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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외교사절들의 '한국 멋' 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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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외교사절들의 '한국 멋' 내기

김유경의 문화기행 '서울, 북촌에서' <29> 북촌의 정원구경 ③

▲ 호주 대사관의 솟을대문.ⓒ김유경

성북동 호주 대사관은 한식 솟을대문이 정문이었다. 꽃나무 많은 정원이 잘 손질돼있고 '일과 결혼했다'며 화려한 화병 옆에서 손님을 맞는 피터 로웨 대사의 응접실에는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때의 한국관 그림이 걸려있었다. 커다란 기와집 건물 앞에 분홍 두루마기에 털토시와 검은 아얌 쓴 한국여성이 한떨기 꽃처럼 서 있는 사진으로 이 여성은 도대체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은 수십년 전부터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다.

대사는 2005년 방콕의 골동상에서 사들인 오리지널 잡지사진이라고 했다. 그는 이 동네가 한갓지고 밤에 내려다 보이는 서울야경이 아름답고 성벽도 보인다고 좋아했다. 그전의 한 호주 대사는 부인이 1930년대 한국야생화를 채록해 그린 오래된 식물도감책을 거실에 펼쳐놓고 그림 속 꽃을 구해 화병에 꽃아두곤 했었다. 외교관들에게 꽃장식같은 덕목이 요구되는지 모른다.

노르웨이, 인도, 레바논 대사관저들 모두가 자국 예술품이나 화가들 그림이 수십점씩 전시장처럼 걸려있어서 뭉크가 그렸다는 그림, 중동의 혼수품인 소금자루, 인도의 상아 화투패 등을 대사가 신나게 설명했다. 특별히 신축한 건물이 아닌 한 1970년대 서울사람의 저택을 사들인 구조가 그대로 보였다. 톤세 대사가 '노르웨이 사람은 멀쩡한 건물을 부수고 재건축하는 건 낭비라고 생각한다' 해서 방 두 개를 벽만 터서 넓힌 거실 등에는 곳곳에 기둥과 낮은 천장 등이 그대로 있어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모두들 잔디밭 깔린 정원이 딸려 대사관 기능상 필요한 모임에 활용되는 듯 했다.

동빙고동 레바논대사관저는 사업가 재일교포의 집을 빌린 것이라는데 정원이 굉장했다. 높은 담에서 폭포가 여러 단을 이루며 떨어져(손님들 오는 날에만 가동한다) 600평쯤 되어보이는 마당 한가운데 강돌이 놓인 넓은 시냇물처럼 흐르다가 향나무와 철쭉이 꽉 들어찬 나무 아래로 흘러내려갔다. 단청을 입힌 팔각정도 있었다. 모르긴 하지만 집주인 재일교포는 조국에 대한 애착으로 그가 생각한 한국산수의 풍류를 그대로 마당에 옮겨놓는 정원공사를 '비용을 아끼지 않고' 건축한 것 같았다.

돌장식이 건축설계 이상의 범위로 모인 듯 이것저것 많고 나무는 엄청난 향나무들이 꽉차있어 일본 조경같은 분위기가 나도, 부정할 수 없는 한국태생 집주인의 정열이 보였다. 누가 이 정원을 설계했을까 궁금했지만 더 알 수가 없었다. 모스타파 대사는 "우리 대사관 정원이 주한 외국대사관들 다 통털어 제일 근사해요"하고 자랑했다. "여기다 촛불 켜놓고 음악도 연주하고 로미오와 줄리엣 오페라도 하고 레바논 국경일에 손님을 접대한답니다." 그 광경이 어떨지 '안 봐도 비됴' 같았다. 여기에서 줄리엣은 팔각정 안에서 로미오를 내려다보는 베란다장면을 만들지 모른다. 이날은 레바논 전통의상을 입은 부인이 팔각정 안에서 손님을 접대했다.

한남동 인도대사관저에선 인도의 온갖 예술품이 꽉 들어찬 실내가 정원보다 더 볼게 많았다. 파르타사라티 대사는 인도 아유타왕국의 허황옥공주가 우리나라 가락국에 와서 금관가야 김수로왕의 왕비가 되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근거로 '비단왕후'라는 책을 써낸 인물이다. 대화도중 "인도여성은 과다한 혼수문제로 죽기까지 한다고 신문에 나는데 정말이냐"고 물으니 " 에이 그건 점잖치 못한 무식한 부류에서 하는 일이고 대부분은 안 그래요. 나두 안 그랬는데. 신문에 나는 걸 너무 믿지 마요. " 했다. '신문에 나는것들 너무 고지곧대로 믿을게 못된다'는 사실을 깨우친 그는 '미혹에서 벗어날 자질을 갖춘' 사람이 아닌가.부인은 금실로 장식한 인도 옷을 입고 보여주었다.
▲ 노르웨이 대사관저의 정원. 성북동 저택의 조촐한 마당이지만 굴곡이 지게해서 오르내리게 한 잔디밭과 술래잡기 장소같은 구석이 있다.ⓒ김유경

▲ 레바논 대사관저의 정원. 흐르는 물과 돌, 나무, 정자가 정원 가득 들어서 있다. 재일교포 원주인이 건축한 정원으로 한국적 풍류에 대한 정열과 일본적 조경이 뒤섞여 보인다. 대사는 주한 대사관중 제일 근사한 정원이라고 쟀다.ⓒ김유경

▲ 레바논대사관저의 정원 한부분. 그렇게 넓지는 않은 정원인데도 폭포와 계류로 웅장하면서 집안이 깊은 숲속같은 적막감이 난다.ⓒ김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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