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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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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이후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 <24>


사막에서도 저를 버리지 않는 풀들이 있고
모든 것이 불타 버린 숲에서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 나무가 있다
화산재에 덮이고 용암에 녹은 산기슭에도
살아서 재를 털며 돌아오는 벌레와 짐승이 있다
내가 나를 버리면 거기 아무도 없지만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
어느 곳에서나 함께 있는 것들이 있다
돌무더기에 덮여 메말라 버린 골짜기에
다시 물이 고이고 물줄기를 만들어 흘러간다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는다면


제 시 「폐허 이후」입니다. 지진이 휩쓸고 간 중국 쓰촨성에서는 3주 동안이나 매몰된 갱도에 묻혀 있다 구조되는 광부들이 있습니다. 기적 같은 일입니다. 그들은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여진이 계속되는 동안 얼마나 무서웠고, 굶주림과 어둠과 죽음의 공포는 얼마나 깊었겠습니까?

모든 것이 끝나버린 듯한 상황 속에서 그들이 끝까지 붙들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희망이었을 겁니다. 살 수 있다는 희망!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붙들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자기 자신이었을 겁니다. "내가 나를 버리면 거기 아무도 없지만 /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 희망도 거기 함께 있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은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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