은 아니지만, 항상 옳은 것은 전혀 아니다. 이들에 집착하면 할수록 나라 사정이 꼬이게 된다.



(.....)

선거공약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어제가 옛날인 요즘이다. 반년 전에 행한 '공약'은 별 의미가 없다. 747 공약은 후보의 희망사항이지, 경제정책의 청사진이 아니다. 경제정책의 최고 중점은 어디까지나 물가안정에 두어야 한다. 항상 인플레 억제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물가 안정은 가장 기본적인 복지 정책이다. 한국은 수십 년 동안의 인플레로 인해, 지금 세계에서 가장 물가가 높은 나라가 됐다. 이렇게 임금-물가가 높은 경제에 무슨 국제경쟁력이 있겠는가"


특히 인플레는 대중 수탈적이기에 조 전 부총리의 말에 공감한다. 그동안의 MB 강만수 팀의 정책에 대한 경고이다.

그 밖에도 선진화 운운하는 주장을 하는 학자군이 있는데 요는 어떻게 선진화를 하느냐가 문제이지 선진화를 마다할 사람이 있겠는가. 선진화만 외치는 것은 따지고 보면 동어반복(同語反復)을 하는 것과 같다 할 것이다.

촛불정국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고 시비 또한 많다. 순수하다느니 불순하다느니 배후가 있고 그 배후는 반MB 불순세력이라느니 그렇지 않다느니…. '격문(檄文)언론시대' '주장언론시대'란 말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처럼 미디어들이 패가 갈려 다투고 있는 양상도 보이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지 의도적인 것은 아니라느니, 의도적이라느니 말들이 많다.

우리나라는 해방 후만 보아도 대중의 격동이 자주 있었음을 알 수 있다. 4·19, 6·3 사태, 6월 항쟁, 탄핵 반대 데모 등등. 그 가운데서 이번의 촛불 데모는 성격상 한일협정이 굴욕적이라고 반대하여 일어난 6·3 사태에 가장 유사하다 할 것이다. 마침 MB도 당시에 주동자급의 한 사람이었으며 옥고도 치렀으니만큼 상황을 잘 짐작할 줄 안다.

촛불정국에 대하여 대의정치가 강화되어야 하지 촛불정국의 흐름만 갖고는 곤란하다고 매우 걱정하는 최장집 교수의 이야기가 언론에 자주 보도되었다. 옳은 말이다. 대의 민주정치이니만큼 결국은 국회에서 정치가 요리되는 것이니 국회가 강화되어야 하고 원외의 여러 세력들이 국회 안에서 상응하는 발언권을 가져야 정상인 것이다. 그럴 때 정국은 안정될 수 있다. 그렇지 않을 때는 정국이 불안해지는데 불안한 정국은 공안정국으로도 갈 수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파시즘적인 것으로까지 치닫는 것을 배제할 수도 없다.

그러기에 정상적 대의민주주의가 강화되어야 한다고 최 교수와 걱정을 같이 한다. 그러나 한편, 비제도적인 대중정치는 이제 항존(恒存)하는 것이 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하게도 된다. 인터넷시대, 휴대폰시대와 관련된다. 이상한 표현으로 <비제도적인 대중정치의 제도화>라고 할 것이다. 민주정치의 양적 변화뿐만 아니라 질적 변화이다. 그 질적 변화는 예측이 어려운 영역이다.

그러한 현실을 인정하고 대중정치의 순기능을 위한 세련화, 순화를 생각해봐야 할 줄 안다. 대중정치의 돌발이 파국으로 치닫지 않고, 돌발하더라도 그것이 어떤 세련된 룰에 따라 작동하여 사회혼란이나 사회의 파국을 초래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대중과 권력 쌍방의 문제이다.

이번 촛불 데모에 대한 비난도 빗발치고 있다. 그런 비난들을 모두 감안하여 생각해 볼 때도, 대국적으로는, 그래도 우리의 촛불 데모는 룰을 지키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찬반을 떠나서의 운동 형태에 대한 관찰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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