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가 죤 벤씨의 한남동 집에서는 깜짝 놀랄 만큼 전문가적인 식물학 서적수집가의 면모를 봤다. 집안 모든 곳에 꽃의 자취가 있었다. 현관에는 각종 국화화분이 무리지어 가을정취를 풍기고 벽에는 꽃처럼 예쁜 나폴리의 수가 걸려있었다. 꽃무늬 중국 도자기, 매화를 그린 한국의 묵화병풍, 그리고 어린 딸들은 집에서 기르는 앵무새를 팔에 얹고 뛰어다녔다.
놀라운 것은 식탁 위에 펼쳐져 있던 라틴어, 영어로 된 식물도감 책들이었다. 1738년 발행된 플란타룸, 1806년에 발행된 스타페리아림, 1838년 영국인 세르텀이 18세기에 유행한 난초수집을 위해 쓴 책 오키드 아세움 등. 일일이 손으로 그린 식물그림에 채색이 입혀진 커다란 책들인데 한 책은 전세계에 단 10권밖에 없는 책이고 값이 20만 달러나 한다고 했다.
일행 중 한 남성이 "그런 희귀본에 20만 달러나 하는 책이라니 나 같으면 남이 손도 못 대게 할 것 같은데 ... "했다. "식물에 관심이 많다 보니 이런 책들을 갖게 됐어요" 하는 벤씨는 남아공 출신의 엔지니어. 그는 담요를 덮어씌워놓은 금고 속의 또 다른 식물책들도 보여주었다. 금고 가득 책을 보관하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 한 사람의 열정이 얼마나 멋진 세계를 이뤄내는지를,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 세계에 심취하는지가 경이로웠다. 귀한 식물 책을 본 것은 일종의 행운이었다. 나올 때 보니 그 집은 문패에도 꽃 한송이가 새겨져 있었다.
동숭동 쇳대박물관은 건물 전면부터 '모음과 자음의 나무' 철물조각으로 덮여있었다. 고려시대 금동 자물쇠 등 온갖 철물을 다 진열하고 난 건물의 꼭대기 4층이 최홍규 대표의 집이었다. 살림공간을 통과해 "여기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입니다" 하고 그가 보여준 장소는 장지문을 열면 나가서서 볼 수 있는 화단이었다. 집이 들어서고 남은 골목등 4층 마당전체에 꽃이 무리져 있었다.
"일년내 끊이지 않고 꽃이 피는데 비가 올 때 눈이 올 때 여기선 다 좋아요" 라고 수만점에 이르는 쇠를 다루면서 뉴욕과 도쿄에서 가질 전시회를 준비중인 이 사내는 섬세하게 말했다.
서정기 의상실은 마당은 없었지만 실내는 백남준등의 현대미술 전시장 같았다. 삼청동 부엉이박물관에도 갔다. 아내는 부엉이를, 남편은 플라스틱 파란 화분에 심어 담밑에 늘어놓은 80개의 '정원'을 열심히 기르고 있어서 꽃나무에 관한 대화가 끝이 없었다. 꽃나무를 좋아하는 건 남자여자의 구별이 없었다.
이화장의 정원을 오랜만에 보았다. 1천평쯤의 정원은 여전히 특별한 기교를 부린 것은 없지만 나무들이 더 커졌다. 전에는 이승만대통령이 부인을 위해 심어준 은방울꽃이 많이 있었는데 프란체스카 여사가 사망한 뒤로는 나지 않는다고 했다.
외국대사관 혹은 대사관저는 이국적인 분위기가 있고 외교관생활을 오래한 이들의 집도 그러했다. 부암동 윤미기씨의 현대적 주택은 달팽이같은 계단을 올라간 지붕 꼭대기가 잔디정원이었다. 북한산과 수려한 경치가 한눈에 드는 조망이 있었다. 잔디밭 틈틈이 과꽃 국화 그런 조그만 꽃무더기들이 조각보의 수처럼 심어져있었다. 그냥 버려두기 십상인 곳이 공중정원처럼 아름다움을 빚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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