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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행)/井(정)/开(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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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행)/井(정)/开(견)

[한자가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36>

우리가 약도를 그릴 때 네거리는 ㄱ자 또는 ㄴ자 네 개를, 꺾인 부분을 안쪽으로 모아 늘어놓으면 된다. 이런 약도 그리기 방식이 옛날에도 있었던 것일까? '가다'의 뜻인 行(행)자는 바로 이런 모습에서 변형된 것이라고 한다. <그림 1>이 그 옛 모습이다.

이 글자는 두 부분으로 나누면 彳(척)·亍(촉)이 된다. 그러나 위의 유래설을 인정한다면 彳·亍은 허구의 글자다. 그 두 글자를 합쳐 行자를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彳·亍은 오히려 彡 비슷한 모양으로 변형된 气(기)자의 다른 모습일 가능성이 있고, 발음도 그쪽과 가깝다. 그러나 彳은 자전에서 엄연한 부수자고, 그것은 行과 비슷한 개념이다. 气의 변형이 行의 왼쪽과 비슷한 모양으로 변하면서 그 간략형으로 쓰였는지도 모르겠다.

彳은 또 발의 모습인 止(지)와 짝을 이루어 의미 요소로 들어간 경우가 많았는데, 이렇게 들어간 의미 요소 '彳+止'가 나중에 辵(착)이라는 한 글자로 합쳐졌다. 윗부분이 彡으로 돼 있어 彳이 气의 변형 彡임을 드러내주고 있고, '착'과 '척'의 발음이 비슷하니 辵은 彳을 발음기호로 하는 형성자인 셈이다. 辵은 다시 辶으로 간략화됐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낯익은 '책받침'이다.

또 다른 부수자인 廴(인) 역시 彳의 변형이라고 한다. 彳의 마지막 획을 길게 잡아 늘였다는 것이다. 廴부 글자들은 대부분 彳의 의미와 연관되는 의미여서 그럴 듯도 하다. 문제는 발음이 彳과 멀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발음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廴자 자체는 刃(인)=乃(내)의 변형인 듯하고, 廴부 글자들은 거의 그 부분이 辶의 변형이어서 彳 또는 止와 연관된 의미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乃의 이체자라고 하는 迺(내)에서의 辶 부분이야말로 본래의 廴=乃가 왼쪽에 발음기호로 들어가 있는 모습이다.

요컨대 彳·廴·辵 등은 行과 거의 비슷한 의미 요소로 두루 호환돼 쓰였는데, 글자의 출생 과정 자체는 모두 行과 관련이 없는 것이다.

井(정)은 '우물'의 뜻이다. 그래서 우물의 난간을 그렸다는 얘기가 정설이다(<그림 2>). <그림 3>은 그 이체자인데, 가운데 점은 물을 퍼올리는 두레박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물 난간을 상형했다는 것은 좀 생각해볼 문제다. 그런 것들까지 상형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것이다.

井의 글자꼴은 行과 비슷하다. 네거리의 모습을 빨리 그리기 위해 가로획 두 개와 세로획 두 개로 대충 처리한 듯한 모습이다. 井자에서 가운데 ㅁ 부분의 획만 지우면 바로 行의 옛 모습이 된다. 네거리 자체도 상형 대상이 될 수 있을지 불분명하지만, 상대적으로 우물 난간보다 확률이 높다고 보면 그쪽이 '원본'일 가능성이 높다. 井은 行의 변형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런 추측을 뒷받침하는 것이 발음이다. 井의 발음은 行과 초성이 약간 다르지만 그리 멀지는 않다. 그것이 같은 발음이었을 가능성이 있음은, 行 계통의 珩(형)과 井 계통의 形(형)·刑(형)·邢(형) 등이 같은 발음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설명된다. 井에는 '우물' 외에 구획이 '반듯하다'의 뜻도 있는데, 이는 行의 '줄'과 통하는 의미다.

形·刑·邢 등의 왼쪽은 소전체에서 모두 幵(견)으로 정리됐으나, <그림 4>와 같은 刑의 옛 모습을 보면 이는 井의 변형이다. 干(간)을 둘 겹친 글자라는 幵은 허구의 글자인 셈이고, 따라서 幵을 발음기호로 쓰고 있는 硏(연)·姸(연) 등의 오른쪽 역시 井의 변형이라고 봐야 한다.

開(개)·戒(계) 역시 받침이 떨어져나가 알아보기 어려워졌지만 开=井을 발음기호로 하는 글자로 보인다. 開는 开 부분이 두 손(廾)으로 빗장(一)을 여는 모습이라는 설명이지만 이런 식의 장면 상형은 믿기 어렵고, 戒가 두 손(廾)으로 창(戈)을 받들고 있는 모습이라는 설명 역시 장면 상형이다. 戒의 경우 발음기호인 开의 윗부분 가로획과 의미 요소 戈(과)의 위쪽 가로획이 겹쳐 하나로 변한 것이며, <그림 5>와 같은 戒의 모습은 이미 그런 내용을 알 수 없게 돼버린 시대의 글자꼴인 것이다.

舛(천)은 두 발을 어긋나게 놓은 모습이라는 설명이 있지만, 그런 상형적 설명은 믿기 어렵다. 또 夕=夂(치)와 㐄(과)라는 止의 여러 변형을 합쳐 만들었다는 회의자식 설명도, 어떤 글자를 돌리고 뒤집어 별개의 글자로 만들었다는 얘기 자체가 비현실적이어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림 6>이 그 소전체인데, 이를 보면 行의 필획과 비슷한 흐름임을 알 수 있다. 좌-우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때 중간 획들이 구부러지고 세로획이 위로 뚫고 올라간 정도다. 발음도 行=井 파생자들의 발음을 보면 비슷한 범위내에 있어 行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

降(강/항)의 본래 글자라는 夅(강)은 夂와 㐄를 위아래로 놓은 것이라고 한다. 거꾸로 된 두 발의 모습으로 내려오는 것을 나타냈다는 설명이지만, 역시 夂·㐄가 止와 별개의 글자라거나 어떤 장면의 상형이라는 얘기는 믿기 어렵다. 夅은 舛과 같은 구성인데 배치만 좌-우에서 상-하로 바뀐 것뿐이어서 舛의 다른 모습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림 7>과 같은 降의 모습은 본래의 유래를 잃어버린 채 의미에 맞춰 모양을 꾸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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