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선 후보 캠프의 새정치위원회를 이끌었던 정해구 교수를 비롯해 조희연, 김동춘, 권혁태 교수 등은 26일 성공회대에서 '18대 대선의 구조적 의미와 한국 사회의 전망'을 주제로 자유 집담회를 열었다. 장장 네 시간에 걸친 긴 토론이었다.
이들은 대선 패배의 원인으로 공통적으로 '민주통합당의 리더십 부재'를 꼽았다. 책임감 있게 선거를 이끌지도 않고, 계파 싸움에만 골몰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50대' 변수 예측 실패, 종편 출범 등 미디어 환경의 변화 등도 패인으로 지목했다. 아울러 야권의 재편 방향과 안철수 전 대선 후보 정치 행보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민주당 내걸고 선거운동하면 오히려 표 떨어져"
이번 대선에서 민주통합당 문재인 캠프에 몸담았던 정해구 교수는 "민주당이 이번 선거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밝혔다.
정 교수는 당 내부에서 관찰한 내용들을 토대로 민주통합당의 리더십, 조직력 부족, 계파정치 등의 문제점들을 짚었다. 그는 "민주당을 내걸고 선거운동하면 오히려 표가 떨어져서 문재인 후보가 연설할 때 의원들은 연단에 올라오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어 "뒤늦게 '국민연대'를 만들었는데 급하게 만들어 짜임새가 없었고, 안철수 후보도 안 들어왔다"며 "새누리당은 탄탄한 조직이 동원됐는데 민주당은 아무 조직도 없었다"고 꼬집었다.
더불어 "민주당 내부에 개혁 동력이 없다. 의원들은 민주당에 애착이 없고 안철수로 단일화되면 다 그쪽으로 몰려갈 생각을 하고, 심지어 '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다"면서 "선거를 걱정하는 사람은 밖에서 도와주는 사람들뿐이었다. 민주당은 내부 계파 문제만 얘기하더라"고 맹비난했다.
▲ 민주통합당이 18대 대통령 선거 패배로 충격에 빠진 가운데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246호실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한 의원들이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다. ⓒ뉴시스 |
그는 "핵심은 계파정치, 집단지도체제"라며 "계파정치가 그만그만한 구태정치인을 많이 만들어내는데 대통령 후보는 못 만들어 낸다. 그러다보니 그만그만한 기득권을 가진 계파 수장들이 하는 일이 밖에서 (인물) 영입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하는 한 전망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조직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서 민주당이 계파정치 해체시키고, 외부에서 대통령 후보를 만들어 낼 게 아니라 내부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야권진영 내부에 퍼져있던 '낙관론'도 문제로 들었다. 그는 "저도 이길 것 같다는 생각했었는데, 제 판단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나를 복기해보니, 6.2지방선거부터였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6.2 지방선거 때 (결과가) 너무 잘 나왔다. 이길 거라고 생각도 안 했다. 그런데 (지방선거에서 이긴) 이유는 이명박 대통령이 워낙 못했기 때문이다. 일종의 회고·평가 투표였다"며 "사실 6.2 지방선거 이후 상승세가 아니고 하락세였는데 긴장을 놓았다. 낙관한 측면이 잘못됐다"고 짚었다.
김동춘 교수는 민주통합당의 '리더십 부재'를 꼽았다. 김 교수는 "당의 책임이 80~90%이고, 후보의 책임이 20%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 차원에서 본다면 DJ(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리더십 부재가 계속 나오는 것 같다"며 "DJ 이후 노무현이라고 하는 과도기이자 구세대의 막내가 있었지만, 새로운 세대를 이끌 수 있는 야당의 리더십이 형성되지 않은 데서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50대 보수화론', 세대론으로만 접근하면 안 돼"
정 교수는 또 다른 패인으로 '50대 변수 예측 실패'를 들었다. 그는 "50대(성향)를 예측하지 못해 뒤통수 맞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동춘 교수는 50대가 변수였음은 인정하면서도, 단순히 세대론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경계했다. 그는 "50대를 하나로 뭉뚱그리는 것은 대단히 비과학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50대의 80%는 대학교육을 받지 않은 고등학교 이하 졸업자다. (대학 졸업자와) 유신세대의 경험이 다르다"면서 "소수의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이 담론을 주도하고 있어 나머지 80%를 간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들에 대한 계층분석도 제대로 안 되어 있다"며 "고졸 이하의 50대에 대한 권위주의와 지역주의 정서를 벗어나지 않은 불안감의 영향을 분석하는 게 정확하지, 세대로 말하는 건 정교하지 못하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다만 "세대 간의 문화격차와 같은 세대 대결 양상이 있는 것 같다"면서 "50대 이상은 SNS에서 소외됐다고 본다. 6.2지방선거 이후 SNS가 활성화되니까 문화적 반발도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젊은 사람이 세상을 독차지한 듯한 소외감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더 나아가 "6.2지방선거에서 우리가 이기고 의견 교환수단으로 SNS만 하니까 '우물 안 개구리'처럼 전체를 못 보고 젊은 세대에 과도하게 의존했다"고 패인을 분석했다.
"종편은 50대의 '나꼼수'"
50대 투표성향과 관련해, 종합편성채널의 등장과 같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중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의견도 나왔다.
▲지난해 11월 종합편성채널 TV조선의 채널 설명회. ⓒTV조선 |
권혁태 교수는 "2002년 대선과 올해 대선의 가장 큰 차이점은 미디어가 많이 변했다는 것"이라며 "일반 TV매체는 대선 보도에 매우 소극적이었던 데 반해, 종편은 거의 24시간 체제로 대선에 모든 것을 건 듯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종편은 일종의 50대 이상의 '나꼼수'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정해구 교수는 "민주당이 종편에 출연하면 종편을 인정하게 되니까 출연 안 하기로 해서 문재인 캠프를 도와준 사람들도 종편에 대부분 출연하지 않았다"며 "그러다보니 완전히 보수 논객이 종편을 쓸어버렸다. 종편이 나이 든 사람들에게 먹힌 것 같다. 여론에서 완전히 밀렸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정권, 모순 드러날 것"
곧 등장할 박근혜 정권의 성격에 대한 토론도 이어졌다. 이들은 박근혜 정권의 성격을 두 갈래로 전망했다. 하나는 지배계급에 의해 주도되는 온건한 개혁인 '수동혁명(passive revolution)'의 형태다. 이와 더불어 파시즘 체제와 유사한 '의사(擬似)파시즘' 정권이 될 것이란 예측도 나왔다.
ⓒ뉴시스 |
김 교수는 박근혜 당선인의 슬로건 '100% 대한민국'에 대해 "파시즘적인 표현"이라며 "박정희 정신을 그대로 갖고 있는 박정희식의 철통정치로 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 "박 당선인이 최근 이틀 동안 도시락을 나눠주며 자원봉사를 하는 모습은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논에 가서 모를 심으며 액션을 취하던 그 모습과 그대로 닮았다"며 "한쪽에선 몽둥이를 휘두르지만 대중적으로는 온정주의적 복지와 성장주의를 내세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반면 조희연 교수는 "박근혜 정부 바로 앞에는 이명박 정부의 실패가 있다"며 "박 당선인이 상대적으로 복지나 민생, 재벌개혁이라는 진보적 의제를 점유하도록 강요당하는 지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정부를 과잉규정하면 안 된다"고 밝혔다.
정해구 교수는 "핵심적인 문제는 수동혁명과 의사파시즘 문제인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박근혜 정권이 성공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며 "한국사회가 권위주의적 리더십으로 순치되는 시대는 변한 것 같다. 권위주의를 한국사회가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철수, 민주통합당 들어와 당 개혁해야"
이제 중요한 것은 야권의 재건이다. 민주통합당은 당 안팎에서 '전면적 개혁' 요구의 목소리가 높다. 안철수 전 후보까지 포함해 신당 창당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속속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통합당은 안 전 후보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김 교수는 "안 전 후보가 민주당 운동권 출신 세력과 호남 세력을 넘어서서 새 리더십을 민주당에서 만들 수 있는지 봐야 한다"면서 "제가 볼 땐 회의적"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그 이유로 "정치라고 하는 게 일정정도 과거를 반영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당내에서 리더십을 갖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민주당과 호남세력, 안철수 세력, 당외 시민사회 세력 연합에 의한 중도개혁자유주의 또는 진보우파 정당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안철수가 제도 정당에 들어가는 순간 또 다른 안철수가 나올 것이다. 이런 식의 분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연합정치가 가능한 제도적 조건을 만들고, 재구성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정치적 요구가 등장해 새로운 연합정치가 출현하는 그런 순환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다"면서 "연합정치는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지속적 현상으로 봐야 한다"고 '연합정치'의 필연성을 설명했다.
▲ 문재인-안철수 전 대선 후보가 회동을 마치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
정 교수는 안 전 후보와 민주통합당의 관계맺기가 불가피하다는 점에는 동의하면서도, 향후 안 전 후보의 정치 방향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표했다.
정 교수는 특히 안 전 후보가 내세운 '국회의원 정수 축소' 주장에 날선 비판을 날렸다. 그는 안 전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을 얘기하며 "안철수 후보가 '의원정수 축소', '중앙당 축소' 등을 새정치선언 핵심내용으로 요구하기 시작한 때부터 단일화가 틀어지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안철수 현상'은 정치를 바꿀 동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너무나 중요하다"면서도 "방향이 틀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안 전 후보가 독자적으로 정치하면 실패할 것이다. 밖에 있는 인기만 가지고 정치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민주통합당이 살길은 진보진영과의 연합정치"
민주통합당의 재건을 위해선 진보정당의 발전도 중요한 과제라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김 교수는 "그동안 나온 조사를 보면 한쪽이 잘되면 다른 한쪽도 잘된다. 양쪽은 상호작용한다"면서 ""자유주의 정당 두세 번 집권할 때 좌파 정당이 교섭단체가 될 정도의 의석 확보하는 두 가지 대안이 같이 가야 한다"고 밝혔다.
진보 정당의 회생 가능성에 대해 정해구 교수는 "진보정당이 아직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 5~10% 지지율은 가지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표가 안 나온 것은 대선후보를 낸 만큼의 힘이 안 됐고, 이쪽(문재인 후보)을 밀어주었기 때문이지 기본이 무너진 건 아니라고 본다"고 분석했다.
정 교수는 이어 "(앞으로 정당은) 2~3개로 갈 수밖에 없어서 연합정치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제도적 장치 지원은 새누리당이 있는 한 불가능하기 때문에, 제도가 바꾸지 않는 한 후보단일화를 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권 교수는 제도적 변화를 촉구했다. 그는 "자유주의 정당이 만든 열린 정치공간이 좌파 정치 진출에 매우 중요하다. 김대중 대통령 때 비례대표제 도입이 결정적이다"라며 "단기적으로 대선에서 올인 하는 방식이 아니라, 좌파 정당이 국회 교섭단체 수준으로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비례대표제 등 제도적 접근을 위한 장기적 관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진보정당 스스로의 성찰을 요구했다. 그는 "통합진보당은 (진보진영의) 비종북세력과 결합해서 복합적 정체성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의미의 종북세력은 반신자유주의 세력이기도 하다. 그런데 모든 긍정적 이미지와는 단절되고 오로지 종북세력으로 낙인찍혔다"며 "스스로 '괴물'이 된 구조를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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